brunch

잠들고 싶지 않은 밤.

15년을 기다린 추석 연휴.

by 오로시

세상에는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의 비율이 6:4 정도 된다고 한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아침형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건 기질 같은 것.

저녁형 인간이 아침에 아이큐검사를 하면 평균 15점 정도 낮게 나온다고 하니

자신에게 맞는 시간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저녁형 인간.

아침에 정신이 들기까지 오래 걸린다.

집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부팅시간이 오래 걸리는 저녁형 인간인 나.

저녁에는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 같이 유럽여행을 갔던 친구에게 놀랐던 것이 그 친구는 눈을 뜨면 일어나서 씻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누군가와 방을 공유한 적이 없어서 다들 나처럼 버티고 버티다 일어나는 줄 알았다.)


눈을 뜨면 최소 5분 정도는 뒤척이고 어물쩍대다가 간신히 일어나는 나와는 다르게

내 친구는 일어나서 씻고 나를 깨웠다.

잠은 깨어있지만 몸은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던 나는 친구가 나오기까지도 침대에서 나오질 못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남편도 아침형 인간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아침에 부지런하게 집안을 돌아다니고

저녁이 되면 남편은 졸기 시작하고 그땐 내가 활기에 넘쳐 집안을 돌아다닌다.


아이를 키우면서 저녁에 내 시간을 갖기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아이를 재우다 보면 침대에서 1~2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였고, 그때 나와서 내 시간을 갖자니 이미 훌쩍 시간이 흘러가버리는 상황.

그래서 몇 년 전부터는 아이들과 함께 9시 30분이 되면 잤다.

아무리 저녁형 인간이더라도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나게 되어있다.

다만 삶의 낙이 없어질 뿐.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부팅시간이 오래 걸려 아침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 아이들이 깨기 일쑤였다.


올해 8월부터 초2, 초1, 유치원생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분리수면을 시작했다.

유치원생인 막내는 초등학교 2학년인 형과 함께 이층침대에서 자는데

아직은 어리다 보니 엄마나 아빠가 옆에 꼭 있어야 잠을 자고, 중간에 깨서 엄마 아빠가 있는지 확인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요즘 격일로 불침번을 서듯 막내와 자고 있다.

하루는 막내와 같이 자고, 하루는 안방에서 온전히 혼자 자는 것이다.


5명이 같이 잤던 안방에서 혼자 자니 여기가 호텔이고, 지상낙원이더라.

한 마디로 너무너무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저녁형 습관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아이들과 잘 때는 규칙적이었는데

혼자 안방에서 자려니 영화도 보고,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으로 파도타기 시작하면서

새벽 3시에 자기 시작했다는 것.

아이들과 잘 때는 규칙적이었던 패턴이 엉망으로 치닫고 있다.

스마트폰이 문제다.

안방에 폰을 들고 가는 게 아닌데... 어제도 주문할 물건이 있어서 폰을 열었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1프로 남을 때까지 손에서 놓질 못했다.

3시에 자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라도 봤으면 1권은 완독 했겠다.


나는 왜 새벽까지 그러고 있는가....

아마 억눌려왔던 자유시간 욕구가 터져버린 것 같다.

다음날을 생각하면 무서운데 이 시간이 아까워 잠을 자기도 싫은...

그렇게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고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 연휴가 시작이다.

출근할 필요도 없는 긴 연휴 동안 나는 삶의 리듬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번 연휴 목표는 자기 2시간 전부터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이다.


15년 전에 수험생일 때 2025년에 이렇게 긴 연휴가 있다면서 친구들과 설렜였던 기억이 난다.

추석동안 도서관이 닫아서 친구아버지 사무실에서 합숙하면서 공부하던 시절.

그땐 내가 이렇게 긴 연휴가 육아로 힘들어질 줄은 몰랐지.(차라리 회사 나가고 싶다...)

훨훨 날아다닐 줄 알았지.

나도 해외여행갈 줄 알았지.


2010년도의 나는 시험준비하면서 15년 후의 나를 상상했었다.

2025년도의 나는 뭐라도 되어있겠지? 생각했었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육아 중이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나보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2025년 추석 연휴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의 최대 목표는

제발 일찍 자서 좋은 컨디션으로 육아하기가 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향의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