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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Jun 17. 2021

BUDAPEST, 처음부터 특별한 예감이 들었어.

Szimpla Kert (마법의 정원, 부다페스트 루인펍)


심플러.

루인펍.



심플러 께르뜨. 활자 그대로 해석하면 '단순한 정원'이다. 결코 단순하지 않지만 말이다.

루인 펍이란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곳.



오래된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or 힙한 장소이자 야외 영화관, (pub), 콘서트, 전시회, 마켓  다양한 문화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 복합공간이다.



단순한 정원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많은 색깔이 덧입혀져 있다.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복잡한,  도화지에 우리가 원하는 색을 입히라는 의미에서 일까. 매일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 창의성, 변화에 의해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헝가리의 숨겨져 있던 보물들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담아놓은 집약체 같다.



옛 것과 새것의 어우러짐, 도시와 자연의 혼합, 빈티지와 세련됨을 오고 가는, 심플러를 기준으로 유대지구 주변에 온갖 트렌디한 식당, 상점, 샾 등이 즐비해 있으니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외쳐본다.

부다페스트엔 조개 속에 감춰진 진주처럼 진가를 알아봐 주는 시선을 기다리는 공간들이 골목골목 묵직한 기운을 뿜어 낸다. 그 기운에 이끌려 걷다 보면 어느덧 나만의 도시 지도가 완성되는 묘한 희열을 느끼는데 그게 꽤나 중독성이 강한 감정이라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친구들이 헝가리에 놀러 올 때면 꼭 이곳에 들른다.

시끄러운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도, 자기 색깔 뚜렷한 내 친구들도, 누구나가 다 스며드는 장소 -

루인펍(폐허 술집)이란 어감이 상당히 퇴폐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남동생을 데리고 갔을 때, 우리 둘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이렇게 건전하게 느껴지는 퇴폐미는 겪어보질 못 한 것 같아!"였다.



코로나 시대 전엔 밤마다 가드(guard)들이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입장을 가능케 했다.

마치 도시에서 제일 잘 나가는 클럽에 검문 입장하듯이.

클럽에 ''자도  내켜하는 나도 애정 하는, 밤보다 낮이  아름다워 좋은 . (굳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커피나 음료로 대체해 공간을 누릴 수도 있다)



남자 친구, 남동생, S 오빠가 놀러 왔을 땐 밤에,

S랑 M이 왔을 때는 각각 낮과 밤에 방문했었다.



한 달 전 헝가리에 온 엄마랑 단골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맘)"여기 분위기는 활기차서 좋아! 예쁜 식당, 볼거리들도 많고!"

(나)"엄마, 이런 분위기 좋아해? 시끄럽고 부산스러워서 싫어할 줄 알았는데"

(맘)"여행 분위기 나고 얼마나 좋아, 젊고 신선한(?) 친구들도 많이 보이고"

(나)"그래....?"



난 왜 엄마가 시끄럽고 번잡한 젊음의 공간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을까.

'그럼 심플러를 같이 가볼까?'

(사실 이곳은 남녀노소, 현지인, 외국인 불문 모두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말 그대로 열린 공간, 모두의 장소이기에)

'지금은 관광객도 거의 없고, 낮에 가면 분위기도 밝고, 조용할 테니.. 커피 한 잔 마시고 와도 괜찮겠다'하고 이번 엄마의 일정에는 제외해 뒀던 그곳으로 향해본다.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사랑하는 그곳,

'심플러, 루인펍'



Szimpla KERTMOZI (활자 그대로 풀이하면, '심플러 정원 극장')





실제 루인펍(심플러)의 주소의 거리명은 'Kazinczy u. 14' (까진치 우쩌)

심플러 입구에 붙어있는 거리명은 'Kultura utcaja' (꿀투라 우짜여(발음 매우 웃김 주의), 영어로 치면 'your culture street')



'우쩌'는 '거리'

'우짜여'는 '당신의 문화 거리'



난 이 명칭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언어를 배우면 좋은 점이 '(사람이든, 문화든, 사물이든) 조금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






문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

정치나 경제, 법과 제도, 문학과 예술, 도덕, 종교, 풍속 등 모든 인간의 산물이 포함되며, 이는 인간이 속한 집단에 의해 공유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초등영어개념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가 마음에 들어 좀 더 덧붙여보자면,

"문화는 단순한 게 아니야. 밥 먹을 때의 예절이나 말버릇 하나하나까지 모두 문화 속에 포함되지. 문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있단다. "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단순한 정원이 아닌) 마법 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이곳.

이 공간 안에 붙어 있는 것들은 어느 하나 거짓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자칫하면 조잡스러워 보일 수 있는 것들이 전혀 군더더기 없는 예술 작품의 총체로 승화되는 느낌.





벽 안 왼쪽 차 안에는 이미 세 명의 무리들이 낮술을 즐기고 있다. 욕조에 걸터 누워 와인을 마시는 이들도 이따금씩 눈에 띄었다.






Szeletlek (쎄레뜰렉) :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I love you)





초록 나무를 품은 마법의 정원이
천연의 빛을 만나,
온 사물이 자신만의 색을 발하며 참되게 빛난다.




심플러는 높은 의자에 앉아 흔들거리면서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는 게 제맛인데, 고소공포증(?)을 핑계 삼아 굳이 낮은 의자 찾아서 자리 차지한 우리 엄마.



한가로이 정원을 누리는 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왼쪽의 한 커플은 심히 '보기 좋았노라..' 몇 번이나 읊을 정도로 정답고 경쾌해 보여 계속 시선이 갔다.

관광객들이 거의 없고, 낮이라 현지인들도 얼마 없는 이 장소를 몇몇 이들과 '우리만의 정원'을 누린다는 것이 상당히 사치스러운 감정에 빠져들게 했지만, '이 정도 사치쯤이야..' 하고,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뻐했다.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공간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내겐 언제나 마법 같은 도시, BUDAPEST






곳곳에 바(bar)와 까사(casa, casher)가 있으니

원하는 곳에 가서 주문하면 된다.




헝가리어로

Sor'쇼르'는 맥주,

Bor'보르'는 와인이다.




나는 레드 와인,

마미는 토커이 와인.





와인 맛이 상당히 좋았다.

다시 가서 물어보니, '파논할마' 와인(또 하나의 명소인 와이너리)이란다.

파논할마는 헝가리 북서쪽에 자리한 1000년이 넘은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

도서관의 모습이 해리포터 호그와트 도서관 버금가는 전경을 자랑하니 책 냄새 사랑하는 사람에겐 강력 추천하는 곳이다. (4년 전 대학 후배가 유럽 일주를 한다며 헝가리를 거쳐간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파논할마 수도원이 꽤나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벽 곳곳을 눈여겨보면 헝가리의 언어로 도배된 그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와인 한 잔을 곁들여 지그시 마음을 녹여보자.

이 나라에, 이 도시에 심취해 보기로 작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1. 심플러에서의 추억 하나.


밤의 심플러 께르뜨!

코로나가 전 세계를 장악하기 전,

귀가 벙벙해지는 소음이 펍 전체에 울려 퍼지지만, 그 나름으로 신비로운 활력을 띄는 시간대이다.

남자친구 손 놓치면 다른 남자 손잡아도 모를 곳이 심플러의 밤! +_+

M군, 열일했다.









2. 심플러에서의 추억 둘.

겨울이 끝나고, 봄.



아직은 봄이라고 말하기가 어색했던 심플러의 어느 날.

대학 동기이자 내 사랑스러운 친구, 우리 과의 (자칭 타칭) F4 멤버, S와 함께 했던 4월의 부다페스트.



나를 보러 부다페스트로 왔던 S는 그 길로 이 도시와 사랑에 빠져

한 번은 봄,

한 번은 겨울,

또 한 번은 여름,

그렇게 매년 한 번 씩, 세 번 내게 다녀갔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네가 이곳에 온다면 나만큼이나 이 도시를 사랑할 거란 걸.



루인 펍에 처음 왔을 때, S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네가 헝가리에 온다면 이곳을 꼭 데려가야지...'하고 되새김질했었다.



(나) "어때?"

(S) "완전 내 스타일이야! 헝가리가 너무나도 좋아지고 있어!"

(나) "언니들(나머지 F4) 도 함께이면 좋았을 텐데..."

(S) "그날을 계획해보자!"



반짝이는 여름 공기를 머금을 때면,

난 그녀가 꽤나 자주 떠오른다.




겨울에 입김 불며 함께 했던 야외 온천도,

야간열차 타고 즉석으로 떠났던 프라하 여행도,

세체니 옆 랑고쉬가 맛있었다며 하도 노래를 불러서 이젠 세체니 다리만 지나도 네가 스친다.

알코올 중독자 친구 둔 줄 알았던 너의 헝가리안 와인병들,

나 자는 동안, 혼자서도 아침밥을 잘 해결했던 너의 뒤태를 생각하면 여전히 웃음만 나.



"네가 좋아하는 곳에 와있어" 하고 보냈던 메시지에 즉각 화답하는 너.

"자기! 너무 가고파! 빨리 보러 갈래!" 하고 내가 예상한 답변을 명쾌하게 뱉는다.



쑥(애칭)아, 가을의 부다페스트가 아직 네겐 남아 있어. : )




S를 설레게 했던 맥주잔들.

내겐 그저 기인열전 행위!




그녀의 거대한 맥주잔과 나의 작디작은 에스프레소 잔




너의 첫 부다페스트 여행

헝가리를 떠나기 전, 예쁜 튤립을 사와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던 쑥이.

봄이 다가오는 때에 봄을 닮은 튤립을 들고 있던 네가 같은 여자지만 참 로맨틱했어.



따뜻함과 진실됨이라면 세상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족히 이겨낼 것을 믿는 그런 너와 나.

사랑을 잘하는(?) 너와 여행을 잘하는(?) 나.

또 여행을 좋아하는 너와 사랑을 좋아하는 나.

그리고 늘 한결같은 두 언니(H, G).



'언젠가 SS(더블에스)대, 최강 F4(flower 4)가 뭉쳐서 부다페스트를 누비는 그날이 오겠지? 작품 하나 남겨야지!'





외국인도, 한국인도, 너도 나도 금세 친구가 되는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행복한 여행.

부다페스트에서.







3. 심플러에서의 추억 셋.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나의 형제님, 브라더가 헝가리 왔을 때.

재간둥이 이 PD, 여전했다.

같은 엄마 뱃속에서 너와 나.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4. 심플러에서의 추억 넷.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그 두 번째.




S 오빠의 여름휴가를 헝가리로 결정했단다.

순수 내가 이곳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도 오빠의 직장 동료 둘을 데리고 온단다. 아니 왔었다.



오빠는 내가 대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갔던 호주에서의 인연이다.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오빠가 내게 좋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손이라도 잡을까 봐 소 뒷걸음질 치듯 뒤로 내빼며) 꽤나 놀라 홍시처럼 빨개졌던 그때의 내가 선명하다.

뭐가 그리 겁났을까. 이래 봬도 순정파, 순진무구했던 나, 여행 빼곤 다 겁쟁이였다.

지금은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진실된 친구 중 하나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가 스물셋 K라고 생각하는지 나를 애 취급한다.



(S) "너 언제까지 떠돌아다닐래!?"

(나) "이제 안 떠돌아다닐 건데요. 헝가리에서 살 거예요."

(S) "정말 넌 대단한 녀석이야!"

(나) "오빠가 더 대단해, 난 오빠처럼 한국에서 빡세게 못 살아!"


(맨 오른쪽) S 오빠.








올 때마다 내게 무지개색의 감정을 안겨주는,

헝가리의 마음,

부다페스트 정원.





다음에 또 올게.

Szia! Szimpla!

씨어(안녕), 심플러!






매해 어김없이 이곳으로 손님들(가족 포함)이 찾아온다.

이들로 인해 '초심', 이 도시를 향해 품었던 첫 마음이 결코 잊히지 않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의 첫 부다페스트(여행 때)는 '비'로 기억된다.

두 번째(두 달 살이)는 미친 듯이 내리쬐는 햇빛으로 남아있다.

세 번째는(다시 짐 싸서 컴백) 일본 공항(경유지였던)에서의 전화 한 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는 부다페스트.

그냥 보내기 아까운 소중한 기억들이 수북하게 쌓여만 간다.



'7년 동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고 눈을 뜨면 늘 새로운 오늘이다.



'첫 키스만 50 번째'라는 영화에서

루시라는 여주인공은 교통사고 후유증인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매일 아침이면 모든 기억이 사고 당일 아침으로 돌아간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아닌, 매일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며 삶을 살아가는 그녀.



나 또한 그녀처럼 7년 동안 한결같이 설레었다면 거짓말처럼 느껴지려나.

첫날만 생각하면 두근거리고, 이 나라에서의 모든 첫 경험이 너무 소중해서 그 마음 잃기 싫어 느즈막 하게라도 지금의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면 조금 과장되게 느껴지려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라고 여전히 고백하고 다닌다면 너무 과하다고 흉보려나.



어쩔 수 없다.

신기하리만치 매일이 새롭고, 기쁘고 감사한 부다페스트에서의 삶.

기억 상실이 아닌 '처음 기억 간직'으로 내일의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하며

떠나오지 않았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지금을 선명하게 느끼며, 기억하며

오늘의 페이지를 채워나갈 것이고, 기록할 것이다.



지난 한 주간 불쑥 찾아온 무더운 여름처럼,

내 마음에 불쑥, 꺼졌던 '불꽃'이 솟아올랐다.



유난히도 따가운 이 도시의 여름 햇살 탓이려나.

내가 지독하게 사랑하는 부다페스트의 여름이 내 앞에 친절하게, 또렷하게 주어졌다.








(번외 편)



얼마 전 엄마가 헝가리에 왔을 때(5.10), 내게 물었다.




(맘) "네가 헝가리에 온 지 얼마나 됐지?"

(나) "응? 음... 2014년에 여행으로 와서 두 달 살았을 때 빼고, 2015년 여름이었으니 딱 6년이네! 아니다. 3년 전에 6개월, 작년 코로나로 발 묶여서 6개월 빼면 5년이다!"

(맘) "6년이면 6년이지, 뭘 그렇게 구체적으로 제하고 말을 해. 남들은 한 달도 몇 달이라고 얘기하는데.."

(나) "엄마, 내가 5년이라 하면 5년인 거야. 내 마음이지, 남들이 보태든 빼든 무슨 상관이야."




엄마가 이 질문을 갑자기 던진 후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페이스북에 '과거에 오늘 있었던 추억을 확인해보세요.' 알림이 떴다.

(로그인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페이스북, 안 한 지 1년이 넘어가는데, 메일을 보다가 우연찮게 접했다. 어쩜 친절하게 약속이라도 한 듯 알림이 띠링-)





2014년. 5월 14일.

7년 전, 이맘때.

나는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의 수도)에서 헝가리로 떠나는 기차 안에 있었다.

부다페스트는 나의 유럽 일주 여행의 종착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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