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에는 결혼이 있는걸까.
몇달전, 오빠에게 결혼 얘기를 꺼냈었다.
"오빠, 내 나이 결혼 적령기잖아. 이 시기 놓쳐도 나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요즘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고 그래. 평생 혼자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오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어때?"
그냥 아무런 대책 없이 던진 질문이었고 오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음.. 오빠는 이혼할때 재희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줘서 더이상 상처를 줄수가 없어.
재희가 아직 다 크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한다고 하면 재희가 얼마나 충격받겠어.
그래서 재희가 성인이 될때까지는 결혼생각은 솔직히 없어."
순간의 타격감이 컸고, 순식간에 내 안에 있던 뭐라 이름붙일 수 없는 에너지가
스물스물 빠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나는 오빠에게 어떠한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 오빠는 그랬단 말이지? 나와 만나면서 10년이 넘을때까지 지금처럼 연애만 하려 했단 말이지?'
이렇게 생각하니 오빠에게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그런 생각이었으면서도 내가 미국에 있는동안 재희를 데리고 오겠단 생각을 했던것이 얄미워지면서
오빠에 대해 가지고 있던 무수히 많았던 기대와 욕심들이 순간적으로 증발해버렸다.
오빠에게 화를 내지도 않았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비혼주의를 선언했던건 나였으니까 이 이유로 오빠와 싸울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신기한건, 이유는 알 수없지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재희와 전처에 대한 이름표 붙일 수 없는 감정들 또한 기화되듯 사라졌다. 전처에게 연락이 와도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고 그런가보다 하게 됐다.
그들은 더이상 나에게 전혀 의미없는 존재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고, 2주전이었던가.
"오빠, 혹시 처음 나를 만났을때, 내가 비혼주의라고 했기 때문에 나를 편하게 만나기 시작했던거야?
그치만 내 마음이 그때랑 변했다고 해도 이상한거 아닌거 알지?
난 오빠를 만나고 오빠를 너무 사랑하게 됐고,
그동안 그 누구와도 꿈꿔보지 않았던 결혼이라는걸 오빠를 만나고서야 드디어. 해보고 싶어졌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결혼하고 싶어지는거구나 그런걸 이제서야 알게 됐어.
더군다나 혼자 미국을 갈 준비를 하면서도 난 누군가에게 자꾸만 의지하고 싶어졌어.
그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힘들거나 행복할 일상을 함께 하고 싶다는 욕심이 뒤늦게 든거야.
그런데, 그래서 오빠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오빠는 재희가 성인이 될때까지 결혼생각이 없다고 말하더라.
나는 그때 너무 속상했고 실망했어. 나만 오빠와의 미래를 꿈꿨다는 것도,
그리고 나는 오빠가 말하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는것도 슬프더라.
나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이 하고 싶어."
오빠는 나를 달랜다.
"아니 서희야. 그건 그 당시 오빠 마음이 그랬다는거지, 오빠 딱 정해놓고 언제 하겠다 그런 생각 한적 없어.
우리가 서로 지금처럼 잘 지내며 자연스럽게 더 잘 지내고 싶어지고 그러다보면 다른 계획도 생길 수 있는거겠지.
그리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끝이 아닌거 오빠만 봐도 알잖아. 결혼한다고 해서 다 좋은게 아니야.
서로의 관계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게 중요하고, 서로 얼마나 이해하고 배려하느냐 그게 더 중요한거야.
결혼하지 않고도 우리는 지금 이렇게 행복하고 서로 좋잖아.
서희가 미국 잘 다녀오고, 오빠는 서희 잘 기다리고,
그렇게 1년 뒤에 다시 만나서 서로 잘 지내다보면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알수 있을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마."
그리고 다음날, 오빠는 많은 생각을 했는지 조금 수척한 얼굴로 나에게 말한다.
"서희 부모님은 나에 대해 아셔?"
"....아니. 몰라. 말 못했어."
"그런데 결혼 생각은 어떻게 한거야. 부모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시겠어.."
"......"
사실 올해 1년간 나는 엄마와 대화도 잘 하지 않았다.
엄마를 만나면 자꾸만 숨기고 속이게만 돼서, 그래서 엄마에게 쌀쌀맞아졌고 퉁명스러웠다.
41년동안 한번도 그랬던 적 없던 내가 이제서야 사춘기 소녀처럼 엄마의 물음에 단답으로 대답하고 내방으로 숨어들기만 했다.
"너 요즘 이상해. 왜 엄마한테 벽을 치고 말도 잘 안해?"
엄마의 말에도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기 싫어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건 오빠와의 연애. 떳떳할 수 없는 연애 때문일까?
이러저러한 일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오빠와의 만남, 통화에 열심이다.
뭐가 어찌 됐던, 그냥 오빠가 좋으니까 밤에 오빠가 부르면 달려나가고
이따 잠깐이라도 시간되면 보자는 오빠의 전화에 마냥 신이 나고
출국일까지 10일이 남은 지금, 그렇게 지내고 있다.
결혼은 지금 당장 있을 일이 아니니까.
우선은 후회남기지 않을 사랑을 한다.
떨어져 있는 시간 우리 둘 중 어느 누구의 마음이 바뀐다 한들,
오빠에게 한점의 후회도 미련도 없기 위해.
전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