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에이전시가 자사를 리브랜딩 한다면? (1)
2023년, '아이데틱마케팅' 창립 10주년을 맞이했다. 앞으로 우리 회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가 아닌, 미래를 어떻게 만들까? 에 대한 물음으로 우리의 '리브랜딩'이 시작되었다.
수년간 유수 기업들을 위한 브랜딩을 해오면서 '좋은 브랜드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우리가 자사 브랜드를 재정립한다는 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지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지나친 신중함과 잘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인해 방향이 흐트러지거나 단편적인 생각에 갇혀 우리의 브랜드가 구태의연해지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쌓이면서 회사에 도전과 성공의 기운이 가득한 지금, 리더와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으로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 리브랜딩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브랜드를 섬세하게 다시 바라보는 일,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고, 아는 만큼 바뀔 수 있다.
많은 기업과 브랜드들은 저마다의 이유들로 새 단장을 시도한다.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하는 브랜드도 있고 뭐가 바뀐 거지?라고 느껴질 만큼 미세하게 변화한 브랜드들도 있다. 변화의 폭이 커도 기업과 고객에게 잘 스며들어 찬사를 받으며 성장하는 브랜드도 있고, 로고에 작은 변화만 준 리브랜딩의 결과가 퇴짜를 맞기도 한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리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Positive & Responsive
기업이 리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Positive와 Responsive.
Positive 리브랜딩은 사업이 잘 되어서 분야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하려 할 때 ‘능동적으로 수행하는’ 리브랜딩이고 Responsive 리브랜딩은 기업이 인수합병되거나, 사업 모델을 변경해야 할 때, 혹은 위기 극복을 위해서 ‘할 수밖에 없는’ 리브랜딩이다.
'HD현대'는 최근 현대중공업에서 사명을 공식 변경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해양, 모빌리티, 에너지 등 미래 사업을 다각화해 왔음에도 현대의 심볼과 중공업이라는 업을 규정하는 이름을 계속 유지하여 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공업의 큰 성장과 함께 신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과감히 브랜드의 모든 요소를 바꾸었다. 이는 최근 진행된 'Positive 리브랜딩'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매일유업'도 사명에서 '유업'을 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인식되어 왔던 유업체만의 이미지를 탈피해 글로벌 사업을 고려한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스타벅스 커피'에서 커피는 사라지고 '던킨앤도넛'은 도넛을 과감히 버린 글로벌 식품 기업의 사례와 유사하다.
BTS 보유 기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음악, 공연, 매니지먼트 사업을 넘어 종합 콘텐츠 플랫폼 기업으로 사업 확장에 대한 의지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이브'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사명을 변경하는 것이 리브랜딩의 핵심은 아니지만 빅히트의 사명 변경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인수 합병하여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회사의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다짐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이브는 게임 사업으로 진입하기 위해 게임 제작사 '수퍼브'를 인수하였고 플레디스(세븐틴, 뉴이스트 소속), 쏘스 뮤직(여자친구 소속), 이타카 홀딩스(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소속) 등 국내외 레이블을 인수하며 BTS밖에 없다는 약점을 보완, 글로벌 아티스트 풀을 확보하였다.
'Responsive 리브랜딩'은 인수합병 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브랜드를 리모델링하는 것을 뜻한다.
쌍용자동차는 세 번의 지배 구조 변화와 구조조정, 노조 파업 이슈로 인해 브랜드에 부정적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작년 9월 쌍용차의 새 주인이 'KG그룹'으로 바뀌면서 주주총회를 거쳐 'KG모빌리티'라는 사명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곽재선 쌍용차 회장은 “쌍용차라는 이름에 팬덤 층이 있지만, 그동안 씌워져 있던 아픈 이미지도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브랜드력에 의지하는 것보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새로운 옷을 입는 과감한 변화를 택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창립 18년 만에 사명을 ‘메타(Meta)’로 바꿨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회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메타버스로 제시하고 소셜 네트워크 대명사였던 ‘페이스북’ 사명까지 변경하며 사활을 건 리브랜딩을 한 것이다. 사실 그 시기에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과 편향된 알고리즘 등으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 내용이 언론에 자주 언급되며 주가 또한 폭락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마크 주커버그 CEO는 "소셜 미디어를 넘어 가상현실(VR) 분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더욱 '포괄적인' 이름을 선택했다"며 사명 변경의 이유를 알렸지만 실상은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이었던 것이다. 야심 찼던 계획과는 달리 2022년 영업손실만 137억(17조)에 달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
우리 회사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국내외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특히 해외 진출 시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기획부터 실행, 운영까지의 전 영역을 맡아 오면서 파트너사들의 높은 만족도와 더불어 국제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여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우리 회사가 진행한 여러 프로젝트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IF 디자인 어워드', 'A’ Design 어워드' 등 명성 있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총 19회 수상을 했다.
대표님은 이제 우리가 리브랜딩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작년, 아이데틱의 첫 사옥이 생겼다. 서울의 노른자라 불리는 강남 역삼동에 위치한 건물을 매입했고 현재 리모델링이 진행 중이다. 그동안의 성과로 회사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반영될 우리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회의실 벽 여기저기 붙어있는 우리의 아이디어들, 각종 마감재들로 색을 입힌 시뮬레이션 이미지들을 보면서 이곳에서의 우리 모습을 상상한다. 물론 허가와 심의의 과정에서 발생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골치가 좀 아프긴 하지만, 이 힘든 과정들 또한 아이데틱 구성원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자 사옥을 지었다는 자부심으로 기억되지 않을지.
변화의 기대가 가득한 첫 사옥이야말로 우리가 리브랜딩을 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아닌가.
아이데틱의 지난 10년이 성공적인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회사였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며 보다 매력적인 브랜드 경험의 순간을 만드는 ‘브랜드 컨설턴시’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년 하반기부터 브랜드 컨설팅과 크리에이티브 경험이 많은 인재들이 영입되어 A to Z 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되었고 내부 마케팅팀도 꾸려졌다. 아이데틱은 이제 안팎으로 성장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새로운 사옥과 새로운 비즈니스 방향성으로 새로운 성공을 위한 준비를 마친 지금, 그야말로 아이데틱 퀀텀 점프의 최적기. 우리의 성취가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질 환상적인 시기를 맞이했는데, 회사의 브랜드 또한 확장된 개념으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대표님의 말에 우리 모두 공감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는 리더와 구성원들의 마음가짐, 회사의 Next 비전을 담아, 우리의 Positive 리브랜딩이 시작되었다.
아이데틱마케팅. 우리 회사가 어떤 '업'을 삼고 있는지, 그 업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이 무엇인지를 전면에 내세운 사명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정된 업의 영역을 넘어서기로 했기에 사명의 변경이 필요했다. 제일 먼저 기존 사명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길어서였을까? 발음이 어려워서였을까? '아이데틱마케팅'이 성장해 오면서 준말(줄임말)이 생겨났다. 파트너사, 클라이언트들은 EideticMarketing의 첫 글자만 따서 'EM'이라 불렀고, 회사 내에서도 커뮤니케이션 편의를 위해 'EM'과 '아이데틱'을 사용하게 되었다. 영문명이 길고 발음이 불편했던 건 우리 모두가 체감했던 것. 회사명을 영문으로 쓰거나 메일 주소를 말해야 할 때는 긴 숨이 필요했다. 또한 많은 보도자료에서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마치 과도하게 사용된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이처럼 외부 홍보 시에 브랜드 식별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네이밍은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자신의 부캐를 정하는 듯 직원들의 열정적인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선발된 이름들.
우리 회사의 가치관과 직업 정신을 담은 재미있는 네임이 많았으나, 선호도가 높았던 이름은 WASP, SPERE, HYPERS, HECTO였다.
이 중 가장 인기 있었던 네임은 '말벌'을 지칭하는 영문 'WASP(와스프)', '규칙적이고 정확한 육각형 모양의 집을 짓는 벌처럼 협동과 끈기, 열정,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아이데틱’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와스프가 끌렸던 것은 우리 회사의 역할과 업무 스타일이 비슷했기 때문인 것 같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각자의 포지션에서 순차적으로 빠르게 협동하며 움직이는 퍼포먼스가 마치 벌 같기도 했고, 벌이 집을 짓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브랜드의 순간들을 '짓는' 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벌이 커뮤니케이션을 행할 수 있는 곤충으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회사 도메인을 등록할 때 브랜드명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가능했고 '와스프'를 검색했을 때, 동종 브랜드명으로 인해 혼선이 생길 일이 없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사명으로 변경되었을 때 10년간 쌓은 ‘아이데틱마케팅’의 브랜드 마케팅 활동이 리셋될 것이라는 우려가 생겼다. 우리의 피, 땀, 눈물을 품은 명예로운 프로젝트가 보도자료, 매거진, 커뮤니티 등 공신력 있는 미디어에 소개되어 있고 SEO 관점에서는 웹 포털에 차곡차곡 누적된 회사의 긍정적 자산이 많았다. 새로운 사명이 회사의 가치를 재부팅할 수는 없는 것. 앞서 나가기 위해 다음의 수를 두려고 하는데, 바둑판 줄이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뀐 사명으로 인한 후속 업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도 개명을 하면 주민등록증 재발급, 통장, 카드, 공인인증서 재발급, 통신사 명의 변경, 보험 변경 등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회사가 개명을 한다면? 수많은 행정 절차뿐만 아니라 공식 웹사이트, 회사 채널 등 디지털 상에 온보딩 하기까지 SO(경영전략) 팀은 반년 간 야근을 해야 할지도..
우리가 쌓은 신뢰와 자산을 지키는 것으로 점점 마음이 움직였다. 여러 기업들이 사명 자체를 브랜드화하려는 시도처럼, 우리도 사명에서 '마케팅'을 빼고 '아이데틱' 이름의 가치에 승부수를 띄웠다. ‘아이데틱(Eidetic)’이 가진 ‘직관적’이라는 의미는 가장 정직하게 우리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업무를 수행할 때 ‘직관’은 탁월한 역량이 되고, 마케팅 영역에서 ‘직관’은 중요한 감각이 된다. 애매한 것을 지양하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관적인 결과를 내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기에 ‘아이데틱’ 만큼 가치를 잘 전달하는 네임은 없다는 생각으로 굳혀졌다. (우리 회사의 퍼스낼리티로 MBTI 테스트를 한다면 ‘T’가 나오지 않을까?)
우리의 ‘아이데틱’이란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그 브랜드를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감각, 빠르게 대중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아이데틱’으로 불릴 때 가장 에너지가 불끈한다는 사실.
슬로건은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브랜드 요소이다. 우리의 철학을 누구에게나 구구절절 설명할 수 없기에 간결하고 명확한 메시지에 브랜드를 함축하여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턴시들의 슬로건은 무엇일까?
인터브랜드가 속해있는 미국 '옴니콤 그룹'의 Sigel+Gale
" Simplicity always wins "
시겔앤게일의 철학은 '단순한 것의 영리함' 즉, '강력한 승리의 전략은 단순함'이라고 말한다. 시겔앤게일은 해마다 9개국 15,000명의 소비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하여 'World's simplest brands'를 선정한다. 상위 랭킹에는 구글, 넷플릭스, 유튜브, 국내 기업인 삼성도 있다. 시겔앤게일은 캠페인을 통해 간결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파악하고 알린다. 결국, 심플한 브랜드가 이긴다는 슬로건에 기반한 기업의 행동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 'WPP 마케팅 홀딩스'의 자회사 Landor&Fitch
" for memorable, not seamless "
랜도르앤피치의 '브랜드는 매끄럽지 않고 기억에 남아야 한다'라는 슬로건은, 그냥 흘러가는 브랜드가 아닌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랜도르 앤 피치(Landor&Fitch)는 3년 전만 해도 'Landor'와 'Fitch'의 별개의 회사였다.
Landor(랜도)는 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로 명성이 높았고 Fitch(피치)는 브랜드 전략과 아키텍처, 리테일 등 오프라인 중심의 디자인 에이전시로 각각 다른 영역의 브랜드 사업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브랜드라는 인식이 브랜드를 경험하는 문화, 공간 등 다양한 채널로 확장됨에 따라 Landor와 Fitch는 과감히 자신들의 전문성을 통합하기로 했다. '브랜드 경험'을 강조한 슬로건에는 회사의 합병을 통한 비즈니스의 방향성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브랜드를 마주하는 순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듭니다.
내부 구성원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자, 우리의 존재 이유를 담은 메시지다.
브랜드는 좋은 의미를 담고 탄생되지만, 그것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만났을 때, 매력적인 순간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철학과 미션이 담긴 메시지.
브랜드마다 '진정성'을 강조하지만, 진심 역시 '잘 설계된 경험'을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마주하는 순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경험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기에, We build the moment! 그저 그런 외침이 아닌 무게와 책임감을 주는 언어, 아이데틱이 지향하는 ‘경험의 가치’를 관통하는 우리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우리 회사의 근간이 될, 언어적 요소(네이밍, 슬로건)들을 정립한 다음으로 비주얼 스타일의 개발 단계에 들어갔다. 새로 만나게 될 ‘아이데틱’의 순간, The Moment를 기대하며.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