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오자 모두 박수쳤다
올해 2월, 제드(Jed) 팀장이 입사하면서 우리 회사 재입사자 비율이 70%를 육박했다.
신규입사자 보다 재입사자가 많은 특이한 회사.
저마다의 사정과 꿈을 가지고 회사를 떠났지만, 무슨 연유에서 그들은 다시 돌아온 것일까?
나의 재입사 스토리에 이어, 가장 최근에 재입사한 제드 팀장의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그가 다시 돌아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제드 팀장을 알고 있던 직원들은 환호하며 매우 기뻐했다.
사실, 주변 반응만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해, 인성 좋은 일잘러구나.
사무실 벽 한켠에 붙어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들 중, 가장 많은 얼굴이 담긴 사람.
무표정부터 짓궂은 표정까지, 다양한 색깔을 보유하고 있는 제드는 어떤 사람일까?
제드 팀장을 인터뷰하기 전에 팀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회사 노션(Notion)을 통해 직원들에게 '제드 한줄평'을 요청했다.
"그래, 이거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디자인 감각을 가지고, A~Z까지 혼자 다 해낼 수 있는 1인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만능 일잘러'라고 볼 수 있는 제드.
'THE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란 뜻이란다.
아이데틱에서 레드닷, IF, 아시아 디자인 프라이즈 등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를 싹스리 한, 상복을 타고 난 남자.
온화하고 다정한 표정으로 이성적인 말을 해서, '다정한 팩폭러, 따뜻한 로봇'이라는 별명도 보인다.
해외출장이 잦은 회사에서 일하지만, 안전민감증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아이러니한 캐릭터.
(점점 더 궁금해진다..)
한줄평을 보고 나니, '아이데틱'을 다시 선택한 제드의 이야기를 빨리 듣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글로벌 브랜딩팀 팀장, 제드입니다. 저의 전문 분야는 브랜드 디자인이며, 글로벌 기업들의 브랜딩, 전략, 시각화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에 필요한 크리에이티브 영역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하나의 브랜드에만 집중했다면, 아이데틱은 완전 다른 세계였어요. WCG라는 200억 이상의 메가급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고, 고객사도 글로벌 기업들이었어요.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가 빠르게 진행되었죠. 미국인, 중국인 등 외국인 동료들과 함께 근무하는 경험이 처음이라 재밌었어요. 회사가 정말 바쁜 시즌이었는데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게 저의 온보딩 과정이었죠.(웃음) 그때는 제가 시니어 디자이너였는데, 아이데틱은 직급 체제를 따지지 않았어요. 구성원들 모두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주도적으로 오너쉽을 가지고 일하는 분위기였죠.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밖에 없는 회사의 정체성이 형성되어 있었어요.
퇴사할 당시, ‘디자이너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프리랜서 디자이너, 인하우스 디자이너, 에이전시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였지만 자아실현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데틱에서 2년간 네임밸류 있는 회사들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역량을 높일 수 있었다면, 그 경험을 토대로 브랜드 빌드업 과정부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까지 일관성 있는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퇴사 후에 스타트업 회사의 디자이너로 새롭게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여가 시간을 함께 보낼 만큼 친한 분들이 있었어요.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생긴 끈끈한 동료애 이상으로 쿵짝이 잘 맞아서 친밀한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이죠. 대표님과도 캐주얼한 만남을 가졌었어요. 회사의 비전과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저의 도전적인 성향을 간파하고 계셨죠. 팀장급이 되면, 실무가 아닌 리더로서의 매니징(관리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저는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더 발휘하고 싶었어요. 아이데틱에서는 좋은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맡아서 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디자이너에게 크리에이티브는 중요한 영역인데, 권한이나 제약이 심하지 않고 책임감만 있다면 자율 아래 일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아이데틱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들이 재입사한 걸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함께 하면 재밌겠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연락하고 지냈던 직원들이 코로나 때부터 지금까지 재택근무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서 의아했어요. 에이전시에서 원격근무가 잘 구동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전 직장에서는 자율 재택근무를 했었는데,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아서 내부 미팅을 어레인지 할 때,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어요. 아이데틱은 '화요일, 목요일' 정해진 요일에 다 같이 재택근무를 하니, 소통면에서 원활하더라고요.
원격근무의 한계에 대해서 외부에서 얘기를 듣는데, 조직과 조직원이 얼마나 얼라인 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신뢰는 기본 바탕일 뿐, 회사 내 원격근무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구성원들 모두 프로세스를 잘 지키면서 업무를 하고 있으니 생산성 있는 재택근무가 가능하죠.
제가 '축구광'인걸 지인들은 다 아는데, 축구 게임도 좋아해요. 그런데 아이데틱에 재입사하고 맡게 된 프로젝트가 EA(Electronic Arts) 게임사에서 만든 FIFA 온라인 게임이었죠! 관심 있고 즐겨했던 IP를 제가 만질 수 있게 되니 신났어요. 애정도 있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예요.
저는 EA 미국 본사에서 제작되는 에셋들을 Localization(현지화)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FIFA 가이드라인과 게임의 Start screen(인트로 영상) 작업, 현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주요 업무예요. 인게임 내 클래스(선수 등급)마다 그래픽 스타일이나 비주얼 요소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클래스 컨셉과 스토리가 일관성 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가이드가 필요하죠. World Cup, UCL 등 글로벌 IP를 활용한 콘텐츠가 노출될 경우에는 인게임에서 몰입감을 위해 현실의 콘텐츠를 정확하게 인게임으로 옮겨와야 해요. EA가 가지고 있는 IP를 유저들에게 임팩트 있게 각인시키고 해당 콘텐츠가 일관성 있게 노출시키는 걸 중점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저희 회사를 지원해 주신 분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참 많아요. 하지만 저는 디자인 능력을 바탕으로 내러티브(Narrative)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신의 디자인에 이야기가 있고 맥락이 있으면 디자인만으로도 브랜드의 진정성을 짚어줄 수 있죠. 너무 어려운가요?
단순하게 말하면, 디자인 과정에 대한 질문을 해요. 하나의 디자인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쌓여있어요. 프로젝트에 얼마나 애정을 쏟고 비중 있게 진행했는지는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 때 드러나죠. 프로젝트 개요와 전반적인 내용은 말씀을 잘하시는데, 디자인의 디테일한 부분을 질문했을 때는 '비어 있는 것 같아서 또는 예뻐서'란 단순한 답변을 들을 때가 있어요. 콘텐츠의 중요도에 따라 레이아웃을 구성했는지, 매체에 따라 고려해야 하는 부분을 이해하고 있는지, 이 폰트를 왜 사용하였는지, 심미적인 부분 외에도 디자인 효용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죠.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에 가장 많은 시간을 써요. 하나의 프로젝트는 단, 한 페이지의 장표로 보여질텐데, 디자인 과정에 담긴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진행한 국내 항공사 브랜드 개발이 좋은 사례가 될 거 같아요. 아직 정식 취항 전이라서, 항공사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내년이면 김포, 울산, 사천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 항공사는 희소하고 또렷한 비즈니스 모델과 철학이 있었어요. 섬과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취항하는 항공사인데, 25년에는 울릉도에 공항이 개항되거든요. 울릉도, 흑산도, 백령도 같은 쉽게 갈 수 없는 아름다운 섬에 항공 교통편을 연결하는 항공사예요.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서 심벌과 그래픽을 통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개발했어요. 심벌은 섬을 나타내면서 브랜드 가치를 부여했는데요. 섬으로의 이동과 연결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였고, 섬이 떠 있는 수면 위로 빛나는 태양, 여행을 통해 빛나는 순간들의 경험을 나타내요. 브랜드 진단, 전략 과정을 거치면서 고객사와 밀접하게 대화를 나누며 느낀 '가치'를 심벌에 담았습니다. 항공사에서 매우 만족해 주셔서 성취감이 컸던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사업군을 경험해 보길 희망하는 사람일 것 같아요. 에이전시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죠. 아이데틱에서는 게임, IT, 자동차 등 많은 분야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어요. 그리고 디자이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비주얼, 스타일 같은 외적인 작업만을 생각해요. 저희 회사에는 AE, 브랜드 기획자, 3D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브랜드의 내적인 영역, 전략, 개발, 기획, 버벌까지 통합적인 솔루션 과정을 경험할 수 있어요. 저 역시 배우고, 자극을 받으며 열심히 하게 되죠. 성장에 대한 열정과 패기 있는 사람이 우리 회사와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제드 팀장을 인터뷰하는 동안, 차분하고 조곤조곤 꺼낸 그의 이야기에서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내러티브'을 중요하게 여기는 디자인 소신과 항상 '배움'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동력이 있었기에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불리며 인정을 받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