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밝아 보이는 신비한 내 콩깍지
엄마, 요즘 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봤자 온몸을 죽 늘였다 폈다, 그리고 기구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인데 이 간단한 움직임들이 혼자서는 왜 그렇게 힘든지. 결국 돈을 내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꾸역꾸역 찾아가 선생님의 관리하에 운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도 이번에는 꾸준히 하고 있는 편이랍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벌써 한 달이 넘었다니까요! 그런 띄엄띄엄 스케줄이 뭐가 열심히 하는 거냐고 엄마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비싸고 좋은 헬스클럽을 1년 , 2년씩 등록해 놓고 가지 않은 적도 꽤 많아요. 어떤 날은 독하게 마음을 먹고 비싼 개인 강습까지 일시불로 신청했는데 , 결국 두 번 만에 포기를 하기도 했어요. 운동을 오라고 계속 전화를 해대는 책임감 높은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스윽, 차단하기까지…. 아, 이거 서서방도 모르는 비밀인데, 엄마에게 이렇게 고백을 하네요.
그런데 엄마, 내 눈에는 아마 콩깍지가 씌워져있나 봐요. 바른 자세를 위해 큰 거울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과 나란히 운동을 하는데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은 늘 빛이 나요. 줄넘기를 하느라 껑충껑충 뛸 때도, 죽죽 온몸을 늘이며 스트레치를 할 때도 내 눈에는 빛나는 나만 보여요. 요즘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두고 “나르시시스트”라는 어려운 말을 쓰기도 하는데, 아마 나는 그런 사람인가 봐요.
사실 나도 알아요, 내가 머리끝 두피 속부터 발가락 끝 마디마디까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태어날 때부터 원조 퉁퉁이라 딱히 예쁘거나 멋지다!라고 하긴 힘든 외모라는 걸. 누군가는 나를 설명할 때 “그 긴 갈색 머리에 눈 크고 덩치 크신 여자분 “이라 얘기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째요? 내 눈에 비친 나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반짝반짝 빛나고 멋진 모습인데요.
내가 이렇게 나에게만 보이는 콩깍지를 갖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한 마디 때문이에요. 손등 손가락 관절마다 움푹, 살 우물이 파여 통통하고 하얀 (어쩜 씻어놓은 족발 같은...) 내 손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랬어요.
“우리 보부장은 손도 이렇게 예쁘네”
“치, 손이 이렇게 뚱뚱한데 뭐가. 엄마 딸이니까 이뻐 보이지.”
“아니야, 이렇게 손 끝이 가지런히 좁아지는 게 예쁜 손이야. 얼마나 예쁘냐. 손톱에 까칠한 손 거스머리도 하나 없고 “
고단한 일주일을 보낸 몸이 이제 겨우 풀어질 때쯤인 일요일 낮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과 내 손을 보물처럼 소중히 만져주던 엄마의 손이 아직도 기억나요. 아무런 참가자도 없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기고 나를 슈퍼스타가 되게 한 엄마의 심사평 한 마디.
그날 이후 나는 내 모든 것에 최고의 점수를 주는 나르시시스트가 된 것 같아요. 오히려 엄마는 사춘기 이후 내게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 친구들이 놀리지 않느냐, 그렇게 정수리가 높은 머리를 하고 다니니 수탉 같다, 바지가 너무 껴서 뚱뚱해 보인다는 둥 갑자기 엄격한 심사위원이 되었지만, 어째요, 나는 이미 나를 사랑하게 된걸요.
앞 뒤로 번갈아가며 무릎을 굽혔다 펴는 간단한 동작에도 흔들흔들 균형을 잡기 어려운 모습이 거울에 비치지만, 그런 나에게 그날의 엄마처럼 미소를 지어주어요. 엄마 덕분에 그 모습도 내겐 멋져 보이니까요.
아, 너무 환상에만 빠져 사는 게 아니냐고 걱정은 말아요. 가끔 사진에 찍힌 내 모습에 “이 푸석푸석한 얼굴을 가진 뚱뚱한 사람은 누구야?” 하고 놀랄 때도 있어요. 기계를 거쳐 나온 내 모습은 자체 편집이 안되는지 가끔 나를 현실 세계로 돌아가게 만들어요. 그럴 땐 오히려 웃긴 내 모습만을 골라 친구들에게 보내주며 킥킥 웃기도 해요. 이것 또한 엄마가 내게 물려준 유머(humor)!
고마워요 내게 좋은 것만 만들어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