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법원 휴정기가 찾아왔다. 매년 가장 덥고 힘든 7월 말부터 8월 초, 법원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법원이 잡는 재판일정은 변호사들에게 단순히 출석의무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들은 재판 출석에 앞서 의뢰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면을 작성해야 하고 이를 제출까지 해야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 일정이 빼곡하다는 것은 검토해야 할 서류도, 작성해야 할 서면도 많다는 것이고, 이에 더하여 법원 이곳저곳을 출석까지 해야 변호사로서는 당연 매일같이 정신없는 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원 휴정기에는 대개 재판 일정이 잡히지 않는다.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의 2주 동안은 재판 스케줄이 깨끗이 비워져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저기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확보되는 시간이 평소보다는 많고, 당장 급박하게 제출해야 할 서면의 숫자가 줄어드니 변호사들의 마음도 여러모로 여유로워진다.
평소보다 다소 여유롭다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판이 없을 뿐 전화 및 방문 상담, 회의나 외부 위원회 일정 등은 그대로 진행이 되고, 휴정기가 끝난 후 몰아닥칠 재판 일정 등을 생각하면 법원 휴정기에도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 심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일을 아예 놓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만이라도 여유로운 것이 어디인가? 괜시리 사무실 책상도 정리하고, 묵은 사건 파일과 폴더들을 차분히 정리도 해보게 되는 풍요로운 때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회사 법무법인 지온에도 법원 휴정기의 모습이 보인다. 딱딱한 정장만 입던 변호사님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사무실에 출근한다. 최대한의 편안함 속에서 밀린 일들을 싹- 다 정리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것 같다(하하). 때로는 복장만 갖춰 입었을 뿐, 지금도 학교 다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온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서류를 보고 또 작성하는 일은 학생 때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을 하라고 학생 때부터 그런 훈련을 죽어라 시키는 건가도 싶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되는 것도 마음이 그나마 여유로워서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이런 때도 있어야지!
외부 회의 일정으로 나갔다가 핫해보이는 에스프레소 바에 다녀왔다. 평소에는 쫓기듯 다니느라 잘하지 못하는 일(주변 핫플정복)인데, 장소를 검색하고 그 장소에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느낌이었다. 바이러닉 에스프레소 바 여의도점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에 달달하고 귀여운 푸딩까지 즐겼다.
주말에는 평소 늦은 퇴근으로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딸내미와 백희나 전시에 다녀왔다. 딸내미와 백희나 작가님의 ‘구름빵’, ‘알사탕’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백희나 전시에서는 ‘장수탕 선녀님’ 모형을 보고 깔깔 웃는 딸내미를 보고 장수탕 선녀님 책까지 데려왔다. 부자가 된 것 같다.
오늘은 벌써 화요일, 임산부 시절부터 좋아하게 된 레몬맛 알사탕을 까먹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백희나 전시 동화책 '알사탕'에서는 동동이가 알사탕을 까먹고 아빠의 잔소리를 '사랑해'라는 이야기로 듣게 된다.
알사탕을 까먹으며 의뢰인의 짜증섞인 목소리도 다 ‘변호사님, 도와주세요’라는 간절함으로 들렸으면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알면서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기에.
법원 휴정기, 변호사들도 느리게 충전하며 더불어 일을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런 느린 시간들도 있기에 더욱 좋은 결과물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