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는 눈치 보고 붙여 넣기는 당당하게
“와, 이거 진짜 좋다.”
그래서 복사했다.
그리고 붙여 넣었다.
출처는 없었다.
이름도, 흔적도.
누군가 밤을 새워 쓴 글,
수십 번 덧칠한 그림,
망설임 끝에 업로드한 영상.
그 모든 시간과 감정 위에
무심한 ctrl c와 CTRL V 가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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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블로그 글 하나가
고스란히 누군가의 SNS에 올라와 있었다.
문장도, 말투도, 줄내림까지 똑같았다.
그런데 이름은 없었다.
그 글을 쓰기 위해
몇 번이나 문장을 지우고,
딱 맞는 단어를 찾으려 사전을 뒤지고,
식어버린 커피 곁에서 손끝이 굳을 때까지
붙잡고 있던 작업이었다.
그 시간들이
“좋아서 퍼왔어요.”
그 한 마디에 지워졌다.
좋아서 퍼갔다면,
왜 ‘누가’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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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rl c는 쉽다. CTRL V는 더 쉽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십 번 망설이고, 지우고, 다시 쓰고,
“이게 맞나?”를 반복하며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 있다.
창작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건 기록이다.
감정과 생각, 애정과 상처가 엉켜 있는
한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 흔적이다.
그리고 그 흔적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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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한다.
“연락할 방법이 없었어요.”
나는 안다.
‘없어서’가 아니라,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출처는 노력이다.
이름을 남기는 건 존중이다.
그 최소한의 태도조차 생략되는 순간,
창작자는 존재 자체를 지움 당한다.
어떤 이는 창작물을 ‘공유’라 말하지만,
이름 없는 공유는 ‘탈취’다.
좋아서 가져갔다면,
그 사람의 이름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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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결과만 본다.
예쁜 문장, 감각적인 디자인, 잘 만든 영상.
하지만 그 결과를 만든 ‘사람’은
배경처럼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
누군가는
아이디어가 막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 잠들고,
한 문장 때문에 하루를 날려버리고,
“그냥 지울까?”를 수십 번 고민한다.
그런 과정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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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는 거창한 예술가가 아니다.
그저
“내가 했어요.”
그 한마디가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다.
이름이 남는다는 건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건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존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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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름 없는 복제’와 ‘태도 없는 공유’가
너무 흔해진 시대이기도 하다.
복사는 쉽다. 붙여 넣기는 더 쉽다.
그래서 더더욱, 이름은 반드시 남겨야 한다.
그 이름이 누군가의 용기였고,
그 흔적이 한 사람의 시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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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Ctrl R을 누를 때다.
Respect. 존중.
단 한 줄의 출처가,
한 사람에겐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문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문장 위에도
누군가의 ctrl c가 올지 모른다.
그때, 당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길 바란다면
지금, 남의 이름부터 지워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