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겨울 아침, 이불속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조용한 발소리, 일터에 나가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버지의 거친 손길, 때로는 나를 놀리다가도 내가 울면 옆에 와서 말없이 손을 잡아주던 형.
그 모든 기억이 포근한 담요 같았다.
나는 그 안에 안심했고,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담요는 무게가 생겼다.
언제나 이해해야 하는 건 나였고,
참아야 하는 것도, 양보해야 하는 것도 나였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네가 조금만 참으면 되잖아.”
“넌 그래도 가족이잖아.”
그 문장들은 모두 옳고 선한 말처럼 보였지만,
그 말들은 내 감정을 자주 무시했고,
내가 말하지 못하게 했고,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건 가족이니까’라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를 계속 설득해 왔다.
불편해도, 억울해도, 외로워도—가족이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단어는 따뜻한 빛이 아니라, 내 안의 햇살을 가려버리는 그늘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는 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
사랑이란 무조건적인 이해가 아니라, 존중이어야 하지 않을까.
희생이 아니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조금씩, 가족이라는 그늘에서 걸어 나오는 중이다.
내 감정을 똑바로 마주 보고,
필요하면 거리를 두고,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족이란, 나를 가두는 틀이 아니라
나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길 바란다.
때로는 그늘이 있더라도, 그 아래 바람이 불고, 빛이 스며드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