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전거는 힘들어
2022년 5월 어느 날, 허리가 조금 좋아지니 운동이 하고 싶어졌다.
요가를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남편에게 6월부터 요가원을 다닐 거라고 얘기를 해 놓은 상태였다.
(의지박약인 나는 선포를 해놓아야 실행에 옮기니 가던지 안 가던지 선포부터 해놓아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베란다에서 몇 년째 고이고이 모셔져 있는 사연 많은 나의 MTB 자전거가 눈에 밟혔다.
'아! 요가원 가기 전에 자전거부터 좀 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럽게 남편에게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했고,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그러자고 하였다.
어쩌면 그는 내가 자전거 타러 가자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의 라이딩 생활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은 2008년식 MTB의 아버지인 'GARY FISHER'사의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로는 그 당시 최고 사양의 아주 비싼 자전거를 구입했다고 하였다.
(아마 그의 소비생활로 보아 군인이 되기 전 아름아름 모았던 소중한 쌈짓돈으로 아주 큰 결심 후 구입했음에 분명하다.)
지금은 'TREK'사에 흡수되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진 못하고, 우리 아이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소중한 자전거였다.
연식은 꽤 되었어도 나름 관리가 잘 되어있는 자전거를 그는 자주 타고 싶었겠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다 보니 자전거는 우리 결혼생활 내내 베란다 어느 구석에서 고이고이 덮어져서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그러던 2020년 어느 날, 뜬금없이 남편은 나에게 16인치 전기자전거를 사주었다.
평생 처음 나의 자전거였다. 내가 아이 었을 때도 한 번도 갖지 못한 나의 자전거...
나의 작고 소중한 자전거는 강력한 전기를 내뿜으며 소위 고바위라 불리는 언덕도 힘차게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며칠 자전거와 익숙해진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말을 내뿜었다.
"여보, 이 자전거는 힘이 좋아서 30km는 아주 쉽게 라이딩할 수 있을 거야. 아이가 유치원 간 사이에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거야~"
처음으로 내 자전거를 가진 나는 팔랑팔랑 귀가 흔들렸다.
아마 남편은 나에게 이러려고 뜬금없이 자전거를 사 줬음에 분명하지만, 나는 그의 음흉한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내 자전거가 생겼다고 들뜬마음 뿐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7월 무더운 어느 날 라이딩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김포는 평화누리 자전거길과 아라뱃길이 연결되어 자전거 타기엔 아주 좋은 위치이다.
중간에 차가 다니는 자전거 우선 도로가 있긴 해서 약간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자전거 타기엔 아주 좋은 위치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게 호기롭게 남편의 '전기자전거는 편할 거야'라는 말과 현대문명의 산실 '전기의 힘'을 믿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남편은 내가 처음 라이딩을 하는 걸 잊은 건지, 아니면 본인과 몇 kg차이 나지 않는 나의 튼실한 체력이 자기만큼 되는 줄 아는지 첫날부터 뙤약볕에 왕복 36km가 넘는 길을 달렸다.
남편 뒤에서 따라달 리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남편이 페달을 한번 저을 때마다 나는 두 번 세 번 젓고 있었다.
우아하게 페달을 밟는 남편은 백조처럼 보였고, 나는 백조를 따라가기 위해 물안에서 아등바등거리며 숨도 못 쉬는 지경이었다.
'응? 이상한데? 남편이 전기자전거가 편할 거라고 했는데...' 숨넘어가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아주 여유 만만이었다.
"여보, 내가 더 힘든 거 같아. 바퀴가 작아서 그런가?"라고 말해보았지만, 남편은 내가 처음이라 그렇다고 말했다.
처음 라이딩을 떠난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처음이라 그럴 거야!'
남편은 중간중간 돌아갈까?라고 물어주었다(예의상) 하지만 운동처방사의 존심이 있지 그렇게 중간에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거기서 그냥 돌아간다면 뭔가 패배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아라뱃길에 있는 중간 휴게소였다.
휴게소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 캔과 초코바 하나를 먹으니 다시 힘이 불끈불끈 솟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에 바람을 가르며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힘듦은 잊고 상쾌함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그렇게 나의 첫 라이딩은 주행거리 36.33km, 주행시간 3시간 7분, 휴식시간 37분 53초, 출발한 지 거의 4시간이나 소요되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준비 없이 남편만 쫓아간 나는 끔찍한 화상과 끔찍한 근육통으로 잠을 잘 수 없었고, 타이레놀 2알을 6시간 간격으로 몇 번을 먹고 나서야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며칠 동안 피부가 너무 아파서 피부과를 다녀와서야 나의 피부는 진정됨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화상!!!
남편 이 화상아!!!! 마누라를 죽일 참이냐?
그렇게 나의 첫 라이딩은 마무리되었고, 두 번째 라이딩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라이딩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출발하기 전 몸무게보다 600g이 빠져있음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365일 다이어터인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효과가 확실한 운동임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기약은 없지만 꼭 자전거를 타러 떠나리라!!!
쭉쭉빵빵한 내 미래의 몸매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