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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뭉 Oct 28. 2021

#1-2 중소기업, 좆소기업

취업시장을 전전하다 보면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공기업으로 나뉜 회사들에 지원을 하게 된다. 


물론 고등학력과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대기업에 입사하여 많은 연봉과 어마어마한 복지들을 받으며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보통의 우리는 중소기업을 전전하기 마련이며 그나마 좀 나은 경우는 중견기업의 문턱에서 허덕이기도 한다. 


물론 천상의 하모니 같은 중소기업도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내가 경험하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들은 것들은 중소기업은 대체적으로 공통분모가 있다. 


첫째, 회사 전반적인 시스템이 없고, 담당자들의 전문지식이 없다. 

중소기업의 특징은 보통 회사가 체계적인 결재 절차 또는 시스템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일처리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뭔가를 예방하거나 계획, 관리하기보다는 일을 벌여 놓고 수습을 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그 사업을 계획하고, 손익을 계산하고, 리스크를 분석하고, 업무를 분장하여 추진해야 하는 일이 어느 날 누구의 지시 또는 소위 잘 나가는 사업부서의 보고 만으로 시작이 된다. 

일이 이렇게 시작되면 시작부터 하나씩 문제들이 발생하며 턱턱 걸리기 마련인데 이것을 "왜 안되는데?"로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모 회장님의 "해봤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거야" 식의 명언에 따라 일이 처리되니 법률적인 문제, 판매, 수금의 문제, 각 거래처들과 발생하는 일들을 누가 할 것인지에 따른 업무 떠넘김의 문제 등등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거나 수습하면서 파생되는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단순 노동, 그 단순 노동 조차도 책임을 떠넘겨서 받는 일들이 입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취업시장에 문을 두드려본 사람들은 알 테지만 그런 곳은 항상 주기적으로 공고가 올라온다. 


둘째, 사수가 없거나,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도 그렇고, 경력으로 이직을 했을 때도 사수가 없었다. 경력으로 이직을 했을 때는 사수라기보다는 팀장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정년이 얼마 안 남은 상태에다 누구를 가르칠 능력도 바람을 막아줄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다만 욕하고 지랄하는 성격이 남달라 다른 직원들이 가까이하지 않을 뿐, 아마 여러분들이 가게 되는 회사도 비슷할 테다. 

난 팀장 또는 상사라는 직함의 존재 이유는 업무와 경험을 가르쳐 줄 수 있거나, 다양한 인간 군상에 따른 바람막이 둘 중 하나는 가능해야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 상식선의 회사 업무는 항상 반복되는 업무가 있기 때문에 그 반복되는 업무를 처리할 때 참고하는 업무지침 또는 매뉴얼이 있다. 우리가 회사의 사장이 아니고 월급 받는 직원이기 때문에 과도한 책임을 질 필요 없이, 고정 반복되는 업무라든지 그 업무에 파생하여 발생하는 업무들을 처리할 때 이것만은 지켜서 해야 한다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의 업무지침과 매뉴얼. 그리고 이 지침에 따라 업무를 오래 처리해온 경험이 있는 사수.


그러나 중소기업은 이 상식선의 밖을 벗어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주먹구구식 일을 벌이고, 수습을 하다 보니 지침과 매뉴얼 없이 일이 처리되고 그러다 뭔가 책임질 일이 생기면 이 부서 저 부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돌다가 결국 여러분이 앉는 자리에 까지 오게 된다. 그나마 좀 똘똘한 사수라도 만나면 해서는 될 일과 안 되는 일을 알려주기도 하는데 만약 입사해서 그 정도만 되는 사람을 만났다면 사수가 업무적인 지식을 알려줄 실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천운일 것이다. 

회사는 천태만상의 인간들이 있는 조직이고, 인간들은 입 맛에 따라 친절을 베풀기 때문에 최소한 해서는 될 일과 안 되는 일만 알아도 그 조직에서 비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 공무원이 주변 사람들의 왕따로 인해서 업무는 알려주지도 않고, 물어보면 투명인간 취급하고, 업무지침 대로 해라 실수하면 감사받는다는 식의 압박감에 자살한 기사를 보면서 누군가는 정신력이 약하다든지, 사회생활을 못 한다든지, 저런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어할지 모르겠으나 공직사회보다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들이며 곳곳에 많이 있다. 


셋째, 인수인계는 바라지 마라 맨땅에 헤딩

앞서 주먹구구식 일처리, 업무처리, 매뉴얼의 부재, 사수의 부재 등 악재를 살펴본 결과 여러분이 그런 곳에서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다 퇴사를 한다든지, 부서를 옮긴다든지 하게 되어 새로 신입직원 또는 경력직원을 맞이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인수인계해 줄 것이 없을 것이다. 


전임자도 그 와중에 월급 받겠다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상태에다가 그간 해왔던 업무도 차곡차곡 쌓여 있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류의 회사들은 결재라인 조차도 명확하지 않아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에 인수인계해 줄 것이 없고, 그저 그때그때 떨어지는 일들을 잘 처리하라는 말뿐이 해줄 말이 없다. 


되려 인수인계 잘해줘 봐야 내 탓이나 할 테고, 내가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해서 나간다면 모를까 자의 반 타의 반 퇴사를 하거나 부서 이동이 되거나 하게 되면 굳이 후임자를 생각하여 친절히 안내해줄 정도로 사람의 본심은 친절하지 않다. 그래서 그 자리의 업무는 다시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된다. 



넷째, 둘이 할 일도 네가 그냥 해봐 

그럼 그 회사에 그 자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회사의 사장 또는 최종 의사결정권자 입장에서는 우선 회사를 운영하면서 비용절감이나 이윤을 남기기에 가장 손대기 쉬운 것이 사람이고, 인건비이다.

 

물론 근로기준법이 있고, 혹은 노조의 설립 등 사회적으로 안정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 중소기업 사장들은 "내가 너희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데"라는 마인드가 만연하고, 그런 법들 다 지키면 회사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기본적으로 직원들을 잘 믿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윤 추구 외에 것들 예를 들면 매출을 발생시키거나 판매처를 늘리는 등의 일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고, 그건 누구나 아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이고자 둘이 할 일도 "네가 해봐", 셋이 할 일도 "네가 해봐"가 된다. 그리고 매출액이 어느 정도 되는 인지도의 회사들은 채용공고만 올리면 이력서가 미친 듯이 들어오기 때문에 새로 뽑아서 쓰면 되어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


결국 사람을 쥐어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게 곧 회사에 대한 충성심 테스트이고, 너에게 주는 월급 값이며 그 속에서 내 회사에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너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오너들이 상당히 많다.



다섯째, 회사에 실무자들이 거의 없고 시키는 사람만 있다. 

이런 회사일지라도 그 속에서 제법 살아남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뭐 방법은 여러 가지 

진짜 업무도 잘하고 영리해서 그럴 수도 있고, 가족 친인척들도 있고, 사탕발림도 있고 뭐 등등 인간 본성에 따라 능력에 따라 어느 한 영역이 출중한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이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진급을 하는 사이 그 밑에서 실무를 맡아볼 사람은 남아나질 않는다. 게다가 입, 퇴사율이 높기 때문에 실제 실무를 알아서 할 사람은 늘 부족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이 또는 직급 그리고 보상심리로 인해 실무를 등한시하려다 보니 실제 실무를 아는 사람 실무자들은 없고, 일을 시키는 사람만 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앉은자리는 이제 죽어라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자리가 된다. 

그나마도 시키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시키는 사람 조차 뭘 시키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어떤 결과물을 원하지는 모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다시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된다.


여섯째, 재주는 곰이 부리고, 성과는 여우가 채간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근무하게 되면 여러분은 어떨까?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 가는 말도 곱지 않을 것이고, 나 살자고 하면 뒤통수도 한 대 쯤은 후려 갈길 수 있을 법하지 않을까? 결국은 그런 환경과 상황들이 곰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결과를 채어 먹는 여우가 되게 할 법도 하다. 좋게 말해 그렇고 실제 당해보면 쉽게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만큼 기분 나쁜 일이다. 


더 황당한 것은 사장이나 소위 윗분들이라는 분은 그래도 내가 곰처럼 열심히 일하는 걸 알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그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건 여우 같은 사람일 뿐이다. 당연히 곰들도 필요하긴 하지만 곰들은 사실.. 너무 널리고 깔렸거든..


근데 우리도 여우가 되고 싶은데 사실 조직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우가 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물론 처음부터 여우처럼 잘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보통은 10년 차 이상 과장급은 되어야 여우의 내공과 내가 여우짓을 해도 싸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한 일도 어느 날 가보면 팀장의 공로가 되어 있고, 일은 내가 다 했는데 성과는 타 부서에서 먹고 승진도 하고,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던 이가 어느 날 나의 인사를 바라며 쳐다보기도 한다는 사실은 주옥같은 회사 생활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  


뭐 이건 중소기업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조직이 다 이렇다고 할는지 모르겠지만 중소기업은 이런 일이 상위 기업보다 더 비일 비재하며 곰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한마디로 안전장치가 없이 그 인간의 민낯을 드러냄에 더 주저함이 없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이 중소기업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곱째, 우리는 가족이여

내가 이런 회사의 사장이라면 어떨까? 물론 내가 더 잘 알지 주먹구구식, 시스템은 없고, 막 나가고 가끔 불법도 저지르고, 비리도 있고, 펑크도 좀 나는 거 같고, 그런 회사의 요직에는 그런 걸 알아도 상관없을 사람 나랑 같이 손에 똥이든 피든 묻힐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해답은 결국 가족이다. 

여기서 좀 웃긴 게 대기업도 가족에게 계열사 자리도 주기도 하고 갑자기 어느 날 본부장으로 낙하산도 타고, 근데 대기업의 그런 낙하산은 네임드라도 있는데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 아무런 경력, 학력, 조건 없이 어느 날 보면 이사가 되어 있거나 실장이란 직함에 돈 만지는 자리 등 앞서 말한 요직에 앉게 된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일단 깐다. 

뭐가 잘못되고 업무지침이 틀리고 이런 거 없다. 뭐 당연히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그냥 내 기준이 곧 회사의 기준이라 그냥 무조건 까고,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거기에 덤으로 맘에 안 드는 사람은 벽돌 하나 더 얹어 주기도 하고...

이 가족이 얼마나 어느 자리에 포진되어 있느냐에 따라 회사 생활의 명운이 갈리기도 하는데 흔히들 중소기업은 사원에서부터 고위 임원까지 부서별로 하나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하면 된다. 


또한 어느 시무식에서 항상 하는 말처럼 우리는 회사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 정도의 희생이 내 월급에 로열티까지 들어 있다고 말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많고, 이를 감수할 수 없다는 것은 회사가 너랑 같이 갈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앞서 말한 이런 모든 악재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는 망하지 않았다.

당연히 망할 줄 알았는데 희한하게 저렇게 하는데도 망하지 않는다. 


결국,

여러분이랑 상관없이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여기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얻어가야 하는 게 월급이라면 도 닦는 마음으로 한 달을 버티면 월급은 나올 것이고, 커리어를 얻고자 한다면 이일 저일 벌리고 사고도 치고 실패도 해보면 된다. 

대부분 이런 식의 회사들은 사람을 갉아먹고 커온 회사이기 때문에 사람 한 둘 죽어나가는 거  대수롭지 않다.


예전에 방송에서 누가 그랬던 말이 "언제 가는 잘리고, 망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난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이 말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시작이 있듯이 끝도 반드시 있을터 영원한 듯이 일하고, 영원한 듯이 눈치 보며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나로서 시작하고, 날 죽이는 회사는 나도 필요 없으며, 그 회사의 명함이 나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을 위해 또는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다니다가 어느 곳에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나를 상처 입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기 바란다. 회사생활은 모두 다 어렵고 괴롭지만 어느 하나 내가 비빌 수 있는 회사는 반드시 있다. 저런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더라도 직원들끼리 유대관계가 좋다던지 날 믿어주는 사수를 만난다던지 하는 일들 말이다. 


가슴에 항상 "뭐 어쩌라고" 한 마디 품고, 오늘도 힘차게 이불을 박차고, 한 발 더 나아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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