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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뭉 Sep 02. 2021

#2지금의 난 나의 잘못인가?

나는 서울의 변두리 근처 작은 중소기업에 법무 비스므리한(?) 업무를 하면서 먹고살았다. 


입사를 해보니 내 자리는 직원을 뽑아 입사와 퇴사, 간간히 권고사직이 반복되며 직원이 수도 없이 바뀌던 자리였다.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5일을 해줬는데 업무 인수인계는 자신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이걸 내가 왜 해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차가 적힌 종이 한 장을 주며 5일 내내 회사 욕, 회사 사람들 욕을 하고 떠났다. 


정말 멍했던 거 같다. 회사의 크고 작은 송사, 부서별 법무 업무, 영업직원들의 불법행위 등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속된 말로 그냥 똥 싸고 치워야 하는 일들은 전부 법무라는 이름 하에 1인 부서인 나에게 던져지게 되었다.  직원들이 하도 많이 바뀌어서 남아 있는 파일이나 매뉴얼 따위는 중구난방에 컴퓨터에 있던 파일들은 쓰레기나 다름없었고, 그나마 팀장이란 사람은 나와 다른 팀이며 군대로 따지면 전역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나름 깡다구 하나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나는 눈 떠보니 신경안정제 처방을 받아서 먹고 있었고, 흔하게 술 한잔 같이 할 동료도 없던 나는 집에서 혼술을 하며 불어난 살로 1달에 한 번 꼴로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죽을 거 같이 괴로워하며 내 건강과 바꿔 1년을 버티고, 또 1년을 버티고 하루를 버티는 마음으로 살았고, 그런 나와 무심하게 돌아가는 회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사고들을 처리하면서, 오래 연락도 안 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 변호사들 찾아다니며, 월급을 받아먹고살다가 어느 해 시무식에 나보다 1년 늦게 입사하고 나이도 어린 직원이 승진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하는 일이 회사 중요 목표 또는 사장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을 부여잡고, 하루를 허덕 거리던 내가 어쩌다 업무보고를 들어가던 날이면 사장은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장황하게 떠들고 있었으며, 내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며 박리다매로 물건을 많이 팔아오는 영업직원들을 치하하며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결국 그 회사는 그런 회사 였던 것이다. 


여러 분야의 책도 많이 읽었고, 자기 계발 강의들을  읽고 들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하소연도 해보았다. 


대다수 자기 계발서에서 이런 고통의 문제는 나로 인해 비롯되며, 세상에 바뀔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고, 공부하여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고, 타인을 경청해야 한다는 식에 내용들이 많았다.  


친구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은 같이 욕하면서 들어주거나, 나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친구들은 위에 있는 자기 계발서 내용처럼 네가 변하면 된다는 식의 해답을 주곤 했다. 운도 실력이라면서..


정말 이런 고통의 문제는 나로 인해 비롯되는가? 어려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나를 다 잡지 못해서? 자기 계발을 안 해서? 치열하게 고민을 하고 행동하던 나는 수많은 화살들이 나로 향하게 될 때, 그래 맞아! 내가 변해야 한다면서 나를 채직찔 하고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나를 더 괴롭혔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고통받고 있을 이름 모를 여러분에게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운은 실력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한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는 것, 태어나는 환경, 자라며 그 선택을 할 때의 환경은 철저하게 운이라는 뜻이다. 내가 한 선택은 그 환경에서 최선이었음에도 내 선택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모든 것이 내 계획에 의해서 모든 과오가 나로 인해서 라는 명제 속에 갇혀 살다 보면 그 속에 나는 초라하고 비참하다. 오히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나 나를 괴롭히는 회사의 시스템은 그런 명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이 만든 시스템과 환경이 대다수이다. 위로의 말이 아니라 실제 그러하다. 


그래서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진짜 정신과에 와야 하는 사람들은 오지 않고, 그런 사람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정신과를 찾는다고 하지 않던가.


소위 성공했던 친구들 아니면 타인의 노력을 운으로 평가절하 함이 아니다. 그들의 노력은 보상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열심히 노력한다고 성과를 보상받을 수 있는 운이 있었을 뿐이다.  

세상에는 죽어라고 노력해도 넘어지고, 다치고, 눈떠보니 절벽인 사람도 많다. 


혹자는 뭐 멘털이 약하다든지, 덩치 값을 못한다든지, 노력이 부족했다든지, 방법이 잘못됐다든지 등의 얘기를 할 수도 있다. 


그래 멘털이 약해서 뭐 멘털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나를 그만큼 더 사랑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방어 기제가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다이빙하는 사람을 멘털이 강하다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크고 작은 것이 없을 테니 말이다. 


덩치가 있다고 일이 수월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앞서 말한 멘털이 강해지지도 않는다 육체는 육체일 뿐이다. 

그들이 내 몸 체성분을 파악해서 덩치가 근육질인지 지방인지 알리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물론 남 탓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사회생활의 최우선 사항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좀 뻔뻔해져도 된다는 거다. 


회사도 당신이 그 자리에 목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갑질이 시작된다. 당신의 상사도 당신이 그 자리에 목매기 시작하면 당신을 부려 먹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자리가 끝은 아니고, 그 자리에서 당신이 한 일은 사소한 영수증 처리였더라도 영수증에 풀 칠 하는 법 정도는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여기 아니면 먹고 살길이 막막한데, 벗어날 길이 없어 괴로운가 당신에게 맞는 적당한 곳이 반드시 있다. 그 시간이 있다. 다른 곳에 더 나은 곳이 있다는 말이다. 

구관이 명관 입네, 모든 회사, 모든 조직에는 부당함과 부조리, 날 괴롭히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는 말은 명제이면서도 정언은 아니다. 


물론 인간의 행태는 대동소이하지만 나에게 맞는 장소, 나에게 맞는 사람이 꼭 어딘가 있다. 

그런 장소가 그럼 사람이 당신의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고, 그곳에서의 당신의 선택은 당신의 이로움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당신의 행복한 시간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만들어 줄 때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의 교만한 입으로 듣는 명언, 자기 계발서에 현혹되지 말고, 아무것도 안 해도 지금 그 자리를 버티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당신은 최고라는 것이다. 


지금의 넌 너의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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