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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뭉 Nov 28. 2021

#기행1 경주여행

회사의 구석 언저리에 혼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다가, 햇살이 어지러운 금요일 오후 광고 문자 알람에 숙박 할인 검색을 하고 무작정 결제 결제 버튼을 눌렀다.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긴다. 

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전 조사가 필요한데, 인스타, 네이버 등을 통해서 정보를 조사하는 일, 후기들을 꼼꼼히 확인하는 일 등이다. 이런 자잘한 일거리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난 즐겁게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후기들을 읽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하다. 


처음에는 경주가 문득 떠 올랐다. 사실 경주는 내 인생  두 번 정도 다녀왔던 거 같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아이를 낳고 서너 살 무렵, 뭐 딱히 갈 때마다 크게 무엇을 한건 없지만 그냥 막연한 천년고도의 향기 국사책에 나오는 역사와 정보들을 확인하는 정도? 그렇게 뭐 하루 이틀 보내고 나면 경주의 기억은 서울로 오기 전에 들르는 기념품 가게의 첨성대 열쇠고리 정도?


그러나 회사, 집 그 굴레 속에서 불안한 인생의 걱정과 두려움으로 지친 나에게 경상도 저기 어디쯤 있을 유적지가 왠지 시끌벅적하고 휘황찬란한 불빛의 휴양지보다는 나을 거 같아 경주와 정선에 제일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차에 몸을 싣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내 허리가 누구의 허리 인지도 모르게 멍멍해질 밤 12시가 다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고, 코로나 때문인지 원래 영업시간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영업이 종료된 휴게소들에서 못 채운 배가 고파 경주 시내를 한 껏 돌아보았다. 늦은 밤 지방의 도시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난 매번 여행을 다닐 때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과연 뭘 먹고살까 궁금하다. 도심지 생활에 익숙해진 나에게 왠지 모를 편의시설의 부재와 밤만 되면 가로등이 없거나 귀신 나올 거 같은 거리의 을씨년 함이 나에게 주는 이질감은 이 동네에는 나 밖에 없다는 착각을 일으켜 기분을 업되게 한다.


주린 배를 참고, 5000원짜리 호텔 조식을 결제한 후 아침에 내가 만날 토스트와 컵라면을 꿈꾸며 잠을 청하지만 늘 그렇듯 소풍 전날 밤 여행의 첫날밤은 쉽사리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은 나이를 먹어도 고질병이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9시면 문을 여는 불국사로 발길을 향했다. 서울에 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던 단풍들이 이제야 눈에 밟힌다. 고즈넉한 사찰에 풍경이 들어오고 햇살이 눈앞을 아린다. 

뒤로 보이는 토함산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불국사를 에둘러 감싸고 주차장에 발을 디딘 나는 그 안에 품긴 마음이 한 껏 들떠있었다. 


사뿐히 사뿐히 걸어보니 벌써 경내에 일하는 분들이 모래에 빗질은 참 차분히 도 해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잘 정돈된 모래를 밟는 느낌은 오히려 그분들의 노고에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다리를 지나 석가탑과 다보탑 사이 대웅전이 보인다. 나는 천주교라 짐짓 그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할 용기가 안나 밖에서 불상을 바라보았는데, 인자한 미소에 불상이 날 맞이 한다. 과거 불교가 국교였단 우리나라에 사찰도 많고 불상도 많지만 제일 맘에 드는 불상이다. 인자한 듯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아리송한 부처의 미소는 내 발을 붙잡고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길을 따라 왼쪽으로 극락전이 보인다. 옛날에는 없었던 거 같은데 극락적 복돼지라는 작은 돼지가 그 앞에 놓여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실제 극락적 복돼지에 소원을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는데 앞에 세워둔 복돼지 동상이 아니라 극락전 현판 속에 숨은 돼지가 그 복돼지라고 한다. 

나도 몰랐던 사실을 지나가던 아이의 엄마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덕에 알게 되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닫혀 있던 눈도 귀도 여행을 가면 크게 열리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엿들은 거 같아 미안하지만 덕분에 나도 현판 뒤 복돼지를 찾아 기운차게 소원 한 번 빌어 본다. 


오늘따라 햇살이 좋아 싱그러운 풀잎들 소원을 바라면 쌓은 탑동을 돌아보며 다들 소원을 무엇을 빌었을까 생각도 해보고, 구석진 기와에 나도 돌탑을 쌓아 본다. 

불가에서 돌을 쌓는 행위는 탑을 도는 행위와 같이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한다. 이 공덕을 쌓아 나로 비롯한 후세에 그 덕이 미치기를 바라는 마음 나 또한 다른 바가 없지 아마도 자식 있는 부모 맘이 다 그럴 것이다.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보니 경내가 한눈에 보이고, 천수관음이 보인다. 

나는 어려서부터 천수관음도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천 개의 눈, 천 개의 손으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알아 수많은 악귀들을 한 손에 참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어린 나에게는 지금의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앞에 서서 그림을 보고 있자니 수개의 손바닥에 박힌 눈들이 작은 나를 지켜줄 것 만 같아 든든함이 내 등가를 스친다.  아마도 죄지은 사람은 저 눈을 보고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그렇게 경내를 호기롭게 걷다가 일월문 방향으로 걸어 나왔다. 나오는 길에 보니 작은 다리가 있는데 다리 밑에 호수에 흐드러진 버드나무가 호수에 비쳐 거울처럼 맞붙어 있는 모양새가 맑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내 마음까지 비춰 주는 것 같다. 한 참을 쭈그리고 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호수 안은 검게 보여 앞이 안 보이지만 그 밖은 상대방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돌아 나오는 길이 많이 아쉬웠다. 한번 더 돌아볼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지금 느낀 이 감정들이 바래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못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으로 가봐야 할 곳은 어디일까 고민을 하다가. 분황사에 청보리밭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분황사로 걸음을 옮겼다. 때는 벌써 10월이라 아직 있을까 하는 기대 반이었지만 역시 청보리 밭은 구경할 수 없이 분황사의 범종을 울려보고 나왔다. 근처에 황룡사지의 터는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전에는 왜 이런 곳을 못 봤을 까 싶을 정도로 그 터의 규모가 크고 넓었다. 

경주의 산세는 보통이 얕고 구릉이 많아 시야 넓고 확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 황룡사지 터가 가장 그 장점이 드러난 곳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그 터는 오히려 나의 만족감을 꽉 채워준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져 주린 배를 채워야겠다 생각을 하고,  황리단길이 근처에 있는 대릉원으로 향했는데, 이건 웬걸 한가하게 천마총 구경하던 대릉원이 아니었다. 도로에서는 주차된 차들로 만차였고, 사람이 너무 붐벼서 차들이 뒤엉켜 있었으며,  그 와중에 전기 바이크들도 있어서 인파와 차 그리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전기 바이크 틈 속에 아수라장과 다름이 없었다. 안 본 사이 대릉원에는 많은 일이 있었나 보다. 내 생각에 대릉원과 황리단 길은 차라리 걸어서 다니면 모를까 차로 다니는 것은 절대 힘들 것으로 보이고 실제 주차도 어려우므로 이쪽 방향이 관광의 주목적이라면 아예 근처에 숙박을 잡는 것을 추천한다. 


도저히 차로는 다닐 수 없는 곳이라 전기 바이크를 한 대 대여해서 돌아보기로 했다. 구석구석 공사를 하는 곳도 많고 인스타 맛집이라고 표시된 곳에는 여지없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내 기억에 대릉원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작은 구릉에 불과했는데 그 앞으로 유적 발굴조사가 한창이었으며 그 위로 옛 안압지(지금은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길로 핑크 뮬리와 화단, 체험 등 많은 즐길거리들이 있었다.  한적한 시내와 대조적으로 길거리에는 온통 사진 찍는 사람과 먹거리를 먹는 사람들이 있어 코로나 시국에 내 성향과 맞지 않아 금세 발길을 돌렸다. 


많이 아쉬웠다. 예전 경주를 생각했던 마음에 그랬을까?

관광도시로 많은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어느 관광지나 가면 볼 수 있는 핑크 뮬리, 맛집이라고 해봐야 사실 우리가 알던 그 맛의 맛집, 경주빵은 대체 왜 경주빵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방송에서 나와 먹는 찰보리와 팥이 들어간 고가에 디저트는 정말 경주 관광의 재미를 반감했다. 

경주의 특색이 있는 먹거리와 놀거리들이 많았으면 했다.


그렇게 돌아 나와 차를 정선 방향으로 돌렸다. 물론 마지막이 썩 내키지 않았고, 맛집이라기에는 내 혀가 고급인지 별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배는 고팠지만, 아침 햇살 찬란하던 불국사에서의 오전 시간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하루였다. 다시 오게 된다면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더 오랜 시간을 머물고 싶다. 


극락전 복돼지에게  빌었던 나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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