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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뭉 Nov 19. 2022

#육아-아이를 키운다는 것

나의 희생으로 네가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아이는 내가 오면 제일 반가워 한다.

어려서 몸으로 놀아줘서 그런지 키가 제 어미보다 큰데도 나에게 와서는 손바닥으로 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온몸에 힘을 다해 나에게 몸을 던지곤 하는데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던 그 장난도 이제는 덩치가 제법하여  항상 그 끝은 내 성질로 마무리 짓곤 한다. 


때론 신발을 한 켤레 고르러 가면 눈치 없이 그 매장에서 제일 비싼 신발을 골라 놓고서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사줄라면 사주고 아니면 말고 하는 녀석의 눈망울과 소주 한번 덜 먹지 하고 10만원짜리 운동화를 골라 녀석에게 신겨 주고 난 후라던지, 가끔 수학여행비에 용돈까지 두둑히 챙겨서 체크카드에 넣어 주고 난 후의 나의 마음 이루 말 할 수 없이 행복하다. 


자식은 꼭 빚쟁이 같다.

돈 빌려 준 적도 없는데 돈 빌려준 채권자 마냥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태어난건 나와 나의 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이니 녀석은 그럴만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난 학비를 말 할 때도 과자를 한 봉 사먹을 때도 온갖 눈치를 보며 한 마디 하려면 편지까지 써서 말하곤 했는데 난 내 부모에게도 채무자였고, 자식에게도 채무자구나 라는 생각에 서글픈 감정이 들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뿌듯한 감정이 드는 것이 후자의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기쁨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당면하는 현실은 언제나 많은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고,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아이의 천연덕스러움과 아이 같은 모습이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꼭 알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희생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민감해 한다. 어원이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현대 사회에서는 내가 받은 이익이 없거나 적은데 상대에게 나의 생명, 재산 등의 값어치 있는 무언가를 바쳐서 상대를 이롭게 한다거나, 일방 가해자의 가해로 인하여 받은 피해자의 그 무엇에 주된 단어의 의미가 있다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각박한 우리에겐 당연히 "내가 왜?"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인류의 희생을 밟고 일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이런 논리대로라면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무슨 전쟁의 논리가 된다며 거창한 것 비판에 직면할 지 모른다고 생각도 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전쟁의 실험으로 의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독재정권에 맞서 희생한 우리 선배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국가라는 틀 속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은 사실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이제는 자식에 대한 희생, 부모에 대한 희생, 크게는 가족에 대한 희생을 마치 멍청한 구시대적 산물로 생각하고 주장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다. 


난 굳이 희생의 정의를 하고자 한다면 "나를 통해 타인을 이롭게 함"으로 정의하고 싶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복잡한 논리보다 그저 내 아이에게 나의 희생이 널 이롭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희생한 나의 닭다리가 억울해 크면 네 닭다리를 모두 뺏어 먹겠다는 마음도 아니다.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나의 욕망과 인간의 본성을 희생하여 널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로 인해 네가 이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면 그로써 만족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불안한 알 수 없는 나의 미래 중에서 한 가지 믿음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가족이라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부모의 희생이 없을 수가 없는 문제이다. 

내 인생이 괴롭다고 내 미래가 불안하다고 내 아이의 미래까지 불안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키워보니 아이들은 백지 상태의 도화지와 같았다. 물감을 준비해주면 그들은 우리에게 배운 습관이나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그림이 어떤 그림이 될지 기대하는 마음은 나의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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