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다 보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어 가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그렇게 맺은 관계 속에 얽히고 섞여 지옥을 만들기도 천국을 만들기도 한다.
난 그 인간관계의 시작점이 부모, 형제라고 생각한다.
즉, 가정과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로 그 안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냐에 따라 한 인간의 평생의 인간관계의 뼈대가 잡혀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그랬으니까
내 유년시절의 사건, 사고들로 인한 부모, 형제와의 인간관계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특히나 가정 형편에 안 맞게 서울에 유명 사립초를 다니면서 소위 성에 살던 초등학교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그 시절 어릴수록 잔인했던 인간의 민낯에(스쿨버스에서의 학교 폭력이나 촌지 받는 선생님 같은) 가감 없이 노출되었던 것이 어린 나에게 평생 가는 인간관계의 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내 주변에는 그렇게 친한 초등학교 친구도 소주 한잔 같이 먹는 고등학교 친구도 자식들과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대학교 친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그런 친구들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부랄 친구야!!"라며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일도, 되지도 않는 고백에 이불 킥하던 일도 있었으며 그 뒤에 함께 미친놈 미친놈 하며 소주 한 잔 먹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다 정말 죽을 거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연락해서 고민이라던지 하소연이라던지 내 속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었다.
문득 홀로 외로움에 과연 이런 것들이 예민한 나의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되어서 일까, 아니면 내 주변에 머무르는 인간들의 탓일까 싶은 생각에 밤잠을 설쳤던 적도 있다.
하던 일이 법률적인 일들을 하다 보니 변호사 비용이 아까운 친구들 아니면 집안에 송사로 머리가 지끈지끈한 친구들은 갑자기 어느 날 연락해 "야! 잘 지내냐?"로 시작하는 뻔한 인사말과 함께 밥 한번 먹어야 하는데, 근데 말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 뭐 그런 식의 연락들을 주고받았었고, 열심히 찾아보고 알아봐서 혼자 소송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소개도 해주고 나서 돌아오는 건 "아 역시 우리 삼촌 아는 변호사 쪽에 알아봐야겠다."는 식으로 맥이 빠지게 하는 적이 많았다.
누가 그러더라 "넌 다 좋은데, 요령이 없어"
즉, 눈치는 빠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캐치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내 일처럼 열심히 도와주는 것도 좋은데 흔히들 말하는 인간관계의 밀당, 요령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 말이 과연 무슨 말일까? 밀당? 요령?
결국 관계에 집착한다는 소리이다.
딱히 상대방의 반응과 행동에 상관없이 내깔겨 두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천역 덕스럽게 연기도 한번 하고, 굳이 그런 거 아니라도 주기적으로 연락하면서 관리도 하기도 하고 하면서 관계를 내 맘대로 해야 하는데 상대방을 배려해서 조심한다던지 앞 뒤 안 보고 그 사람을 향해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는 중학생 소녀의 마음으로 그 관계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이 많고, 굳이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도와줄 생각도 없으며 도움을 청해도 쉽사리 도와줄 생각도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은 나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아는데, 이런 나의 모습은 쉽사리 바뀌지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우린 누구나 겪어봤지 않은가 연애에서 내가 을이었던 때를...
대표적인 내 경험 은 이직 시기였다. 이직을 하고 나서 보니 관련 업종에서 이미 오래 근무하고 있던 대학교 후배 녀석이 하나 있었고, 내 자리에서 이미 근무했던 한 살 많던 대학교 동기, 변호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워낙 업무 정보도 없었고, 체계도 없던 곳이라 정보도 얻고, 도움도 구하고자 여기저기 많이 연락을 했었고, 도움을 요청했었다.
그러나 그 후배였던 녀석은 스무고개를 하며 두리뭉실하게 답변을 회피하고, 동기는 만나자는 약속을 거부하다가 어렵게 잡은 시간에 미용실 예약이 되어 있다며 약속을 취소하고, 본인이 옮긴 회사의 규모와 시스템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한편으로는 그들도 그들의 삶이 있었을 것이고, 그들의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은 그들의 장편 속의 단편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 더 친절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인간관계의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남의 일을 허덕거리면 도와주지 않고, 최소한으로만 조언해 줄 것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조언만 해주며 관계를 적당이 유지하는 방법으로 상처받지 않고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마음의 다짐은 "그래도 외면하지 않고 조금 더 친절하게"
내가 우리와 관계를 맺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건 나의 친절함이 나의 아이나 나의 가족을 상대하는 누군가의 친절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모두 조금 더 친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