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이직한 회사에 5년 차 직원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1인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작년 즈음 갑자기 부서 이동 발령을 받아 부사장 직급의 임원과 1년을 일하게 되었다.
이 회사를 40년 가까이 다니셨으며, 회사에 크고 작은 송사를 모두 경험해 보셨던 분과 일을 하게 되니 아무래도 부서 협업이나 오너와 커뮤니케이션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임원과 일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살짝 기대와 흥분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분은 그저 말 그대로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에 있던 분을 혼자서 북 치기 박치기하고 있는 나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잠시 배치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 임원분은 오셔서 평소에 내 일하는 모습을 봐왔던 터라 최소한 고된 풍파에 바람막이 정도는 해주려고 무척 애를 쓰셨다. 나도 처음 해보는 업무들을 여기저기 물어서 보고서화 하고 규정을 만들어 가고 매뉴얼을 만들어가며 오너에게 보여줄 보고거리를 정리하고 상의하며 여느 부서 팀장과 팀원 같은 일을 만들어 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제 그런 노력들은 매달 매분기 매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 같은 중견기업의 매출을 위한 규제로 보이기 십상이거나, 설사 리스크 예방 또는 징계의 의견 등을 위한 조사 행위조차도 오너 친족은 큰 성과 같았고, 오히려 오너 입맛에 맞는 해고를 위한 조사, 속된 말로 똥치우기 위한 업무 지시가 내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난 뒤 맑은 겨울날 그는 초췌한 얼굴로 날 불렀고,
"이번에 내가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이번 보고서는 그냥 보고하지 말고 묵혀두자 네 승진은 명단에 없어서 내가 추천서는 써뒀다. 웬만하면 큰 일 벌이지 말고, 더 좋은 회사 면접 봐서 이직하도록 해라 여기는 오래 못 갈 거 같다" 며 당신의 해고 같은 사직을 내게 알려주었다.
본인 위치상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싫은 소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크게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었고, 지금 떠난 지 1년이 넘어가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나를 제외하고
가끔 회사로 들르는 그와의 만남이나 전해 들은 그의 자식들과 손주 자랑을 들어 보면 이 회사를 다니면서 부동산 투자를 겸했고, 업무로 배운 법무 지식으로 이 일 저 일 소소하게 손댄 덕에 자녀들은 외국에서 살고 있으며, 본인은 수십억 아파트에서 와이프와 황혼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쓸쓸했던 그와 이별한 회사의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그는 사랑받는 할아버지, 아버지, 남편이었으며, 부인과 비싼 갈빗집 한 번씩 가서 외식도 하는 나름 만족스러운 삶은 살고 있다. 지금 그가 나간 회사는 월급이 두어 번 밀렸고, 오너가 어린 친인척으로 바뀌면서 조직개편 구조조정을 한다며 시끌시끌하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글을 통해 모두 끊임없는 자기 계발 그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성과를 어떻게 해야 잘 내고, 잘 드러나게 할 수 있는지 강의하고, 일은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이며, 더 좋은 더 나은 회사로 이직하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
"운칠기삼"
세상 모든 일은 운이 칠이요, 재능이 삼이란 그 말이 삶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운구기일" ?!
노력은 우리를 숱하게 배신하고,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인간들의 거미줄 같은 실타래 속에서 얇고 긴 낫줄 위에 살며시 외줄을 타고 있어서, 어디서 무엇이 흔들리고 어떤 먹이가 달라붙을지 아무도 모르는 까닭이다.
"그래도 성공한 사람 중에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글쎄
노력하지 않고도 성공한 사람은 있고, 그 노력의 순간도 운이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 노력의 마음도 언제 멈출지 모르는 내 심장과 머리에서 시작되니까.
될 대로 돼라 내버려 둬도, 너무 억척스럽지 않아도, 누구 하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나의 퇴사도 권고사직 또는 해고도, 그저 나의 운이 다 했을 뿐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다는 사실.
나의 노력으로 변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