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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Aug 03. 2021

<월간순정 노자키군>에서 <호리미야>로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장르의 진화

*본 글은 애니메이션 전문 웹진 <아니나>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anination.net/Content?cd=view&ContentCode=413&CategoryCode=1&iPageNum=4)




※ 본 글에는「호리미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 1. 애니플러스 <호리미야> 공식 스틸컷




  <호리미야>는 쟁쟁했던 2021년 1분기 애니메이션 라인업 중 러브코미디 장르를 당당히 대표하는 인기 방영작이라 할 수 있겠다. 러브코미디 장르는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수요가 있는 장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해당 장르가 로맨스 요소가 강조된 작품부터 코미디의 특성이 부각되는 작품들까지 여러 취향을 폭넓게 만족시킬 수 있는 장르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호리미야>는 그 중에서도 좀 더 로맨스, 정확히는 순정 쪽의 요소와 고등학생들의 일상 쪽 부분에 신경을 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러브코미디보다도 청춘 시트콤 쪽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리미야>는 메인 캐릭터인 호리 쿄코와 미야무라 이즈미의 만남에서 시작해 그들과 주변인물들의 다양한 관계를 다루며 이야기를 확장해 나가는, 여러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을 시간순으로 병렬 배치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에피소드들 간에는 느슨한 연결점이 존재하면서도 따로 봐도 큰 문제가 없고, 중심 인물들이 아닌 주변 인물들이 중심이 되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미야무라와 호리의 이야기로 돌아올 수 있는, 유동적인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에피소드 간의 온도차나 로맨스의 농도를 조절하기도 편하고, 단순한 러브코미디가 아닌 학생들의 청춘을 다루는 드라마 적인 요소도 꽤나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2. 애니플러스 <월간순정 노자키 군> 공식 스틸컷




  <월간순정 노자키군>은 그런 <호리미야>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작품이다. 이 작품도 <호리미야>와 비슷한 구성과 태도를 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작품 모두 코미디의 비중이 꽤나 높고 메인 커플링 이외의 주변 인물의 서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나 꽤나 많은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각자의 매력이 잘 살아있고 이들을 다루는 서브 플롯이 메인 플롯의 진행과 꽤나 잘 맞물리도록 설계됐다는 것은 두 작품의 공통된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의 외형적인 요소에서도 묘하게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은 덤이다. 




  그러나 이 둘은 결정적으로 러브코미디 장르의 “러브”와 “코미디”의 비율을 조절함에 있어서, 그리고 “러브”의 요소를 어떻게 다루는 지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인다. 기본적으로 구성이 비슷하면서도 러브와 코미디의 비율이 다른 이상 작품의 온도 차이가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월간순정 노자키군>의 경우 기본적으로 등장인물 간의 호감이 깔려 있음에도 코미디의 비중이 훨씬 큰 작품이며, 인물들 간의 만남과 관계의 형성은 절대다수가 유쾌한 분위기 아래 상황이 전개된다. 본인이 좋아하는 감정을 자각하는 것이 느리고, 혹은 자각하더라도 쉽게 이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연애 “쑥맥”이 서사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작금의 트렌드에 뒤쳐진, 조금은 답답한 서사이기도 하다. 


  비단 만화나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요 근래 방영하는 드라마, 웹툰 등 수많은 컨텐츠 들은 소위 사이다와 직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이는 연애전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월간순정 노자키군>의 로맨스는 최근 트렌드와는 좀 거리가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림 3. 애니플러스 <호리미야> 공식 스틸컷




  그런 의미에서 <호리미야>는 <월간순정 노자키군>에 비해 확실히 요즘 시기에 적절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두 작품의 원작이 연재된 시기가 그렇게 시대적인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호리미야>는 심지어 폴더폰을 쓰는 작품이다) <호리미야>의 로맨스 요소는 지금 시기에 훨씬 잘 맞아 떨어진다.


  두 주인공인 호리와 미야무라가 연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빠르고, 이 연애는 서로 간의 밀당보다는 이 연애관계가 두 사람이 놓인 고3이라는 불확실한 처지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 지를 다루는데 훨씬 관심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확실한 사랑과 불확실한 현실의 화학작용이 근래의 로맨스물 공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호리미야>가 다루는 인간관계와 연애의 형태는 때론 현실적이고, 결과보단 과정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된다. 관계를 회복하고, 연애를 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은 캐릭터들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연애를 하기 위한 과정이 중요했던 과거와 달리, 연애를 하고 있는 두 주체를 좀 더 심도 있게 고찰하려고 노력하는 전개는 휘발성이 강해진 근래의 연애관에 좀 더 적합한 접근일지도 모른다.




그림 4. 애니플러스 <호리미야> 공식 스틸컷




  <호리미야>의 원작인 <호리 씨와 미야무라 군>은 4컷 만화에 가까운 단편적인 에피소드 중심의 가벼운 러브코미디와 함께 그 사이사이 온도차가 극명한 청춘들이 흔히 할 법한 무거운 고민 또한 배치 해놓는, 마냥 밝지 많은 않은 작품이었다. 이를 좀 더 깔끔한 그림체와 함께, 지나칠 정도로 어두웠던 몇몇 에피소드를 쳐내고 호리와 미야무라의 첫 만남부터 둘의 졸업까지 시간 순으로 매끄럽게 에피소드를 재배치한 것이 지금 다루는 애니메이션 <호리미야>의 베이스가 되는 만화이다.


  당연하게도 <호리미야>가 다루는 캐릭터들의 고민은 비단 학원 러브코미디에서 흔히 다루는 연애와 진로 등의 고민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족 관계, 교우 관계, 진로 고민, 자아 성찰, 성적 호기심, 상실, 입시 부담 등 해당 시기에 겪을 수 있는 흔하고 사적인 수많은 고민들을 로맨스와 코미디와 동등한 위치에서 다루는 것은, <호리미야>가 때론 러브코미디 장르보다는 일상물, 혹은 청춘 드라마 장르에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가 된다.




그림 5. 애니플러스 <호리미야> 공식 스틸컷




  같은 분기에 <호리미야>를 포함해 <원더 에그 프라이어리티>, <약속의 네버랜드 2기>까지 무려 3편의 작품을 제작한 클로버웍스는 <호리미야>의 캐릭터들과 그들의 감정선을 독특하게도 “색”을 사용해 표현해낸다. 수채화가 번지듯 인물에게서 색이 번져 나가는 연출은 해당 연출이 사용되는 장면에서 흔히들 인물의 감정선을 담기 위해 사용되는 연출 구도가 아니라, 배경마저 지운 상태로 캐릭터만 잡으면서도 시각적으로도 밋밋하지 않고 오히려 캔버스에 초상화를 그리듯 담아낸다. 


  이런 연출을 통해 <호리미야>는 전반적으로 가볍고 밝은 톤의 작화와 유쾌한 상황들 사이사이에도 분위기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하고, 개개인이 느낄 수 있을 인간관계 속의 복잡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들을 녹여낸다. 어쩌면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가장 “개인적”인 고민으로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게 배치된 장치일지도 모른다.




  어느 장르 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장르적인 클리셰가 변하기 마련이다. 러브코미디 장르와 순정 장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고, 좀 더 시원시원한 관계의 진전을 원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꽤나 여러 작품들이 이런 빠른 전개를 택하곤 했다. 그 중 하나인 <호리미야>는 단순히 빠른 전개를 넘어 그 전개를 통해 얻은 시간적 여유를 다양한 학생세대의 고민들을 푸는데 쓰는 현명한 작품이다.

 

  폴더폰을 쓰는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호리미야>는 어떤 작품들보다도 요즘 세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청춘물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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