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수진 Mar 07. 2021

영화 로제타(Rosetta, 1999)

이름을 부른다는 것

음지를 들여다보니

마치 내가 걷고 있는 길인 듯 눈앞에 툭 튀어나오는 듯한 한 사람. 카메라는 그의 뒤를 부지런히 좇아 간다. 그의 걸음이 빠르다. 매우 화가 났다는 사실 만큼은 뒷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 소녀는 수습 기간이 끝나 공장에서 쫓겨난 로제타. 로제타는 공장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는 등 격렬하게 항거하지만, 결국 공장에서 경찰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간다. 

영화 <로제타>는 세계 최고 복지 국가의 그늘에 놓여진 한 소녀의 비참한 일상을 그렸다. 로제타가 직장을 잃고 돌아온 집에는 알콜 중독자인 엄마가 있다. 주인집 남자에게 몸을 내 주고 받은 술 한 병과, 남들이 동정으로 건네 주는 남은 음식 등과 함께. 로제타의 이런 집은 숲속 캠핑장 안에 있는 트레일러다. 빈민촌이 된 이 캠핑장 이름이 북아메리카 최대의 관광지인 ‘그랜드캐년’인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곳 그랜드캐년은 포장되지 않은 바닥으로 늘 늘 질척거린다. 그래서 로제타는 집에 가기 전 숲 속에 들러 몰래 숨겨 놓은 장화로 갈아신는다. 공동 수도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어야 하고, 유난히 심한 생리통에 이를 헤어드라이어로 달래야 하는 사춘기 소녀의 일상.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잔인한 일일 줄이야. 

유럽의 유능하다고 알려진 복지 제도가 이 아이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능력이 짧으니 직장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고용 기간이 짧으니 실직 수당 대상이 안 된다. 반면 고용 기간이 있고 보호자가 있으니 생활보조신청 기준에도 못미친다. 책임감 없는 부모, 방치하는 복지국가. 풍요로움에 겨운 사회는 로제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직장은 사람이 많다며 로제타를 받아주지 않고 헌옷 가게는 옷이 많다며 로제타의 헌옷을 받아 주지 않는다. 같은 시각, 같은 나라 안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남아도는 시간이 이 아이에게는 턱없이 부족하고, 어떤 이에게 평범하고 지루할 삶이 이 아이에게는 고단하기만 하다. 아직 부모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의 소녀. 소녀에게는 돈도 없지만 꿈도 없고, 웃음도, 눈물조차도 없다. 그리고 직장마저도 잃은 소녀는 평범한 삶이라는 자신의 유일한 바람을 얻기 위해 싸워야만 한다. 


전지전능한 제도는 없다

유럽의 복지는 지구상 자본주의 국가들이 부러워하던 국가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상적 선진국의 복지 모델이라던 유럽이 코로나19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유럽식 복지도 한계가 있어 최근 국가 재정이 어렵고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는 말도 드문드문 들리던 중이다.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약해지고 산업의 지속과 발전이 느슨해진 결과일 것이다. 

출처 : 아주경제

유럽에 비해 늘 긴장한 일상을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장에 급급한 우리의 산업 구조를 한탄해 왔지만, 그런 삶의 차이가 위기에서 어떻게 얼굴을 바꾸는지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어떤 제도나 이념도 지구상 모든 인간의 삶을 완벽하게 감싸주지 못한다. 공산주의도 그랬다. 완벽해 보이던 이론들은 인간의 욕심과 게으름에 허점을 드러내고 한계에 부딪치며 어느 순간 무너져 내린다.  

로제타가 극 중 들고 다니는 무거운 짐들이 바로 그의 삶이다. 얻어 온 헌 옷들을 또다시 팔기 위해 헌 옷 가게로 가는 길, 새로 취직한 직장에서 들어야 했던 밀가루 포대, 트레일러로 들고 가는 가스통, 그리고 술에 절은 엄마. 엄마는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술을 마시고 그만큼 가난은 더욱 무겁게 로제타를 짓누른다. 로제타는 알콜중독자 보호소에 가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엄마와 몸싸움을 하다 물에 빠지고, 이 때 단 한 번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바닥이 진흙이야.구해줘.”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지는 진흙 바닥이 바로 로제타의 삶이고, 엄마는 절체절명의 순간의 단 한 번 도움도 줄 여력이 없다. 

리케는 그런 로제타의 전쟁과 같은 삶에서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단 하나의 인물이다. 로제타는 리케가 물에 빠지자 내버려 둘까 잠시 갈등하다가 구해주지만, 결국 그의 직장을 빼앗는다. 사실 이런 정도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에게 도덕이나 양심 같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홀로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그 한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겠는가. 그래서일까, 리케는 수시로 로제타를 찾아와 그녀를 위협하지만, 그 때마다 들리는 오토바이 굉음은 위협이기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구원의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 로제타는 영화에서 단 한 번 웃고, 단 한 번 우는데 모두 리케의 앞에서다. 리케가 물구나무서기를 했을 때 웃었던 로제타가, 요란한 오토바이를 소리를 내며 찾아온 리케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영화가 끝난다. 고통뿐인 삶의 연속에서 웃음은 하나의 변곡점이고, 눈물은 또하나의 관문이 될 것이다. 


‘로제타’라는 이름 

다르덴 형제는 벨기에 사람이고 <로제타>는 다르덴 형제의 초기작이다. 복지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프랑스의 언어를 사용하는 유럽의 선진국 출신 감독이 복지의 그늘에 있는 아이들을 그렸다는 점에 개봉 당시 많은 평론들이 관심을 가졌다. 

<로제타>라는 영화 제목은 사회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마땅히 그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가 존재조차 모르는 아이를 영화라는 하나의 시선이 주시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모두가 마녀라 비난하는 여인을 보호하시고, 사람들이 외면하고 도망치는 병자와 장애인을 어루만졌다. 

다르덴 형제는 소외된 자의 일상을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묘사하였고, 바라본 사실을 냉철하게 사회에 전달하였다. 이 영화가 로제타를 향해 비춘 조명은 당시 많은 청년들을 수렁에서 건져냈다고 한다. 영화가 성공한 후 벨기에에서 ‘로제타 플랜’이라는 청년실업대책이 발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도가니>라는 영화가 장애인 사회의 차가운 그늘에 한 줄기 빛을 보낸 적이 있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런 생각을 기억하는 인간이 제도를 만들지만, 그 제도가 가동되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져 그럼에도 소외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기도 한다. 그러니 풍요로움이 만들어 내는 그늘은 오히려 더 깊고 서늘하다. 이 그늘을 발견한 사람이 이 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만들어 보낸 메시지는 버려진 어둠에 보내는 한 줄기 빛과 같다. 그러면 해피엔딩 재난영화의 흔한 결말처럼, “어! 저기 사람이 있다.” 하는 순간 따뜻한 마음과 책임감을 가진 구조요원은 더 많은 빛을 가지고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기생충(Parasite, 20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