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학 스물두 번째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기형도 "소리의 뼈"
물론 소리를 듣는 귀에는 뼈가 있습니다.
음파가 우리의 귀로 들어오면 고막과 귓속의 뼈에 부딪혀 진동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지만 소리 그 자체,
소리 그 자체에 뼈가 있을까요?
아니 '소리'라는 것이 있긴 있는 걸까요?
왜 우리가 보는 색은 실제 색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듣는 소리도 실제 소리가 아닐 수 있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시옷과 아와 기역과 오와로 이뤄진 사과가
진짜 사과가 아니듯이요.
일단 그 문제는 머리 아프니까 생각하지 않더라도,
기형도의 시처럼 '소리의 뼈'라는 것이 있을까요?
시에서 나온
교수님의 침묵을 견디다 못해 학생들이 내뱉는 소리는
뼈가 있는 소리입니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소리의 뼈에 대한 뼈가 있는 소리를 했죠.
이군에게는 침묵이 그가 낸 소리의 뼈고,
박군에게는 숨은 의미가 그가 낸 소리의 뼈였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 그가 낸 소리의 뼈였습니다.
'뼈=핵심'이라는 유서 깊은 비유를 사용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기형도라면 이런 뻔한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만 같아요.
어찌어찌 저 등록금 아까운 수업은 한 학기를 굴러갔고,
화자는 '어쨌든' 그 수업이 끝나고 난 뒤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기형도의 대답은 맨 마지막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소리의 뼈는 어쩌면
'듣는 이 귓속의 뼈'인 거죠.
그 어떤 소리도
듣는 이의 귓속뼈가 없다면 들리지 않습니다.
한낱 음파에 불과한 소리가
의미를 가지고 해석이 되는 것은
귀속의 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내는 소리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소리들
그 소리들의 뼈는
내 귓속에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는 결국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집에 바퀴벌레가 연속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반짝 거리는 갈색 등판을 가진 바퀴는 나오기 전에 항상
틱-틱-하는 소리를 내며 나왔습니다.
그 뒤로 밤에 잠자리에 누워
어디선가 틱-틱- 소리가 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정신이 번쩍 납니다.
그렇지만 바퀴는 없었습니다.
틱-틱- 소리는 제 소리의 뼈에서 나온 것이죠.
교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했던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소리를 피력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각기 다른 소리의 뼈에 대한 결론을 냈지만
그들의 귀가 그들 모르게 소리의 뼈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1. 소리의 뼈가 있을까?
2. 소리의 뼈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