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학 스물세 번째
"비어있음"
"공허"
"허무"
위와 같은 감정들은 당신에게 긍정적인 감정에 속하나요? 부정적인 감정에 속하나요?
대개는 부정적이고, 낯선 반응에 속할 겁니다.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우리에겐
저런 감정들은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하니까요.
그렇지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기쁨만큼이나 슬픔도 필요한 존재로 나옵니다.
기쁨이는 하지 못했던 일을 슬픔이가 해내죠.
항상 무언가가 채워져야만 하는 우리에게
'빈자리'는 상당히 낯선 자리입니다.
우리는 채우는 법은 배웠지만 비우는 법은 배우지 않았죠.
요새 들어 많은 자기계발 서적에서 비움의 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고는 하나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일부러 비우는 것'이 아니라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것일지 모릅니다.
살면서 빈자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깁니다.
그렇지만 늘 채워서 살아오던 우리에게 그 빈자리는 너무 낯설죠.
사람의 빈자리일 수도 있고
일의 빈자리일 수도 있고
사랑의 빈자리일 수도 있고
빈자리가 생기면 우리는 다시 채우려 합니다.
혹은 그 빈자리에 쓸데없는 다른 무언가를 잔뜩 가져다 놓고
나는 비어있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내 어딘가가 비어있다는 것,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참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함께 읽을 시인은 색다르게도 빈자리의 필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빈자리가 필요하다
오규원
빈자리도 빈자리가 드나들
빈자리가 필요하다
질서도 문화도
질서와 문화가 드나들 질서와 문화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지식도 지식이 드나들 지식의
빈자리가 필요하고
나도 내가 드나들 나의
빈자리가 필요하다
친구들이여
내가 드나들 자리가 없으면
나의 어리석음이라도 드나들
빈자리가 어디 한구석 필요하다
시인의 해석을 따라가자면
우리의 빈자리는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자리입니다.
새롭다고는 하지만, 그게 빈자리일 수도 있고(빈자리가 가고 빈자리가 오는 거죠)
나일 수도 있고, 나의 어리석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 됐건 자리를 비워두면 빈자리가 되어
그 빈자리에 무언가가 드나들게 됩니다.
가을날 벤치의 빈자리에는
밤새 내린 소나기의 방울들과 물에 젖은 낙엽이 잠시 자리하기도 합니다.
이내 아침 햇살에 말라버리거나
누군가 앉고자 하는 사람에 의해 치워지긴 하지만요.
가을날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의 옆구리에
빈자리가 생기거든
빈자리는 필요한 것이지 하고,
빈자리로 놓아둬봅시다.
그 빈자리에 무엇이 드나드는지 관찰해봅시다.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끔찍하고, 부정적이지는 않은
작고 귀여운 것들이 왔다 갔다 드나들지 모릅니다.
1. 내 안의 빈자리에 대해 써보자
2. 빈자리를 그대로 놓아두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