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학 스물다섯 번째
외롭다.
월요일도 외롭고,
화요일도 외롭고,
불금이 다가오는 목요일에는 왠지 더 외롭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친구와 함께 있어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내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이기에 외롭습니다.
특히 출근,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외롭습니다.
어쩌면 그 많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기에 더 외롭기도 하고요.
그래서 오늘은, 외로운 김에
외로워서 노래를 하고, 외로워서 철학을 했던 사람들과 만나보려 합니다.
언젠가는 일상문학에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문학이 하던 일을
요즘에는 노래가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하는데요.
어쩌면 노래는 언어뿐 아니라 '악(樂)'까지 더해져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시가 재미있다는 걸 한 밴드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많은 가수들의 노래에서
그들의 조상이 시인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오늘 함께 보고 들을 시는
"홀로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세상이 바라던 사람은 아냐
그렇지만 이 세상도 나에겐
바라던 곳은 아니었지
난 그걸 너무 빨리 알게 됐어
너무 빨리
말하고 싶어
그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그대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나이 기억 그 모든 꿈들
그저 다 모두 다 그래 그래 그래
너에 대한 나의 모든 꿈은
이렇게 깨져버리고
나는 다시 남겨졌네
말하고 싶어
그 모든 게 니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이런 나의 마음들이 전해지길
나이 추억 그 모든 꿈들
그저 다 모두 다 그래 그래 그래
말하고 싶어
모든 것이 내 잘못은 아니라고
원하고 있어
그대에게 내 마음이 전해지길
노래
언젠간 끝내야 하지만
아직 나는 여기 서 있네
그래
언젠간 끝나고 말겠지
그래도 난 아직 여기에
너와 함께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우리 함께 계속 노래해
-언니네 이발관
정말 이 노래를 끝으로,
언니네 이발관은 끝을 맺었습니다.
자의든 타의이든
절대 그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노래를 그만두는 사람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고,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가 노래해왔던 시간들과 합쳐져 단단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은 홀로 있기에,
다른 홀로 있는 사람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외로움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죠.
나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인다. 독학자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다.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악몽 속에서처럼 싱겁게 웃는다. 나는 도저히 삼키기 싫은 빵조각을 억지로 씹고 있다. 인간들, 인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나는 토하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솟구쳤다. ‘구토’다. -p.225.
그가 그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적인 외로움'을
'구토'라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죠.
우리는 ‘토 나온다’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곤 합니다.
아마 사르트르가 살아있었다면, 그 말 내가 먼저 썼어!라고 주장했을지도 모르죠.
(구)토나온다.
산더미 같은 일 앞에 놓여있을 때면 토 나온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그것 말고도 살면서 구역질 나는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죠.
자신을 향해 가식적으로 웃는 사람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야 할 때,
우울한 기분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화창한 하늘을 마주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다 싫어지고 구역질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요.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존재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생겨나서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내 생명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뻗어 나갔다. - p.156.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존재 이유를 찾고, 만들고, 부여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요.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규정하고 판단하려 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북한 존재의 무리였다. 우리는 너나없이 거기에 있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당황하고 어딘지 불안한 각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서로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중략) 그리고 ‘나’도 ―힘없고 피곤하고 추잡하고 먹은 걸 소화시키며 우울한 생각을 되씹고 있는― “나 역시 무의미한 존재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특히,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느끼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것이 두렵다. - p.237.
언니네 이발관이 노래하듯 우리는 홀로 있는 사람들이지만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함께 계속 노래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북한 존재의 무리이므로,
'무리'라는 데서 오는 소속감이 있죠.
구토를 읽는 데에는 거창한 철학적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사르트르의 <구토>는 마치 로캉탱이 우리와 친한 친구라도 되어서,
자신의 소중한 일기장 하나를 보여준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세세한 표현력에 감탄하고, 나도 이랬다며 공감하고,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도 들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의 세상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홀로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감인 셈이죠.
내 생각을 깨끗한 새 공책에 계집애들처럼 매일 쓰는 일은 그만두겠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일기를 적는다는 것이 유익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매우……. - p.9.
자, 이제는 당신이 계집애들처럼 일기는 쓰지 않겠다던 계집애 같은 로캉탱 씨의 일기를 읽어봅시다.
상당히 귀엽지 않나요?
1. 홀로 있는 사람들이라는 노래를 들어보자.
2. 들으며 홀로 있음에 대해 생각해보자.
+ 로캉탱 씨의 일기가 궁금하다면,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어보자.
*장 폴 사르트르, <구토>, 강명희 옮김, 하서,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