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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Graph Jul 18. 2018

그늘의 발달

일상문학 스물여섯 번째





우리는 중학교 사회시간엔가 현대의 가족 구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줄고 한 세대만 사는 핵가족이 새로운 가족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고요.


15년이 지난 지금, 4인 가족을 넘어서 2인, 

더 나아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엔 정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도 4인 가족, 우리 집도 4인의 가족형태지만 양상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고 아버지와는 마음을 닫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별 문제없는 집이지만 그 속은 곪아 터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매우 드물게, 아주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도 있었고, 행복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친구도 있었고요. 



여러 명의 사람이 만나기 때문일까요,

변수가 매우 많습니다.


싫다고 해서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주 징글징글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기 때문일까요.

그 어느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습니다.  



행동심리학자인 누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행동심리학자 J.B.Watson


자신에게 한 다스의 아이를 주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요. 


그의 말처럼 양육, 환경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부모의 밑에서 자라난 자식이라면

나의 부모에게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잘 아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내가 입에서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가시 돋친 말이 나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웃긴 건 그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또 어느 날은

별것 아닌 일로 함께 웃었던 일이 생각나 

그 짧은 감상으로 힘든 하루를 버티어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별거 아닌 버릇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가까이 있지만 매우 먼 당신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문학 작가들에게도 부모란 매우 큰 존재입니다.

문학 작품으로 논문을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작가의 생애를 보고, 결핍된 가족관계를 찾아 작품 속에서 그 결핍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 되는 해석이고, 말이 되는 논문입니다. 

그만큼 작가들에게도 부모의 존재가 크기 때문이죠.




오늘 함께 읽을 시인 또한

그 만의 특이한 가족관계가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의 아버지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아들에게 과실이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 아닌 폐원을 물려주었습니다. 


그 많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돌밖에 남지 않는 폐원은 시인이 태어나는 해에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제 나이만큼 크는 동안

아버지의 과수원은 더 나아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폐원을 상속하네

썩지도 열리지도 않은 미래의 과일들을 다 버리고

늙은 아버지는 참 이상한 농사를 짓지

늙은 아버지는 참 이상한 농사를 짓지

상속의 끝이 폐원이라니

상속의 끝이 폐원이라니


문태준 - 나와 아버지의 폐원 中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버지의 폐원은 시인의 폐원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그늘의 발달

나의 슬픈 기록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 온 빛


문태준 - 그늘의 발달 中



시인은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상속되는 것은 그늘이고, 폐원입니다. 


자꾸만 그늘을 베는 아버지는 결국 폐원을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아들은 그늘을 없애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과 아버지를 한 몸의 그늘에 빗댑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것은 그늘이고, 폐원이고

시인은 그 그늘을 발달시키는 것이죠. 


오히려 무언가로 그 그늘을 발달시킵니다.






기록(記錄)

시인의 슬픈 기록을 

기록하는 것. 



그리하여 시인의 일기장에는 잠시 꿔온 빛이 머뭅니다. 

비록 그 빛은 시인의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서 꿔온 것이지만 

그늘을 기록하는 행위가 

잠시 빛을 머물게 하는 것이죠. 




우리 각자는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로부터 우리에게 이어지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늘인가요?

빛인가요?

다른 무엇인가요?





일상문학 숙제

1.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 이어짐을 기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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