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문학

그늘의 발달

일상문학 스물여섯 번째

by Page Graph





우리는 중학교 사회시간엔가 현대의 가족 구성에 대해 배웠습니다.

여러 세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 줄고 한 세대만 사는 핵가족이 새로운 가족 형태로 떠오르고 있다고요.


15년이 지난 지금, 4인 가족을 넘어서 2인,

더 나아가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엔 정말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도 4인 가족, 우리 집도 4인의 가족형태지만 양상은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떤 친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고 아버지와는 마음을 닫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별 문제없는 집이지만 그 속은 곪아 터진 친구도 있었습니다.

매우 드물게, 아주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친구도 있었고, 행복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친구도 있었고요.



여러 명의 사람이 만나기 때문일까요,

변수가 매우 많습니다.


싫다고 해서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일까요.

아주 징글징글합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기 때문일까요.

그 어느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습니다.



행동심리학자인 누구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john-b-watson-1-sized.jpg 행동심리학자 J.B.Watson


자신에게 한 다스의 아이를 주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요.


그의 말처럼 양육, 환경을 맹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리고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지만,


부모의 밑에서 자라난 자식이라면

나의 부모에게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잘 아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내가 입에서

나에게 상처가 되었던 가시 돋친 말이 나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웃긴 건 그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또 어느 날은

별것 아닌 일로 함께 웃었던 일이 생각나

그 짧은 감상으로 힘든 하루를 버티어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별거 아닌 버릇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가까이 있지만 매우 먼 당신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문학 작가들에게도 부모란 매우 큰 존재입니다.

문학 작품으로 논문을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작가의 생애를 보고, 결핍된 가족관계를 찾아 작품 속에서 그 결핍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 되는 해석이고, 말이 되는 논문입니다.

그만큼 작가들에게도 부모의 존재가 크기 때문이죠.




오늘 함께 읽을 시인 또한

그 만의 특이한 가족관계가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의 아버지는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아들에게 과실이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 아닌 폐원을 물려주었습니다.


그 많던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돌밖에 남지 않는 폐원은 시인이 태어나는 해에도 그랬습니다.


아들이 제 나이만큼 크는 동안

아버지의 과수원은 더 나아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폐원을 상속하네

썩지도 열리지도 않은 미래의 과일들을 다 버리고

늙은 아버지는 참 이상한 농사를 짓지

늙은 아버지는 참 이상한 농사를 짓지

상속의 끝이 폐원이라니

상속의 끝이 폐원이라니


문태준 - 나와 아버지의 폐원 中


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버지의 폐원은 시인의 폐원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tree-308851_960_720.png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한 몸의 그늘

그늘의 발달

나의 슬픈 기록을 기록해요

나의 일기日記에는 잠시 꿔 온 빛


문태준 - 그늘의 발달 中



시인은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상속되는 것은 그늘이고, 폐원입니다.


자꾸만 그늘을 베는 아버지는 결국 폐원을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아들은 그늘을 없애지 않습니다.


시인은 자신과 아버지를 한 몸의 그늘에 빗댑니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것은 그늘이고, 폐원이고

시인은 그 그늘을 발달시키는 것이죠.


오히려 무언가로 그 그늘을 발달시킵니다.




2017-07-06-07-20-19-900x596.jpg



기록(記錄)

시인의 슬픈 기록을

기록하는 것.



그리하여 시인의 일기장에는 잠시 꿔온 빛이 머뭅니다.

비록 그 빛은 시인의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서 꿔온 것이지만

그늘을 기록하는 행위가

잠시 빛을 머물게 하는 것이죠.




우리 각자는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로부터 우리에게 이어지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그늘인가요?

빛인가요?

다른 무엇인가요?





일상문학 숙제

1. 부모님으로부터 이어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2. 이어짐을 기록해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