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7
학교마다 조금씩 상이하지만 박사 과정에는 크게 preliminary exam, qualifying exam, defense 3개의 관문이 존재한다. 첫 관문인 preliminary exam은 1년 차를 마치고 진행되고 written & oral test로 구분된다. 이 중 oral test는 내가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의 논문을 하나 선정하여 이를 교수님께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약 2시간동안 치뤄진 oral test에서 나는 교수님들로부터 수많은 질문 세례를 받았다. 교수님들의 질문폭격을 받는동안 '내가 하는 연구가 왜 필요한 것인지,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시험을 마치고 일주일을 빈둥빈둥 댄 후에야 슬슬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학을 지원하면서 하고 싶었던 연구는 Network modeling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traffic assignment라는 최적화 technique을 가지고 다양한 교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것이 하고 싶었을까? 내면의 본질적인 이유는 단순히 '재밌어 보여서' 였다. 나는 어릴적부터 수학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명확한 해답을 향해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Network modeling 역시 복잡한 교통시스템 내에서 최적해를 찾아간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UCI에 입학한 첫 학기 나는 현재 나의 지도교수님께서 강의하는 Travel Demand를 수강했다. 수업에서는 network modeling의 또 다른 Tool인 Bathtub model을 설명하였다. Bathtub model은 교통 network를 하나의 single unit으로 가정한 후 network의 들어오는 차량 나가는 차량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으로, traffic assignment 외에 또다른 network modeling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흥미를 느꼈다. 더욱이, Traffic assignment를 위해서는 Origin/Destination(O/D) matrix를 사용하는데 O/D가 얼마나 부정확한 지 경험했던 나로써는 'Simple is the Best', 즉 OD matrix 없이 매우 간단하게 network를 modeling할 수 있는 Tool인 Bathtub model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밌어서' 라는 이유는 technician에게는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researcher에게 해당 이유는 충분해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는 내 연구주제의 필요성, 정당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이 문제는 왜 중요한가? 왜 하필 이 문제를 풀고 싶은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며칠을 고민했다.
나는 운전하는 행위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있어 운전으로 인해 낭비해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아깝다. 더욱이, 운전만 하면 졸음이 쏟아오는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졸음을 이겨내야 하는 그 시간이 조금 과장하자면 거의 고문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운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싶은 목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쉴 틈 없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데 운전시간을 최소화함으로써 삶을 더 가치있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고, 이것이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생각한다면 교통혼잡을 최소화해서 도로에서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통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교통 수요는 통행량, 통행시간 및 통행거리와 같이 이용자 측면과 관련된 부분이다. 반면, 공급은 통상적으로 도로 및 철도 등의 교통인프라 제공을 의미한다.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수요 및 공급 측면에서 모두 접근 가능하다. 예를 들어, 혼잡시간 대에 더 많은 통행요금을 부과해 운전자들의 출발시각을 분산시키는 것은 수요 측면의 정책이다. 반면, 도로를 신설 또는 확장하는 정책은 공급 측면의 접근이다. 아무래도 교통정책은 정치공약과 긴밀한 연관이 있어 대다수 국내 교통정책은 유권자에게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공급 중심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약 2년 반 동안 예비타당성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에 몸 담으면서, 1) 얼마나 많은 국가재원이 인프라 신설에 투자되는지, 2) 일정 수준 이상의 공급이 확보된 지역에서 과연 인프라 신설이 최선의 방법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또한, 인프라 확충으로 발생하는 유발수요와 비첨두 시간에 미활용되어 낭비되는 인프라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교통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정책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책을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공무원들의 몫이기 때문에 연구자로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tool을 제공하고, 이 tool을 기반으로 정책을 제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통시스템은 굉장히 복잡한 시스템이다. 운전자 개개인은 모두 다른 특성 및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 예측이 어려운 동시에 공급 측면에서는 다양한 운송수단, 운전행태가 존재하기 때문에 교통 네트워크의 혼잡 정도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수 및 수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통시스템을 현실적으로 modeling하는 것, 즉 정확한 tool을 제공하는 것은 여전히 연구해야 할 주제이다.
수요, 공급 모두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modeling은 demand modeling과 network(=supply) modeling으로 구분되어 독자적으로 발전되었다. 어느 시점 이후 두 model을 합치는 연구들도 진행되기 시작했지만 정교해진 만큼 더 민감해진 두 모델을 합치는 과정은 더 큰 error들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복잡한 교통 네트워크를 간소화하여 하나의 단일 객체로 접근하는 연구가 또 다른 진영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 단일 객체의 접근이라 함은 교통시스템의 내부(ex. 경로, 수단)를 들어다보는 대신 네트워크에 외부에서 들어가는 차량(수요)과 나가는 차량의 관계를 통해 교통시스템 내부의 전체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마치, 욕조에서 물을 트는 양과 배출구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양을 통해 욕조에 쌓인 물의 양을 계산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교통 네트워크가 하나의 객체이기 때문에 경제학의 demand-supply curve를 활용하여 교통 수요와 공급 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단일 객체로 표현된 교통 네트워크가 교통 현상을 충분히 잘 설명함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단일 객체로 표현된 교통 네트워크에서 전반적인 교통 현상을 잘 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존 연구들을 통해 확인되었다. 하지만 좀 더 세부적인 교통현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연구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
다음 단계는 향상된 tool을 기반으로 정책 제언하는 것이다. 즉, 교통여건이 변화함에 따라 교통수요가 어떻게 변하며 개인 또는 사회적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수요분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부 주제는 congestion pricing이나 자율주행차량 등이 도입되었을 때 평행 상태의 demand가 어떻게 바뀌는지 예측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단일 객체의 교통 네트워크에서는 demand-supply curve로 수요-공급 간 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수요와 공급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량이 도입되었을 때 운전자들의 출발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생각해보자. supply-demand curve로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y축에 해당하는 비용이 정의되어야 한다. 통행에 포함되는 손실비용은 통행비용(travel cost)과 스케줄조정비용(scheduling deviation cost)의 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통행비용은 운전으로 인해 손실되는 시간 비용을 의미한다. 운전 중에는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어 시간가치가 0이 된다. 만약 다른 활동들의 평균 시간가치를 A라 하면, 운전은 'A(원/시간) * 운전시간(시간)'만큼의 손실비용을 발생시킨다. 스케줄조정비용은 가장 선호하는 스케줄을 조정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비용이다. 예를 들어, 출근 시 교통혼잡을 피하기 위해 1시간 일찍 출근한다고 해보자. 1시간 일찍 출발함으로써 잠을 더 자거나 가족들과 여유롭게 아침식사를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비용 스케줄조정비용이다. 만약, 자율주행차가 도입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까? 자율주행차의 운전자들은 운전 대신 다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통행시간의 손실비용, 즉 운전이라는 행위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가치비용이 훨씬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자율주행 차주들은 스케줄을 조정하는 대신 차가 막히더라도 차량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 선호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일반 차량 운전자들은 첨두시간 주위로 몰린 자율주행차들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스케줄을 조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자율주행 도입 후 일반차량 차주들의 전체적인 통행비용이 증가한다면 이는 자율주행을 가진 자 vs 가지지 못한 자 간의 equity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따라서, 정량적인 분석방법을 통해 자율주행 도입으로 발생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게 하나의 연구방향이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나는 이런 경제학 개념의 fundamental 문제를 data analysis를 활용한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싶다.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도로는 Loop detector를 통해 관측한 traffic state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HOV, HOT와 같은 수요 정책 시행 전후의 데이터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향후 개발할 평형 상태의 demand model에 대한 검증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model의 현실성 확보를 위해 deep learning model과 같은 data 기반의 모델도 함께 적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박사 2년 차가 되고 나니 연구주제 및 실적에 대한 부담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내 연구방향을 더 구체화할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박사과정을 즐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