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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Aug 31. 2020

교감 선생님, 왜 이러세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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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 선생님, 여기 앉아도 될까요?




  앉아있는 교감선생님에게 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똑같이 앉아서 서로를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리적 환경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 수평적 대화를 시작하는 필요조건 같았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더 꼼꼼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 위한 가짜 밑돌이 아니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것을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아니... 나도 어제 마음이 참...



  말을 맺지 못하셨지만, 문장을 끝낸 것과 다름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이미 미안해하고 있었다. 교감선생님의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과, 살짝 처진 어깨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빨리 미안해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지금 왜 마음이 불편한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그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거나,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고 각오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동학년 전체의 의견이 아닌, 나 혼자만의 의견이었음을 확실히 밝히고 나와 교감선생님 둘의 문제로 선을 그어야겠다는 마음까지 먹은 상태였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음이 무거운 부분이 있어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학년에서 저를 비롯한 네 명은 작년부터 2년째 동학년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김 00 선생님이 혹시나 소외감을 느끼시지 않을까 배려하고 있습니다. 친한 것은 사적인 것이고, 동학년이 업무를 진행하며 그분을 제외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정중하게 말하려고 애썼다. 말뿐만 아니라 눈빛과 톤, 자세도 중요했다. 이미 미안함을 표현한 교감선생님께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았고, 불필요한 오해로 나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제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겨난 과오에 대해 동학년이 함께 책임을 지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감 선생님께서는 5명 중 4명을 집어 마치 의사결정 과정에서 김 00 선생님이 제외된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김 00 선생님 입장에서는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실 수 있고, 이렇게 편을 가르는 듯한 말씀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 말들이 교감선생님께 어떻게 들릴지 살필 새도 없이, 펌프질 하듯 뛰는 심장은 오히려 입을 계속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부장님을 제외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 지속되어온 것은 아닙니다. 급작스럽게 변한 상황에 대처하다 벌어진 실수입니다. 잘못을 지적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번의 실수를 비약해서 작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나는 교감 선생님 앞에 앉아 당신의 행동이 부적절했고, 불필요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정중했지만, 분명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정중함은 보이지 않고 분명함이 냉정함으로, 또는 싹수없음으로 전달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되면 대화는 더 이상 논리가 아닌 감정싸움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맞아요... 내가 어제 일은 어제 일로 끝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내가 미안하지..  내가 그 부분에 대해 선생님들께 사과를 따로 할까?




  배신감마저 느꼈다. 어제는 그렇게 화를 내시더니 왜 오늘은 눈빛 한 번 차갑게 변하지 않으시는지 오히려 “교감 선생님, 왜 이러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엄청난 안도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교감선생님이 수줍게 말씀하셨다.




  어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다 보니 흥분해서... 어제 내 목소리 떨리는 거 못 들었어?




  나는 짓궂게도 “조금 느꼈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살짝 미소 지었다. 교감선생님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솔직하게 자기 개방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른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내 속에 있는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지막까지 탈탈 털어냈다.




  “저희 학년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어제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구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실수를 하게 될 겁니다. 사람이니까요. 그럴 때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저를 대하신다면 불편할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저희 학년 선생님들 모두 교감선생님을 참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꼼꼼하시고, 부당하게 일처리 하는 법이 없으시죠. 게다가 여러모로 선생님들을 배려해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언짢아하시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빈 말이 아니었다.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은 꼼꼼한 원칙주의자에 근거와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전형적인 장학사 출신 교감님이다. 그런데 난 그게 싫지 않았다. 멋대로 결정하고 일관성 없는 관리자보다는 이편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은 분이고, 그러면서도 한참 어린 교사에게 망설이지 않고 사과할 수 있을 만큼 열린 마음을 지닌 분이라는 것이다. 하루 전에는 기울어진 테이블에 앉아 훈계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본인만 어른이고, 나를 비롯한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어린아이 취급을 당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테이블은 제자리로 돌아와 얼추 수평을 맞추고 있었다.



  교무실을 나오며 참지 않고 토해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운이 좋았다. 지금까지 사회에서 마주한 모든 이들이  넉넉한 어른이었던 것은 아니다. ‘네, 알겠습니다’ 밖에 모르던 나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7년 전 바로 그 교감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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