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5~28] 미라클 모닝 일지
Sep 16.
단지 3일을 쉬었을 뿐인데 아침 맞이가 다시 힘들어졌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2주 전, 미라클 모닝 루틴에 익숙해졌을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습관의 힘>에서 작가는 얕은 습관은 풀 한 포기를 뽑는 것처럼 쉬워도, 오래되고 강력한 습관은 아름드리 나무를 뽑는 것만큼 어렵다고 했다. 평생을 들여온 수면 습관이다. 쉽게 고쳐질 리 없다. 습관보다 내가 더 끈질겨져야 한다.
지인으로부터 ‘런데이’라는 앱을 추천받았다. 달리기 가이드 및 기록 앱이다. 실내와 실외 모드가 모두 있어 다행이다. 난 어제 트레드밀 위에서 실내 모드로 처음 시도해보았다. 원래 내 목표는 3km nonstop running이었는데 뛰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지루함이었다. 그런데 이 앱을 사용하니 달리는 내내 성우가 러닝에 관한 정보와 주의사항을 쫑알거리고, 속도 변화가 있는 인터벌 프로그램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새 20여분이 스윽 지나간다.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 열심히 마음을 다스린 결과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치유해주는 시간의 힘일까.
나는 괜찮아진 내가 좋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낸 내가 자랑스럽다.
Sep 17.
오늘은 zoom으로 반 아이들과 화상 조회를 하는 날이다. 처음이다 보니 준비할 것도 있고 긴장도 된다.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발해서 여유롭게 아이들을 맞아야겠다. 바람이라면 원만하게 아침 조회를 마치는 것. 우리 반 아이들 모두 zoom 설치를 잘 마치고 접속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 서로 불쾌한 일 없이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것. 특히 타인의 얼굴을 캡처하거나 녹화하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이 없는 것.
어제는 희내를 만나 디큐브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마도 올여름 마지막 빙수를 먹었던 날이기도 하다. 맛있었고, 즐거웠다. 희내와의 시간은 언제나 솔직하다.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희내는 커블 의자도 하나 구입해갔다. 저렴한 가격에 2+1 조건이었지만 3개는 많았다. 다행히 1개를 희내가 구입해가서 집에 하나 학교에 하나 딱 맞게 구입한 셈이다. 요즘 들어 쓸 데 없는 짐이 너무 싫다. 쟁여두고 싶은 욕구보다 비우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물질적인 가벼움이 정서적인 경쾌함을 주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Sep 21.
월요일 아침. 이번 주는 바쁠 예정이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마음 챙김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을 자면서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변한 것이었다. 긍정의 힘을 느꼈고, 반대로 ‘원망’이라는 감정의 사악함을 절감했다.
‘원망’이 해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남 탓’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원인이 타인이나 환경이 되는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극도로 적어진다. 원망을 한다는 것, 즉 남 탓을 한다는 것은 문제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아닌 외부요인에게 스스로 넘겨준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죄책감을 떠안는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만 생각하고, 긍정적인 면을 발견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원망과 자기 비하에 삶을 허비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선, 비극을 비극이 아닌 것으로 정화해내는 감정의 하수 처리장을 잘 운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는 소중하다. 나는 지나온 길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후회하지 않는다. 많이 사랑받았고, 많이 사랑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내가 소중하다.
미라클 모닝은 했지만 차마 일기를 올릴 수 없는 사사로운 날들.
사진 속 날짜 말고도 차고 넘친다.
Sep 24
방학 동안의 내가 남들에 비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한편으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끈기와 의지가 놀랍다. 일이 조금 바빠졌을 뿐이고, 마음이 조금 어지러워졌을 뿐이다. 그런데 나의 미라클 모닝 루틴은 너무 쉽게 무너져버렸다. 미라클 모닝 루틴뿐만이 아니다. 글쓰기도 게을러졌다. 브런치에 있는 글들을 예전만큼 읽지 않는다. 당연히 내 손으로 글을 쓰지도 않는다. 10여 일 만에 겨우 미라클 모닝 일지 한 편을 올리고 또 한참을 미뤄두고 있다.
이 상황의 원인에서 바쁨이 9라면 마음의 어지러움이 91이다. 일을 틈 없이 해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여가 시간에는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 챙김을 하고 있다. 스터디에도 다시 나가고,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드는 중이다.
Sep 28.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시련을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더 소중히 하는 사람이 된다. 여전히 나는 많은 것을 가졌음에 감사하고, 지나간 날보다 남은 날들이 더욱 많음을 생각한다. 나는 아름답고, 유쾌하며, 능력 있는 사람이다. 나는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이 가치 있는 존재이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며,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 높이는 선택을 한다.
아침의 책들
<나는 개다> 백희나
<구름빵> 작가님의 또 다른 책이다. <장수탕 선녀님>도 참 따뜻했는데 이 책은 유난히도 힐링이다. 이제 강아지들의 하울링을 들으면 기억나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대답으로 들릴 것 같다. 그런데 왜 동동이네 집에는 아빠, 할머니, 그리고 동동이만 있을까? 엄마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구슬이는 길에서 엄마 방울이를 보고도 그 뒤에 있는 동동이가 탄 어린이집 차를 쫓아갔다. 엄마를 잊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큰 것일까. 동동이와 함께 누워 잠든 구슬이가 애잔하다.
<술술 립스틱> 이명희
꼴뚜기에 이어 4학년 두 번째 윤독도서다. 꿈꾸는 교실 프로젝트로 하려던 것들이 많았는데 코로나 19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온 책 읽기로 돌렸다. 집에 책이 없는 아이들이 많아서 이렇게라도 책을 한 두 권씩 사서 주는 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일단 두께와 글밥의 양은 합격. 3학년 수준이라 할 만큼 쉬워 보인다. 오히려 이 책을 먼저 하고, 꼴뚜기를 두 번째 온 책으로 선정할 걸 그랬나 싶다. 차이라면 꼴뚜기는 짧은 이야기가 여러 개 엮여 있어서 챕터별로 나가기에 좋았다면, 술술 립스틱은 전체가 이어지는 내용이라 책은 얇아도 이야기 자체는 꼴뚜기보다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일단 오늘 읽어보고, 내용에 대한 부분은 내일 기록해야겠다.
부끄럼 타는 예원이가 말을 술술 하게 되는 마법의 립스틱을 갖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때로 무시당하고, 놀림받았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남의 기분이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뱉어내던 못된 여자애 몇몇도 생각났다. 그리고 나 또한 못된 여자애들 중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진심이 아닌 말을 하게 되고, 관심을 끌고 싶어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도 하게 되는 일이 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이 되어 더 이해하게 되는 경험이다. - 총 8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나는 3번째, 8번째 챕터 읽기를 맡았다. 오늘 녹음을 모두 마쳐야지.
<Born a crime> Trevor Noah
영어 원서 스터디에서 읽고 있는 책.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유명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Apartheid(인종 차별 정책)가 있던 시대에서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과도기가 배경이다. 다른 인종과의 만남이 금지되어 백인과 흑인의 혼혈로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born a crime이었던 시대. Hood라고 불리는 슬럼가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시간이 지나 일반 학교에 다니기도 하고, 교육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고, 사다리는 중간이 끊겨있다.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다다를 수는 없는 오히려 더욱 잔인하고 좌절스러운 희망 고문의 시작이다.
“He has been given more potential, but he has not been given more opportunity. He has been given an awareness of the world that is our there, but he has not been given the means to reach it. ... They’re free, they’ve been taught how to fish, but no one will give them a fishing r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