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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나 Oct 18. 2020

우물에 빠진 선생님

살다 보면


  홍삼즙을 쭉 짜 먹고 난 뒤처럼, 보고 나면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어릴 때 보았던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이었다. 영화 내내 인물들은 각자의 우물에 빠져 허우적댔다. 자신이 처한 상황도, 다른 사람의 선택도, 스스로의 마음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연과 조연들은 고군분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우물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영화는 끝이 났다.

  2차 성징이 막 시작되려던 그 시기의 나는 스크린에 담긴 답답한 상황들과 인물들의 한심한 선택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일상은 수시로  답답했고, 사람들은 한심한 선택을 자주 했으며,  또한 의도치 않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우물에 빠지곤 했다.

  초등학교에서도 우물에 빠진 학생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학교폭력, 성적에 대한 고민, 가정 문제. 청소년이라는 이름표를 달기도 전에 자신의 힘만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문제들을 마주하게 된 아이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속수무책이다. 발 디딜 곳 하나 없고 손톱을 세워 붙잡을 돌 틈새 하나 없는, 벽이 매끈한 우물에 빠진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괴로워할 뿐이다.
 
  그런 경우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명쾌하다.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자면, 첫째, 우물 밖에서 밧줄, 즉 해결책을 던져주거나, 둘째, 지역 상담가나 제반 분야의 전문가처럼 도움을 줄 누군가를 불러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가 스스로 우물로부터 탈출하도록 돕는 것이 세 번째 역할이다. 여기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바로 선생님의 위치다. 선생님은 언제나 우물 밖 안전한 곳에 굳건히 자리를 잡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무턱대고 뛰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선생님마저 흔들려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것을 이해하면서도, 지금까지 교사로서의 나는 자주 위태로웠다. 우물에 빠진 아이를 돕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그 속에 기어들어가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풍덩 빠져버린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면 사방이 매끈한 둥근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고는 아이와 손을 꼭 잡고 우물 끝을 올려다본다. 저 멀리 떠있는 둥그런 하늘을.
 
  나는 그런 내가 한심하고, 좌절스러울 때가 많았다. 나의 감정적인 태도가 일을 그르치거나 학생과 학부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힘들 때가 많았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밥을 거를 때가 많았고, 쉬이 잠들지 못했다. 물론 일이 해결되었을 때의 기쁨과 개운함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하지만 많은 후회를 했다. 보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곤 했다.

  6학년 담임을 맡을 때면 문제가 더 심각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다는 건 학교폭력 문제를 만날 확률이 100%에 수렴한다는 것과 같다. 5학년 때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A의 학부모가 3월 첫 주에 찾아와 두 시간을 울고 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A는 친구들과 함께 B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C, 그다음에는 다시 B, 어떨 때에는 D와 E.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희생양을 찾는 그 루틴은 1년 내내 반복됐다.

  깊은 밤, 새벽에 가까운 아침, 주말 오후, 방학 중을 가리지 않고 학부모의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아이들과 상담을 하다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분명 내 앞에서 반성하고 화해의 태도를 보였던 아이들이 뒤에서는 더 악랄하게 보복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꼈다.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이들인데 나야말로 정신이 점점 쇄약 해졌다. 2학기에는 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퇴근하는 길이 기쁘지 않았다.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이 다가왔고, 아이들은 내게 편지를 주었다. 자기네들끼리는 사춘기 시기의 불안을 따돌림으로 풀었을지언정 내 생일날엔 새벽부터 나와 교실을 꾸미고 편지 수십 개를 써올 만큼 나와 1:1의 관계에서는 모두 내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가장 크게 따돌림을 당했던 아이가 준 편지를 읽었다. 그 아이를 보기만 해도 난 마음이 아팠다.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중학교를 보내는 마음이 무거웠다. 망한 시험의 성적표를 열어보는 심정으로 그 아이가 준 편지를 펼쳤다.

  예상 밖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감사했다고,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는데.


  아이는 자기 말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자기 일에 관심을 가져준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고 했다. 자기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해결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그럴 때면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난 지금 개인적인 이유로 우물 안에 있다. 어른으로 살다 보니 또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 내게 지금 가장 큰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시도 때도 없는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이들,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 문제를 시시콜콜 말없이 들어주고, 무겁게 입을 열어 조심스러운 위로를 건네는 이들이다.

  그들이 내게 힘이 되는 것은 해결책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버틸 이유가 생긴다.

  어쩌면 그 아이가 말한 것이 이것이었을까. 내가 동아줄을 내려주지는 못했어도, 그 깊은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함께 있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힘이 났던 걸까. 누군가의 인생에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고 착각이었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다만 나의 대책 없는 뛰어듦에 스스로 용기를 내어주었던 아이들이 고맙다. 서른여섯 살의 나도, 묵묵히 내 옆을 지켜주는 이들을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멀게만 느껴지는 저 우물 끝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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