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 따라, 감정에 따라 살면서 끊임없이 맺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처음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때부터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관계 앞에서 조금씩은 다른 모습으로 놓이게 된다. 그 많고 많은 관계, 그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관계의 종류와 차이
'관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가족, 친구, 연인, 하다 못해 내 인생을 잠시 스쳐가는 사람들까지도, 어느 한 구석에서 나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나와 어떠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종류가 다른 관계끼리는 차이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령, '부모님 앞에서의 나'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는 확연히 다르다. 어떠한 관계에 함께 놓이는 대상에 따라, '나'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그 사람의 특성, 그 사람에 대한 이해와 감정, 심지어는 간혹 그 사람이 '나'에게 가지는 기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나'는 내 모습을 상대방에게 최적화시킨다.
반면,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관계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가족관계라고 많이 느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커가면서 가족이 채워줄 수 없는 빈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을 채워주는 새로운 관계를 연인관계라고 하고 싶다. 필자의 경우, 연인관계에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되려 몰랐던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타인에 의해 내가 새롭게 정의되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의 예시로는 '스쳐가는 관계'가 있다. 필자가 스쳐가는 인연도 '관계'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험과 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에서 짧은 대화를 나눴던 트럭 아저씨는 육지 사람으로서 섬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제주도의 이면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고, 4.3 사건과 관련해 제주도민들의 육지 사람들을 향한 반감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스쳐가는 관계였지만 그 '스침'으로 나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들으며 색다른 경험과 배움을 얻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나도 많은 관계 앞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관계 앞에서의 '나'는 조금씩 다른 자아와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간다.
관계의 본질
그 수많은 관계를 관통하는 공통점이자, 이 글의 주제인 것이 한 가지 있다. 이것은 건강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필자는 이것을 '관계의 본질'이라고 칭한다.
이는 어떠한 사람과 깊은 관계에 있을수록 도드라진다. 연인관계로 예를 들어보자. 타인에 의해 비로소 내가 정의되는 것. 역설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수록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은, 뒤집에 말하면, 나도 상대방에게 본인이 누군지 알려줄 수 있다는 뜻이다.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알아챈다.
결국, 서로를 정의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인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가 작은 먼지 하나 없이 텅 빈 상태라고 생각해보자. '너'와 '나'는 그 속에 있는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생긴 물방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우주, 다른 것 하나 없는 작은 물방울 두 개, 이때 '나'는 '너'로 인해 정의된다. 바로 ''너'라는 물방울 옆에 있는 다른 물방울'로. '너'라는 물방울이 예쁘고 잘생겨서, 돈이 많아서, 내 스펙에 도움이 돼서가 아닌, 단지 내 옆에 있어서. 이렇게 '너'도 '나'에 의해 같은 이유로 정의된다.
나는 이러한 관계를 추구한다. 깨끗한 물방울 두 개 같은, 사실 현실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우주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다른 이유 없이 각자의 물방울로 단순히 정의되는 그런 관계.
글을 마치며
현실적으로 모두와 깊으면서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건 기억하자. 우리는 모두에게 물방울이자, 그 모두는 우리에게 물방울이다. 유한한 존재로서 의미 없는 가치들 때문에 누군가를 더 하찮게 여기지 말자. 이것은 필자가 자신과 맺은 '관계'에 대한 약속이자, '관계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