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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지 Nov 19. 2022

아이스박스를 150만원에 파는 방법

차별화 브랜딩은 이게 전부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스마트스토어로 월 1,000만원을 번다는 사람이 아주 많이 보인다. 그러던 중 진짜 잘 팔릴 것 같은 아이템을 발견한다. 월급 이상의 부수입을 벌여들여 결국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는 행복 회로를 돌리며 아주 호기롭게 사업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제품을 판매하기 앞서 시장조사를 한다. 아니 이런. 생각보다 당신과 같은 제품군을 판매하는 업체가 꽤 많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어 소비자들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다. 가격을 낮출 수밖에. 같은 제품을 내가 더 싸게 팔면 소비자들은 당연히 내 것을 사지 않겠는가? 가격을 대폭 낮추어 상품을 올린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여전히 베스트셀러를 산다. 이상하다. 어쩌다 한 두개 팔려도 너무 낮은 마진 때문에 남는 것이 없다. 천 원, 이천 원 모아 언제 경제적 자유를 이루나 하는 생각에 현타가 와버린다. 한달 후, 때려쳐버린다. 


사업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안정적으로 다니던 광고회사를 때려치운 나의 이야기다. 나와 같은 루틴을 밟는 2030 세대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사실 요즘은 어떤 상품이든 다 레드오션이다. 형태가 있는 제품에 국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크몽' 같은 재능마켓을 10분만 둘러보아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진 이 시점에서 우리 같은 생산자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든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보이는 요즘 세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급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낮은 가격이 정답이 아님은 똑똑한 당신은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세상을 공급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당신은 누누히 들어 알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격을 낮추지 않고 내 제품을 팔 수 있을까?


차별화 브랜딩. 남들과 다른 것을 팔면 된다.

다른 말로, 제품을 미끼 삼아 다른 것을 팔면 된다.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몇년 전, 액체괴물이라는 장난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무 기능 없는 고체와 액체 사이의 물질일 뿐인데, 하나에 8천원씩이나 하는 비싼 장난감이었다. 처음에 그것을 본 나는 기능이 없는 것 치고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액체괴물의 쾌감을 맛보고 나니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단돈 8천원에 행복을 살 수 있다니!"



출처 : KURJANPHOTO via Getty Images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돈으로 행복을 사려 한다. 23살의 나는 8천원으로 행복을 여러번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8천원이 아까웠지만, 행복을 끊지 못해 8천원짜리 행복을 10번 넘게 샀다. 10만원어치의 행복을 산 셈이다. 행복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바꿔 말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아주아주 귀한 것이 행복이다. 하지만, 나는 단돈 10만원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을 샀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액체괴물에 꼴아박은 10만원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행복을 위해 서슴없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아니, 행복을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게 1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누구든 사려고 하지 않겠는가? 팔리는 제품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제품이 아닌 가치를 파는 것이다.


나는 액체괴물을 산 것이 아니다. 행복을 산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 건강, 자유, 힐링 이런 것들에 약하다. 누구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결핍이 있기 때문이다. 가지지 못했기에 본능적으로 갈망하게 된다. 제품은 미끼일 뿐이다. 그렇기에 브랜드의 가격이나 품질 그 자체보다 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가 중요해졌다. 차별화 브랜딩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아이스박스는 다이소에 가면 5,000원이라는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아웃도어 라이프 매니아들, 혹은 이제 막 빠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절대 다이소 아이스박스를 사지 않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아이스박스 그 자체라기 보다는 '로망'이기 때문이다. 다이소 아이스박스는 싼 가격이라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로망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아이스박스를 100만원에 파는 법. 

아이스박스 안에 로망을 담아 팔면 된다.



출처 : YETI 공식홈페이지



여기 로망을 파는 아이스박스 브랜드 'YETI(예티)'가 있다. 심지어 100만원짜리다. 10만원짜리 아이스박스와 성능을 비교해 보았을 때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도 판명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티를 산다. 사람들은 아이스박스가 아무리 성능이 좋다고 해도 쉽게 100만원이라는 돈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도시에서 벗어나 아웃도어 라이프를 꿈꾸는 삶' 이라는 로망에는 100만원이고 1,000만원이고 투자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 이상도 전혀 아깝지 않다. 돈으로 내가 꿈꾸던 라이프를 살 수 있다면 100만원이라는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가치를 산다. 


예티는 어떻게 로망을 팔았을까? 다른 아이스박스 브랜드와 비교해서 예티가 한 것을 살펴보자. 


우선 예티를 창업한 미국의 한 형제는 엄청난 아웃도어 덕후였다. 사냥과 낚시를 즐기던 중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스박스였다. 가져온 음식들이 금방 미지근해지거나, 썩어버리곤 했다. 이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단열 성능이 우수한 폴리우레탄 소재로 아이스박스를 만들었다. 



출처 : YETI 공식홈페이지



그들은 알아주는 아웃도어 매니아들에게 무상으로 아이스박스를 제공했다. 아웃도어 커뮤니티에서는 예티의 아이스박스가 성능이 좋다고 금방 입소문이 났다. 이를 통해 예티는 아웃도어 라이프에 진심인 소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티를 찾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소수'였다.


예티는 타겟을 확장했다. 여기서 예티가 한 짓에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예티는 대형마트에서 다른 아웃도어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다르고자 했다. 차별화 브랜딩을 들이밀었다. 그 방법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야생에서 아웃도어 라이프를 영위하는 130명의 이야기를 <예티 프레즌드>라는 시리즈의 영상으로 세상에 내보였다. 딸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그린란드 어머니의 이야기, 전설의 물고기를 찾기 위해 120간 배를 탄 어부의 이야기 등을 들려줬다. 이 영상들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아웃도어 매니아들이나 그들과 같은 자연인들이 아니었다. 각박한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YETI presents' 시리즈 출처 : 유튜브 'YETI' 채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그들에게 아웃도어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것이다. 

더이상 예티를 사는 것은 아이스박스를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도시에 살지만 늘 아웃도어 라이프를 품고 사는 사람이다."

"나는 평일에는 일을 하지만 주말이면 자연인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각박한 도시에 찌들지 않은 사람이다."


라는 정체성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티는 명품 브랜드가 되었다. 

명품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샤넬 입는 사람, 에르메스 드는 사람, 페라리 타는 사람, 한남더힐 사는 사람. 사람들이 명품을 소비하는 이유는 퀄리티 때문이 아니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아무리 많이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를 명품을 사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이 비싸다고 불평하면서도 오픈런까지 해가며 사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명품은 천 만원, 이천 만원 이상의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이제 더이상 퀄리티 싸움이 아니다. 

가격 싸움도 아니다. 

어떤 '가치'를 주느냐의 싸움이다.


당신이 호기롭게 런칭한 브랜드가 생각보다 잘 안팔린다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 

눈물을 머금고 가격을 무리하게 낮출 필요도 없다.

당신만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찾아라.

소비자도 그 '가치'를 원한다면 게임은 끝난다.


차별화 브랜딩은 이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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