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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S Magazine Oct 04. 2021

축구는 전쟁인가요?

: 더비에 투영된 유럽의 문화에 대하여




0. 흔히들 축구-물론 다른 스포츠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만-에 "전쟁"을 대입하곤 합니다. ‘’X부 능선을 넘었다’, ‘용병’, ‘영웅’ 등의 용어나 어구뿐만 아니라 팬들이 대입하는 감정에도 전쟁이라는 키워드는 녹아 있는데요. 오늘은 흔히 ‘더비’로 불리는 라이벌리(rivalry)를 통해 전쟁과의 유사성을 뜯어볼까 합니다. 



더비의 대명사 "엘 클라시코" - 레알 마드리드 CF와 FC 바르셀로나 


더비란? 축구에서 유서 깊은 라이벌리를 보유한 두 클럽의 라이벌 구도를 통틀어 이야기하는 단어




1.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축구는 명백히 유럽의 스포츠입니다. 자신들만의 대형 스포츠 시장을 보유 중인 미국에서는 아직 축구가 메이저 스포츠의 지위를 받지 못한 것만 봐도 그러하죠. 때문에 축구에는 유럽사람들의 역사적 코드가 많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제는 미니 한일전이 된 "북런던 더비" - 아스날 FC와 토트넘 홋스퍼 FC



2. 아시다시피 유럽은 도시 국가들의 조직으로 시작된 나라가 대부분입니다. 하나의 군주 아래 결속된 도시 국가들이었기에 한 도시에 두 군주를 섬기는 일은 있을 수 없죠. 자연스레 한 도시에 두 개의 팀이 있는 경우 ‘누가 이 도시의 주인인가?’를 바탕으로 한 라이벌 구도는 상당해졌습니다. 



머지 강의 주인은 누구 "머지사이드 더비" - 에버튼 FC와 리버풀 FC



맨체스터 두 팀 간의 “맨체스터 더비”, 북런던의 주인 자리를 탈환하기 위해 싸우는 아스날과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타인위어 강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타인위어 더비”, 리버풀의 주인을 가리는 에버튼과 리버풀의 “머지사이드 더비”,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더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올드펌 더비”, 연고지의 두 팀이 한 구장을 나누어 쓰는 “밀라노 더비”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한 도시 안에서 이뤄지는 더비 매치이며 그만큼 자주 부딪히고 그 부딪힘을 즐기기도 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화끈한 주먹질 "올드펌 더비" - 레인저스 FC와 셀틱 FC




3. 도시 국가의 특징상 어느 도시가 연방국 안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인지 또한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구도로 싸움을 이어가는 더비도 존재합니다. 이런 더비들의 특징은 한 국가 혹은 한 리그에서 대체로 하나의 더비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말릴 수 없는 "노스웨스트 더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리버풀 FC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맞붙는 “엘 클라시코”, 맨유와 리버풀이 격돌하는 “노스웨스트 더비”, 뮌헨과 도르트문트 두 독일 클럽의 자존심 싸움인 “데어 클라시코”, 인테르 밀란과 유벤투스의 “데르비 디탈리아”가 그 예시가 될 수 있겠죠. 



전차의 자존심 대결 "데어 클라시코" - FC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4. 비유럽권의 더비들 또한 이러한 유럽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한국의 경우 수원과 서울이 펼치는 “슈퍼매치(국가의 최강자를 가리는 더비)”, 동해안의 터줏대감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지역적 특징을 보이는 더비)” 등이 이러한 더비 매치의 예시가 됩니다. 



'용병'이 돋보이는 전쟁 "슈퍼매치" -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




5. 도시 국가로 시작된 유럽과 도시 간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는 축구라는 스포츠에 깊게 배어 있습니다. 이제 도시 간 전쟁이 빈번한 시대는 끝났지만 이러한 코드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클럽 간 경쟁 위주로 서술하였지만 이것은 나아가 한국과 일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알제리와 프랑스, 영국과 독일 등 실제 전쟁이 이뤄졌던, 혹은 지배-피지배 관계에 있었던 나라 간의 신경전으로 국가 정서 속 깊은 곳에 존재하죠.  




6. 어쩌면 우리는 축구를 통해 일종의 대리전쟁을 치르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카탈루냐의 독립 이슈가 대두되는 스페인에서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자존심이자 자랑입니다. 그들의 최고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의 “레알”이 왕가의 지원을 받는다는 의미인 것은 제법 알려진 사실입니다. 더비 라이벌 사이의 감정을 단순히 스포츠로만 치환하기 어렵다는 좋은 예시죠. 우리도 일본과의 경기가 있을 때면 절대 지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것 또한 하나의 더비로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에게 뜨거울 축구 국가대표 한일전



7. 다만 우리가 이러한 더비에 너무 많은 감정을 소비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즐길 수 있는 정도를 찾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축구는 축구일 뿐 삶에는 더 중요한 일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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