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reseas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ODS Magazine Oct 10. 2021

맞는 일을 끌어오는 "자성"

: <기획자의 독서>, 김도영

마사지 삼인조가 읽었던 글 중 구미가 당긴 단락을 공유합니다.

역시 정수는 요약이 아닌 원본에 있습니다. 저희는 그저 사견이라는 이름의 양념을 칠 뿐입니다.




<회사의 일이지 당신의 포트폴리오가 아닙니다>


1. 이 중2병이라는 것이 꼭 그 시기에만 찾아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두번째 사춘기가 와도 모자랄 나이의 사람들 중에도 종종 그런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죠.



2. 특히 크리에이티브 관련한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간혹 저 사람이 지금 맡은 업무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의 본질에 몰두하기보다 다른 것들과의 구분에 목적을 두다 보니 허세와 자아도취가 업무에까지 묻어나는 것이죠.





3. 무엇인가를 기획하는 사람은 나의 취향과 타인의 취향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은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별로인 것, 반대로 나는 너무 좋아하지만 대중적으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해보는 자세가 늘 필요하죠. 그리고 냉정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대중적인 건 나쁜 건가?>


4. 저도 한때는 내년의 소비심리를 예상하고 분석해놓은 이른바 ‘OOO 트렌드’의 서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왠지 비약인 듯 보이는 내용도 많고 억지로 짜 맞춘 듯한 메시지의 나열이 조금은 불편했거든요. 하지만 항상 그런 책들을 직접 사서 읽어봅니다. 싫다고 외면하는 것과 직접 체험하고나서 좋고 싫음을 가리는 것은 천지 차이니까요.





5. 영화나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만 관객이 든 영화라면 취향을 막론하고 일단 극장으로 달려갑니다. 가요 차트의 Top 100 음악들도 한 번씩은 들어보는 편이고요. 잊을 만하면 새로 등장해 품귀 현상을 빚는 과자와 음식들, 유행어를 쏟아내는 핫한 TV 프로그램도 우선 경험부터 해보고 판단하려 합니다. 저는 이게 대중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맞는 일을 끌어오는 자성 정도는>


6. 저는 기획자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게 중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일을 풀어가는 사람인지에 대한 스타일 정도는 정립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7. ‘저 사람 손에 맡기면 돌도 금이 된대’ 같은 히트메이커 신화는 요즘 세상에서 점점 현실화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오늘날처럼 다양하고 구체적인 니즈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한 명의 기획자가 조물주급 히트작을 연달아 만들기는 어려우니까요.





8. 대신 ‘아, 이건 그 사람이 정말 잘할 것 같은데’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체 불가능까지는 아니어도 나에게 맞는 일을 끌어오는 자성 정도는 띄고 있는 게 유리한 거죠. 나의 가치관으로, 나의 스타일로, 나의 결과물로 조금씩 존재감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주변에서 먼저 인정하고 알아보는 법이거든요.



9. 그게 쌓이다 보면 이 바닥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어느 정도 생긴다고 봅니다. 새로운 누군가가 링에 올라오더라도 또 내 주변에서 급격한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소한의 무게중심은 잡을 수 있는 그 힘 말이죠.




<모두가 큐레이터인 시대>


10. 에디팅의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배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 놓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죠. 마치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순서에 맞게 전시하고, 화살표를 이용해 동선에 따라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처럼요.



11. 내가 선택하고 고른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면 좋겠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빈부격차, 계급갈등이라는 한없이 오래된 소재도 봉준호 감독이 설계한 ‘수직 구조’를 따라다가 보면 또 다른 생명력을 얻을 수 있는 거죠.





12. 일본의 크리에이터이자 편집가이며 <편집의 즐거움>이란 책을 쓴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기자보다 편집자의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각 분야의 경계가 점점 흐릿해져서 다양한 분야를 연결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다.”



13. “그래서 편집자는 이 좋은 재료를 활용할 줄 아는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칼질 전문, 밥 짓기 전문처럼 장인의 방식이 아니라 자르고, 굽고, 짓고, 담아내는 모든 걸 해낼 요리사의 재능을 가진 사람의 가치가 비약적으로 올라갈 것이다.”




김도영, <기획자의 독서>, 위즈덤하우스(2021)


매거진의 이전글 갈등하는 케이, 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