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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an 06. 2023

아직은 그리고 영원히 미제였으면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자이언트북스: 2021

낡은 차가 덜컹거리며 오르막 흙길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구 끝의 온실은 총 4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의 단편을 읽어보고 놀라움과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받은 나는 사전 지식 없이 제목과 작가의 이름만 보고 바로 구입했었다. 그리고 목차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한 장 한 장 이야기를 넘겨갔다. 소설은 왜 다들 그렇게 읽지 않나?


프롤로그를 읽으며 지구는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로 뒤덮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닐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딘지도 언제인지도 모르겠는 장소와 시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조금은 다른 듯 비슷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이야기는 환경문제가 사람들에게 가져다준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런데 제1장을 펼치면 이전에 내가 상상했던 내용들이 완전히 무너진다. 이제 장소는 내가 아는 한국이 된다. 아영이라는 연구원은 식물학을 연구한다. 찬찬히 안정된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읽고 있노라면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그들보다 이들이 더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건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인류는 살아남아 다시 지금처럼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갑자기 김이 푹 빠지는 기분이 든다. 그녀들은 어디로 갔고... 책에서 기대했던 모험과 환경문제에 대한 반성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이제 지루해진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 오래 덮어 두었다.


그러다 11개월이 지나 절반쯤 읽었던 책을 다시 들었다. 책 모임이 아니었다면 책의 절반즈음에 책갈피가 꽂아진 채로 내가 그곳을 바라볼 때마다 아픈 손가락이 되었을 책이 다시 나의 손에 들어왔다. 머나먼 미래 지구의 생명체가 완전히 사라질 위기를 이겨내고 차차로 회복된 현재에 살고 있는 연구원 아영에서 다시 모두가 사라지고 있는 과거로 연구소를 도망쳐 살기 위해 폐허를 거닐고 있는 프롤로그의 나오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나오미는 어딘가에 있는 인간이 숨 쉬고 먹을 수 있는 낙원 같은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내고 그곳에 정착한다.


“세상은 망해가는데, 어른들은 항상 쓸데없는 걸 우리한테 가르치려고 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왜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른들은 굳이 학교 같은 것을 만든 걸까 생각해 보았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체로 하품을 하며 수업을 듣는 반면, 칠판 앞에 선 어른들은 늘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것이 어른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한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배워야 해서 학교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p. 165


마지막 장의 이름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지구 끝의 온실이다. 나오미가 찾아낸 어딘가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갈 희망 미래를 그리는 어른들과 그 어른들과 함께 지내는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평화를 얻는 듯 보이지만 우리가 이미 겪어온 바대로 언제나 우리는 변화의 국면을 맡는다.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고 그 안에 작은 변화는 우리 마음속에서든 외부에서든 일어난다. 그것이 나오미가 살아온 멸망의 시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구 끝의 온실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마음은 마을 전체에 계속 남아 우리에게 온실을 만들어 준다.


하루는 마치 어른처럼 “괜찮아. 이런 일들은 예전에도 있었어.”하고 말했지만, 나는 이런 균열들이 결국 이 마을에 낫지 않는 흉터를 남길까 봐, 그리고 이곳을 마침내 파괴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p. 203     


제목을 보았을 때....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나에게 온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실제로 나오미가 도착한 마을의 온실은 실험을 통해 마을에서 재배가능한 채소의 모종을 보내준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경작하고 이미 폐허가 된 마을에서 챙겨 온 통조림 등으로 삶을 살아간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 외에 살아남은 사람은 돔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돔 밖에 있는 사람들을 사냥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돔은 어쩌면 온실과 비슷하다. 온실은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식물을 성장시킨다. 그런데 식물이 온실을 필요로 했을까? 아니다. 이건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건축물이다. 돔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 살기 적합한 온실 같은 공간을 만든 것이다.


나는 온실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그 온실은 신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야 도달한 결론은, 신전을 지킬 사람들이 흩어지면 그 신전도 의미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p. 239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 믿었다. 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한 달 뒤의 창고 보수 일정을, 다음 해 작물 재배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레이철의 온실이 마을에 희망의 감각을, 죽음과의 거리감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실체가 불안정한 거래에 불과할지라도 그랬다. p. 299


환경문제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책이었다. 물론 식물과 인간의 관계, 환경의 변화로 인한 지구의 변화 등이 재료로 쓰이긴 한다. 내가 절반까지만 읽었더라면 끝까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뒤에 남겨두었던 이야기를 나는 우리의 마음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에 관한 이야기로 읽혔다.


음... 제목과 표지만 보고 환경책인 줄 알면 오산... 마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존재하다가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 영원한 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김영하의 작별인사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을 때 나는 작가들은 왜 인공지능 로봇에게 자꾸 감정을 심어주려 할까를 계속 고민했었다. 언젠가 그들이 진짜 감정을 가지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냥 인간의 욕심일 뿐이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랑스러운 로봇의 존재 말이다. 온실, 돔, 인공지능 로봇 등은 사람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진 어떤 것이다. 그것은 신일수도 있고, 동물일 수도 있고, 식물일 수도 있고, 지구일 수도 있고, 인공지능 로봇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신은 당연히 그러하고, 살아 움직이는 동물과 식물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는 신과 비슷한 영역이다. 인공지능의 무언가도 결국 그걸 만지는 사람이 마음을 투영한 것일 뿐 그 길은 어디로 흘러가고 도달할지 알 수 없다. 하다못해 길에 차이는 돌마저도 그렇다. 우리가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마음을 다했다고 해서 그대로 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 몸과 마음마저도 그렇다. 그러니 온실에만 있을 수 없다. 잠시 온실이 나를 보호해 주고 보듬어 주는 그 힘으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온실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을 이동시키는 거야.”p. 227     


이제 내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작은 온실에 대해 생각한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가 믿고 있는 어떤 것들.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는 어린 시절 상상의 친구 봉봉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봉봉이가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라일리가 힘든 순간 봉봉이는 다시 나타나서 힘을 준다. 인간이란 새삼 참 신기하고 오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에 기대어 내일을 살아낸다. 점을 보고, 신을 믿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일을 하면서. 왜 그럴까? 는 나에게는 아직도 수수께끼이다.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슬그머니 들었다. 그냥 떠올리며 미소 짓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때로 잊기도 하고, 이루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들이 진실이 아닐까.. 하는 작은 추측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수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그것을 곱씹고, 다시 절망하기를 반복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 그를 잊을 수 없다면... 나의 감정은 그 자체로 진실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지요. p.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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