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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Dec 29. 2022

개구리밥을 사랑하는 순간

식물학자의 노트:신혜우 글그림:김영사:2021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인 신혜우작가의 책은 모두 5개의 분류로 이루어져 있다. 빛나는 시작에서는 숨은 조력자들, 빛을 보기까지, 이제는 꽃을 피울 시간,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입자, 고사리의 4억 년, 대지로 내려온 잎사귀들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들녘에 홀로 서서는 물 위를 떠도는 용기, 이런 곳에도 초록, 나무의 갑옷, 살아남은 것의 역사, 그럼에도 독독의 식물을 다룬다. 세 번째 억센 몽상가들에는 방향을 돌려 더 가까이, 잎새들의 이유 있는 행진, 물을 다스리는 식물, 식물 맹수들, 세 개의 씨앗은 어디로, 우아한 독기로 채워진다. 네 번째 함께 모여 하늘을 향해에서는 어울림을 향하여, 향시의 숲, 국화꽃 한 송이, 산수국 꽃잎의 비밀, 다윈이 사랑한 난초, 지구를 물들이는 식물들이 있다. 마지막 챕터인 숲의 마음에서는 작은 창으로 쏟아지는 세상, 뿌리의 사유, 이타적 식물, 친구가 내 곁에 오기까지, 이름의 존중을 담다,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식물의 마음, 바람 앞의 등불이다.


책은 작은 입자 그 시작에서 잎으로 꽃으로 숲으로 확장되며 우리 주변에 식물부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들의 삶과 이야기를 다룬다. 식물의 이야기는 식물 그 자체의 이야기 이면서 우리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작가는 식물의 삶과 우리의 삶을 절묘하게 연결시킨다. 거기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그들의 생존방법과 귀한 모습을 담는다.


작가는 식물학자이면서 그림을 그린다. 화가이면서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작가가 연구를 위해 그려 놓은 식물들의 모습이 함께 등장한다. 작가의 그림은 아름답다. 그러나 화가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꽃의 풍경화나 정물화화는 다른 아름다움이다. 뿌리부터 시작된 식물의 세세한 그림은 작가가 알려주는 식물의 생존과 번식의 이야기를  읽어 냄으로서 확장된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의 모습도 그러하다. 우리는 모든 순간 아름답다. 사회가 정해놓은 미의 기준 말고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이어가는 우리의 모든 순간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을 통해 우리의 아름다움을 비춰준다. 반대로 내가 나 자체로 아릅답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식물에 대한 지식이 확장되고, 나와 주변에 대한 이해도 확장된다.


식물에게 꽃가루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꽃가루는 동물로 보면 수컷의 생식세포에 해당합니다. 유전자를 전달하는 중요한 임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꽃가루는 이중벽을 만들고, 왁스와 단백질로 표면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열과 건조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고, 유전자 파괴를 막습니다. 또 꽃가루는 매우 정교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종마다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를 갖는데, 외부 벽에 독특한 돌기나 무늬가 있는 종도 있습니다. 또 꽃가루관을 만들거나, 수분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벽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은 구멍이나 고랑 같은 구조를 만들기도 합니다. p. 44


식물에 대한 다정한 설명을 읽으며 나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기분에 사로 잡혔다. 책을 읽으며 개구리밥을 사랑하게 되었다. 봄이면 물속 가장자리에 오종종 모여있다가 어느 날이면 물 전체를 초록으로 만들어 버리는 개구리밥에게도 꽃이 있지만, 꽃보다는 엽상체로 번식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도 겨울이 되면 씨앗 같은 겨울눈을 통해 동면에 들어갔다가, 봄이면 다시 둥둥 떠올라 광합성을 시작한다. 엽상체가 두 개가 되는되는 30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 녀석은 쉽고 빠르게 분해해서 사용할 수 있는 녹말 형태로 높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폭발적인 번식력과 작고 간단한 구조, 독특한 생활방식으로 미래의 동물사료, 수질 오염 개선이나 이산화 탄소 감소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내년 봄에 이 아이를 만난다면 나는 아마 미소를 짓고 있을 듯하다.


게다가 으름난초 열매의 효능이 과학적,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설령 있다고 해도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한 식물의 가치만큼 크지는 않을 겁니다. ‘귀하다’는 것은 왜 인간에게 항상 쟁취와 정복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p. 257

동시에 오늘도 생존의 기로에 선 식물과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귀하다’의 사전적 의미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1. 신분, 지위 따위가 높다. 2. 존중할 만하다. 3. 아주 보배롭고 소중하다. 4. 구하거나 얻기가 아주 힘들 만큼 드물다. 여러분은 어떤 의미의 ‘귀하다’를 자주 사용하시나요?


또 이렇게 식물과 연결하여 질문을 던질 때면 내 안에 어떤 생각들이 몽글몽글 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다정한 식물 설명, 아름답고 씩씩한 식물의 그림을 보며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각하는 시간, 세상 모든 이에게 '귀한'마음을 품을 수 있는 용기가 바로 그것이다. 아름다운 노란색 표지는 책의 그런 마음을 충분히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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