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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un 05. 2023

이야기는 아름답다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도나 바르마 이게라:위즈덤 하우스:2022

모든 쿠엔토가 해피엔딩은 아니다. 복시가 이야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복시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때로는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다채롭고, 획일적이지 않으며, 아름답다. p. 348


오랜 옛날 당나귀처럼 큰 귀를 가진 임금님이 있었다. 임금님은 그 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사람의 외모가 평균에서 벗어나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기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랬다. 다리의 길이가 짧아도, 지나치게 길어도, 손가락이 여섯 개여도, 입술이 두꺼워도 그렇다. 그러니까 천하 만물의 리더인 사람이 그러면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런 거였을까?


어렸을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간직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더라. 조금 무서웠다. 권력자의 비밀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소시민의 서러움 같은 걸 나도 모르게 느꼈던 것 같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대나무가 심겨서 대나무 밭이 울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소리가 만방에 울려 퍼졌고, 임금님은 다시 대나무 밭을 베어버렸다. 권력은 그렇게나 잔인하다.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약점이 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을 거라는 계산이 임금님에게는 있었으니 그런 일을 행했겠다. 그러나 대나무 밭이 없어져도 여전히 임금님의 당나귀귀는 세상에 퍼져나갔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마지막에는 '하하 그 임금님 참 고소하다'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돌이켜보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는 '화씨 451', '멋진 신세계', '1984', '시녀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스토리이다. 권력자라고 해서 완벽하지 않다. 권력을 가졌고, 똑똑한 자들이라 더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은 오만하다. 민중은 자신들보다 어리석어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자기들이 내세우는 질서유지의 방법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검색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고 한다. 경문왕의 귀 설화로 당시 머리에 쓰는 관을 관리하던 이가 대나무 밭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후에 대나무 밭에서 이 말이 들려오자 경문왕은 대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지만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가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도 실려 있다고 한다. 주술적인 갈대가 왕의 비밀을 폭로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소수의 권력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부터 사람은 그들의 실수를 경계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아무리 대단한 권력,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신념도 어딘가에 구멍이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바람에 실려온 이야기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미국에서 태어난 도나 바르바 이게라라는 작가가 쓴 어린이 문학이다. 민속학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연결한 그림책과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도 민속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주인공 페트라의 할머니는 설화를 전달하는 이야기 꾼으로 등장한다. 거대한 해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직전 지구는 노아의 방주를 3개 만들어 주요 인물을 탈출시킨다. 400년 이상 걸리는 곳에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 행성에서 다시 살아갈 사람은 캡슐에 넣고 수면을 취하게 하고, 캡슐을 돌보게 될 사람들까지 우주 비행선에 탑승한다. 페트라는 두 번째 우주선에 탑승하여 수면상태에 있다가 새로운 행성을 가꾸어갈 가족으로 발탁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을 돌봐줄 벤을 만난다.


완전한 수면상태에 접어들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페트라는 완전수면이 아닌 상태로 지내게 되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우주선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어난다. 페트라는 모든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깨어나서 본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은 페트라가 기억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400여 년의 시간 동안 2번째 우주선에서 일어난 일을 페트라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서 보자면, 관리 총책임자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지구가 멸망한 이유는 권력자들의 권력욕, 자본가가들의 욕심 등등 인간이 가지는 개개인의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욕심과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의 기억을 지우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만 살도록 변태 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사람은 모두 우주선 밖으로 버려 버렸다.

 

“우리는 이제 단 하나의 유닛입니다. 과거의 악은 없습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새 역사를 창조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콜렉티브와 새로운 행성은 우리의 시초가 될 것입니다. 콜렉티브는 우리의 새로운 집을 훨씬 나은 곳으로 바꿀 것입니다.”p. 151


그러나 벤은 이 상황을 반대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고, 그래서 페트라에게 이야기와 상황은 모두 전달시켜 놓은 것이다. 물론 벤은 나이가 들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이제 페트라는 이야기를 가진 마지막 사람이 된 것이다. 이미 이야기를 가진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콜렉티브라고 부르는 즉 개별화와 대척점에 있는 단체가 지향하는 바를 페트라는 끊임없이 부정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들에 의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려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이 책은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수상작이다. 뉴베리상은 1921년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제안하여 다음 해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상으로 아동문학상이다. 상의 이름은 18세기 영국의 서적상에서 따왔다. 그러니까 아동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린이도 어른도 읽기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 어린이가 읽기에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어려운 단어가 그대로 진행된다. 쿠엔토, 콜렉티브 등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하는 친절함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듯한다. 두 번째는 모험이 가득한 내용인데 이상하게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뉴베리수상작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미국식 동화 이야기 전개에 익숙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다. 어른이 읽기에는 설정의 어설픔이 있다. 요즘 SF소설은 사실에 기반을 둔 사건이 주로 전개되고 이에 대한 현실적인 묘사가 세세하다. 그런데 이 책은 이렇게 갑자기 이런 전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조금 지루하고 어설프지만 그래도 이 책은 나름의 미덕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진 미래의 어느 날에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그로부터 400년 후까지이다. 주인공은 할머니와 벤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전달받은 소녀다. 소녀는 혼자인 상황에서도 이야기의 힘으로 사람을 깨우치고 결국에는 함께 탈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콜렉티브 즉 집단의식으로 진화한 그들 중에 한 명까지 변화시켜 함께 한다.


옛날 아주 옛날에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로 인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발 없는 말은 멀리멀리 번져서 결국 모두가 알게 된다. 오래된 이야기는 여전히 힘을 가지고 우리 주변을 맴돈다. 사람은 다양하며 때로는 엉망진창이기도 하지만 다채롭고 획일적이지 않아서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로 묶으려는 무언가에 언제나 도전하고 결국은 해낸다. 한 사람은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모이면 힘이 커져서 결국 이루어진다.


멋진 신세계와 1984는 이루지 못했다. 시녀이야기와 화씨 451과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해내었다. 인간의 이야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좌절, 두려움, 불안과 그래도 언젠가 이겨내리라는 희망과 용기말이다. 두 가지의 비율은 각자 다르고 매일 달라진다. 상반되는 두 가지를 마음에 품고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완전하지 못해서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생각해 본다. 신이 있다면 매일 기특하다 쓰다듬어 주고 있을 것이다.


벤은 프로그램되어 있다. 보존과 희망을 반복한다. 설령 하나의 프로그램일지라도 벤의 말이 맞다.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을 가져가 우리의 신세계를 위한 더 멋진 이야기를 새로 만들 수 있다. 실현 불가능한 이런 덧없는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껏 날아올랐다.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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