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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03. 2023

나에게 보내는 응원

고요한 우연:김수빈:문학동네:2013

바다를 머금은 하얀 모래알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책의 마지막)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수빈 작가의 '고요한 우연'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수현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평범함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는 김이박 성씨 중에 하나이고, 수현이라는 이름은 남자와 여자아이 둘 다 많이 쓰인다. 고등학교 1학년 평범한 성적, 뭐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누구나 감탄이 나올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리더십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항상 학교를 같이 가는 친구가 있다. 반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다른 반에서 체육복을 빌릴 정도의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필기를 누구보다 잘한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아무리 졸려도 자지 않는다.


이수현은 평범한 착한 애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학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누구와도 친하지 않으면서 없는 듯이 있는 반 친구 우연이 나온다. 그날부터 이수현은 평범하지 않게 된다. 비밀이 생기고,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나를 둘러싼 세계 이상의 세계를 보게 되고 물러나지 않고 한 발씩 나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다. 알고 보면 이수현의 내면은 무척 단단하고 대단했다. 이수현 스스로도 몰랐지만 말이다. 책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별처럼 반짝이는 모래'는 '바다를 머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슈퍼맨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렇게까지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드넓은 백사장에는 예쁜 조개껍데기도 있고 바다에서 떠밀려 온 미역줄기도 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모래알이 있다. 나는 그저 조금이라도 반짝이는 모래알이 되고 싶은 것뿐이다. 신발 끈을 안 풀리게 묶는다거나 지도가 필요 없을 만큼 방향감각이 좋다거나 가위바위보 승률이 유난히 높다거나, 이렇게 아주 사소하게 반짝이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p. 104


104페이지에 수현의 생각을 보면 '조금이라도 반짝이는 모래알'이 되고 싶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수현이 나온다. 책의 마지막 문장과 연결시켜 본다면 모래알은 '바다를 머금는' 순간 더욱 반짝인다. 수현은 밀려오는 사건과 친구들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보듬는다. 그 순간마다 수현은 반짝였나? 아마도 그랬을 거다. 작가는 내가 반짝이는 순간을 나를 모르는 누군가는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에게 중요한 사람 -책에서는 엄마와 오랜 친구- 그리고 나의 눈에 그렇게 비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이 책은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의 모습을 달탐사와 우주, 그리고 바다의 모래알로 연결시킨다. 이는 목차를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나, 가족, 친구, 교실, 한국, SNS, 지구, 태양계..로 번져나가는 우리의 세상은 하나하나가 우주이다. 그 안에는 바른 것, 소외된 것, 빛나는 것, 없어도 될 것 같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공존하며 엎치락뒤치락하기도 하고 그대로 있기도 하다. 그런 부분들을 잘 살려낸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들의 대화나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자꾸 중학생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아쉬운 부분은 갑작스러운 절정과 마무리였다. 물론 모든 이야기가 해결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벌린 판에서 한 가지는 수습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마음이 독자로서 들었다.


책의 목차

사건 발행 나흘 후

모든 것이 시작된 밤

우연이었을까

달의 뒷면

고요의 기지

마이클 콜린스의 달

검은 고양이 아폴로

궤도이탈

우주미아

일력의 방향

행성과 항성

한낮의 플라네타륨

창백하고 푸른

탐사의 시작

책을 읽으면 얼마 전 유퀴즈에 유튜버 '궤도'님이 나오셔서 우주와 우리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나곤 했다. "인간이 낮과 밤을 만들었지만 사실 태양은 낮과 밤이 없어요. 태양은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별입니다. 그냥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할 뿐이죠.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보잘것없어 보여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일 자체를 인간만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한 명 한 명의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죠."(대충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확실하진 않다.) '고요한 우연'의 목차에 등장하는 마이클 콜린스는 달탐사에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할 당시 함께 있었던 탐사요원 중에 하나로 뒤늦게 유명해졌다. 나는 '플라이투더문'이라는 자전적 에세이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닐 암스트롱과 함께 한 세명 중 2명은 달에 착륙해서 성조기와 함께 사진을 찍고 영상으로 길이길이 남았다. 그러나 마이클 콜린스는 착륙한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우주선을 운전하고 있었다. 달 궤도를 돌면서. 꼭 필요한 한 사람이었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한 사람.

그는 자신의 삶을 멋지게 글로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우주인이 되었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은 마이클 콜린스와 비슷하게 산다고 공감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를 회자하는 것일 테다. 그처럼 ‘고요와 우연’의 수현도 많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런 모습이 반짝인다고 책은 계속 응원을 보낸다.


'고요한 우연'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다. 처음 책을 읽으면 고요와 우연, 그리고 정후라는 인물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들은 이야기가 될 만함 사연을 가지고 있고,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라도 응원해 줘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게 되는데 그 일을 수현이 해낸다. 그런데 책의 후반부로 가면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 이수현과 이수현을 누구보다 믿어주는 단짝친구 지아이다. 정후, 고요 그리고 우연이라는 인물은 실제로 교실에 존재하며 수현의 주변에 있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지만 수현은 그들의 영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다. 그들이 우주의 무언가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수현이 지구라면 그들 둘러싼 태양은 정후, 달은 고요 그리고 명왕성은 우연과 같은 존재처럼 보였던 것이다.


지구는 우리에게는 아름답고 푸르고, 크고 대단한 존재지만 우주에서 보았을 때는 빛조차 내지 못하는 모래알과 같다. 이처럼 모래알과 같은 지구와 수현에게 온 우주가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책이 나에게 '아무도 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 네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마. 너는 너에게 그리고 너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바다를 머금은 모래알처럼 반짝이는 소중한 존재란다.'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읽는 동안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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