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뒤 재지말고 무던히 나아가자
집을 나서기 전부터 어떻게 뛸까 고민을 한다. 간단할 줄 알았던 고민은 달릴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이어진다.
일단 몸을 좀 풀어야 하니깐 스트레칭을 하면서 생각을 해보기로 한다. 평소대로 트랙을 달릴까? 아니면 공원으로 나서볼까? 오늘은 크게 두 바퀴를 달려볼까? 몸통 돌리기를 하면서도 생각을 해보지만 결국 답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 발을 내디뎌 본다.
그렇게 달리기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지금까지의 고민은 사라지고 발걸음은 가볍게 느껴진다.
한발 두발 내디뎌보니 제법 뛸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빠르게 발을 굴려보고 이내 속도를 내본다.
분명 시작 전에는 어디를 달릴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발을 떼어 시작하고 나니 날 끝까지 데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생각했던 가벼운 러닝과는 다르게 어느새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다. 거칠게 내뱉는 숨소리가 역사를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의 울림과 같다.
하지만 이내 1킬로를 달렸다고 알리는 시계의 진동과 동시에 나의 숨도 탁! 끊어지고 말았다.
이 신호를 듣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맥이 끊긴다는 말이 적절하겠다고 생각했다. 근육의 피로감이 몰려온다. 호흡은 진정되지 않는다.
'어쩌면 좀 더 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더 힘을 내어 두 바퀴를 가볍게 달린 뒤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래 어쩜 난 더 달릴 수 있었을 테다. 물론 시계의 알림이 울리길 기다렸기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계의 알림이 없었다면, 숨이 가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한 번만 더를 외치며 남은 힘을 짜냈을 수도 있다.
1km 이상 달리는 게 어려워졌다.
러닝 기록을 측정해주는 시계 덕분에 기록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의 한계도 동시에 정하게 되었다. 한계를 향해 내몰게 해 줬던 매서운 채찍이 어느 순간 나의 한계를 긋고 붙잡는 올가미가 되어 덫을 놓고 있었다.
물론 정확한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예전처럼 이것저것 잴 것 없이 무작정 달리는 게 필요하다.
숫자로 남기지 못하였다고 하여서 내가 나를 증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나를 믿고 또 하루의 끝을 닫아본다. 내일은 1km 이상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남기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