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매일 한잔씩 반주를 곁들이는 게 문제가 있다고 보고 마음 먹고 술을 끊었다. 어떤 계기로 12월에 금주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여 벌써 22일째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술 없이 보낸 건 성인이 되고 나서 정말 처음인 것 같다.
이번에는 기간을 정해두지 않았고 평생 끊을 작정이었다. 중간에 의지가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연말 연시를 맞아 또 하나의 사건을 마주하며 술이 쳐다도 보기 싫어졌다. 정말 운이 좋은 건 이런 상황을 마주한 시점이 술을 끊은 지 3주가 다 됐을 때라는 거다. 그동안 술을 대체할 만한 다른 것들을 탐색 중이었기에, 이번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면서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었다.
사건이라 함은, 남편의 술주정이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그의 주사는 무섭다. 처음보다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갑자기 화를 내고 그 분노의 원인을 내 탓으로 돌린다. 술주정 고치는 방법, 남편의 주사 등등 여러 키워드를 검색한 지 벌써 몇년째다. 그동안 술을 같이 마시면서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내 자신이 밉다. 그가 더 자주 주사를 부릴 수 있게 내가 도와준 게 아닐까 원망스럽다.
집에서 함께 맛있는 음식에 술 한잔을 할 때는 큰 문제가 없다. 식사가 끝나면 술 마시는 시간도 끝나기 때문에 주량을 최대치로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이 어느 정도 업되는 건 있다. 그래도 같이 뒷정리하고 산책하고 저녁시간을 보내다 보면 둘다 술이 깬 상태로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다.
술이 무서운 건 어떤 감정이든 업되게 만든다는 거다. 즐거움도 두배, 분노도 두배. 근데 화를 내는 것이 습관이 되면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것 만큼 괴로운 게 없다. 남편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을 때면 항상 만취할 때까지 마시고, 꼭 집에 돌아와 나에게 주정을 부린다. 자세하게 말하기도 싫다.
그동안 법륜스님 즉문즉설 영상을 정말 많이 봤다. 이런 사람은 술이 없으면 자신의 말을 할 수 없는 억압된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한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거라고. 그 때 뭐라고 하지 말고 인정해 주고 등을 두드려 주며 아기 달래듯 달래주란다.
분노 조절 장애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우쭈쭈 해줄 수 있을까? 가능할까? 처음에는 스님의 말에 반신반의를 하며 내가 노력하면 된다고 믿었다. 근데 아닌 것 같다. 매일 같이 마시거나 장취 상태에 빠져 있는 것과 같이 중증 알콜중독자 정도는 아니라도, 반복되는 주사로 상대를 괴롭게 한다면 이것 또한 알콜의존증, 알콜사용장애와 같은 질병이 아닐까?
술이 깨고 나면 미안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억도 못하고, 자기 자신으로 인해 상대가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알지 못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자신이 한 나쁜 짓들에 대해서 기억이 안나기 때문에 굳이 술을 끊을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가정에 위기가 올 거라고 현실 직시도 못하고. 솔직히 나를 포함해서 아내들은 어떻게든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이 있다면 더더욱...
아이가 없는 나도 평소엔 괜찮으니까, 지금까지 함께 한 정이 있으니까... 등등 마음이 약해져 다시는 그러지 마! 하고 계속 눈감아줬는데, 함께 낳아 키우고 있는 자식들이 있다면 오죽할까? 제발 아이들(혹은 나를) 봐서 술을 줄이거나 끊어줘 라고 부탁하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다면 금주에 대한 의지를 가질 텐데... 어떻게 쥐어짠 말인지 모르고, 대충 이런 한두마디로 상황이 넘어가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나보다.
그렇게 계속 술을 마신다면 어떻게 될까? 주사는 반복된다. 끔찍한 습관이 된다. 그리고 계속 들이부어지는 알콜에 뇌도 고장난다.
술에 취하면 먼저 말이 많아진다. 이는 술이 전두엽 기능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충동을 조절하고 이성적 판단을 주로 담당하는 부위다. 따라서 술 취한 사람은 논리적으로 생각기 어렵고, 시끄럽게 떠들며, 사소한 일에도 참지 못한다. 또한 언어 담당 영역인 브로카 영역(주로 말하는 기능을 담당)과 베르니케 영역(주로 듣는 기능을 담당)을 마비시켜 말할 때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거나 상대방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술 취한 사람은 통증이나 감각에 둔감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뇌 꼭대기 부분에 위치한 두정엽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한편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비틀거리거나 갈 지(之) 자로 걷는 이유는 소뇌 기능의 억제 때문이다. 소뇌는 우리 몸의 운동기능이나 평형감각 유지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앞에서 말한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기억 기능을 맡은 해마에 술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한 술이 감정 조절이나 원초적 욕망을 주관하는 변연계에 영향을 미치면 갑자기 감정적으로 바뀌어 사소한 자극에 웃고 울거나 성욕을 참지 못해 성 추행 같은 사고를 치기도 하고, 혹은 성 기능이 아예 저하되기도 한다. 노래를 열심히 부르지만 노래 실력은 확 떨어지는 것 역시 술에 의한 변연계 기능의 억제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각종 현상에도 계속 술을 마시는 사람의 최종 도착지는 ‘사망’이다. 뇌 가장 깊숙하면서도 아래쪽에 위치한 숨뇌(연수)가 마비돼 급기야 호흡 마비로 죽음을 맞게 된다.
2014.2.10. 주간동아
위 기사 내용과 같이 술을 마시면 전두엽 브로카 영역, 베르니케 영역, 두정엽, 소뇌, 해마, 변연계 기능이 상실된다. 평소 술을 많이(자주) 마시지 않는 보통 사람들 또한 과음을 하면 저렇게 뇌에 영향을 받아 평소와 같지 않은 행동을 한다. 그런데 매일 마신다면..? 뇌 손상은 당연한 결과 아닌가!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주량을 훨씬 넘겨 마신 상태이기 때문에 다음날 기억을 못한다. 이 기억상실(블랙아웃)이 반복되면 이미 알콜 남용에 도달했다는 중요한 단서다.
나는 폭음(폭주)하는 것이 이미 뇌가 고장난 거라고 말하고 싶다. 나 또한 술을 입에 대면 한잔 두잔 더 마시고 싶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뇌가 고장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단주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가...!
어쩔 수 없는 술자리,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가족 모임 등등...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핑계가 너무 많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술 한 잔 당연히 좋지, 나도 누구보다 이해한다. 그러나 그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결국 우려했던 상황이 또 반복된다면, 알콜 오남용 중이며 그것은 알콜 중독의 초기 증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이 알콜중독의 길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적당량을 마시지 못한다. 내성이 생겨서 몸에서 더 많은 양의 알콜을 요구할 뿐이다.
술 주정, 주사로 인해서 괴로운 상황이 너무 많이 반복 되었다면... 그 행동에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가족)이 있다면, 술 취한 사람의 주사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책할 것이 아니라, 단주에 대한 행동 의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인 것 같다. 그 의지는 인생 위기(바닥)을 겪어야 생긴다고 한다. 스스로 건강이 치명적으로 나빠지거나, 큰 사건에 휘말리거나 직장을 잃는등 사회적으로 물의가 있거나, 가정이 파탄에 이르는 정도까지...
술버릇만 빼면 그래도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는데.. 여기까지 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알콜이 뇌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라는 거. 나 또한 그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사람을 다시 한 번 믿어줘야 하나 고민이 된다.
이번엔 정말로 이혼하고 싶다고 마음을 굳세게 먹고 서류까지 작성을 했다. 그런데 이 가정을 지키고 싶고 남편을 정말 사랑한다면 한번만 더 기회를 주고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너무 어렵다. 극단의 상황에 머리가 아프고 화가 나서 잠깐 미친 사람 처럼 타자기를 두드린 것 같다.
혹시 자신이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일 뿐 알코올중독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음 요건에 모두 들어맞아야 한다.
첫째, 나는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음주를 즐길 뿐이다.
둘째, 음주하려고 술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교하려고 술자리에 참석한다.
셋째, 술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넷째, 필름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마실 때 만취를 주의하고 실제로도 만취에 이르지 않는다.
여섯째, 술 마신 다음 날 지각과 결근이 전혀 없다.
일곱째, 매일 연이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과음한 다음에는 며칠간 금주를 실천한다.
만일 이 가운데 하나라도 벗어난다면, 당신은 벌써 알코올중독으로 가는 길에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