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요. 아나운서요. 수의사요. 어른들은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난 그런 어른들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다.
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어릴 적의 난 수줍음이 많은 어린이였다.
누가 말을 시켜도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건 아니었고 가끔 자려고 이불에 누우면 "그때 이렇게 말할걸"하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제때제때 내뱉지 못한 말들은
내안에 쌓여갔고 그 말들은 내 안에서 글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글쓰기로 상도 가끔 받았고
중 고등학교 때는 꾸준히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기를 썼으며, 밤새워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국문과를 가고 싶었으나 현실적이던 고3 담임 선생님은 내 성적이 국문과 가기에는 조금 못 미친다고 하셨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난 유아교육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와서는 전공 공부는 뒷전이었고 전공 수업보다는 '현대문학의 이해' 니 '고전 소설론' 같은 국문과 수업을 쫒아다니기 바빴다.졸업 후에는 출판사나 일반 회사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내가 졸업하던 그해에 IMF가 터졌고 취직의 문턱은 높아졌으며 나는 그나마 취직이 쉬운 유치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치원 일은 가르침에 대한 열정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럭저럭 3년을 채우고는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다시 취직을 하든지 시집을 가라며 일주일에 두 번씩 선을 보라고 하셨다.
내가 선을 보러 나갈 때마다 엄마는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셨지만 선을 봐서 결혼할 생각이 없는 나는 매주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싫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직업 이야기라든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일은 늘 흥미로웠다.
그러나 선이란 게 무엇인가. 결혼을 하려고 남녀가 만나는 일 아니던가. 내 맞선 상대들은 내가 결혼 생각이 없다는 걸 금방 알아차렸고 주선자를 통해 완곡한 거절의 뜻을 보내왔다. 몇십 번의 선을 보며 지쳐가던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국은 결혼을 했으며 딸을 셋이나 낳으며 그럭저럭 평범한 결혼 생활을 하며 어느덧 1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하지만 늘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매년 신춘문예의 계절이 되면 마음이 설레었고 몇 번 실제로 응모한 적이 있었으나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체계적으로 교육받지 못하고 그저 글쓰기가 좋아서 끄적거린 글이 당선될 리 만무했다. 그렇게 글쓰기와는 멀어지고 있던 차에 친구가 브런치란 사이트가 있다며 소개를 해줬다.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면 작가로 활동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이런 사이트를 왜 이제야 알았는지. 너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글로 응모를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써놓았던 동화를 다시 다듬어 작가 신청을 했다. 조금 떨리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 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작가 심사야 형식적인 거겠지.지들이 신춘문예도 아니고. 심사기간이 오일쯤 걸린다고 하니 그동안 브런치에 올려진 글이나 읽으며 분위기 파악이나 해야겠다 하던 중 이틀쯤 지났나 혹시나 해서 열어본 이메일함에는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작가로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낙방을 알리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 어라, 이것 봐라. 두근대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내가 너무 안이했구나. 여기저기 브런치 작가 되는 법이라도 검색해보는 건데 내가 너무 브런치를 얕봤네. 그때부터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검색해보니 한방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사람부터 칠전 팔기로 붙었다는 사람까지 제각각 다른 후기가 많았다.
그래 좋아 이번엔 진검승부를 하는 거야.
내가 예전부터 별러온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는 거다. 육이오 전쟁으로 한순간에 뒤죽박죽이 된 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언젠가는 꼭 한번 글로 쓰고자 했던 내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오래도록 아껴둔 나만의 글감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실패란 없다. 오래전부터 저녁 밥상머리에서 듣던, 때로는 너무 지겨웠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자. 누구나 내 글을 읽으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지. 내 아버지의 억울한 인생에 다들 공감하겠지.
브런치 심사위원단도 절대로 내 글을 거절할 수 없을 거야.
혼신을 다해 글을 완성한 후 다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할 거야. 꼭 꼭 성공할 거야.
그러나 며칠 뒤 나는 이메일함에서 지난번과 똑같은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작가로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내용만으로는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란 판단을 하기 어려워 어쩌고 저쩌고."로 시작하는 메일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지들이 뭐가 안타깝다는 거지. 가슴이 벌렁벌렁 댔다, 대체 내 글이 어디가 잘못됐다는 거지? 최선을 다한 만큼 상처는 컸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의 글도 읽어봤지만 도대체 어디가 내 글 보다 낫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사실은 브런치의 작가 심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칠전 팔기가 됐건 십전 십일기가 됐건 나는 포기하지 않고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것이다. 브런치에서 내 글을 발행하게 되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