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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Mar 16. 2024

잘하는 게 너무 많은걸


 간만에 블로그에 들어갔다. 차마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가 없는 유치뽕짝 비밀 블로그다. 유행을 따라가는 건 비겁한 거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궁금해서 해보고 싶은 나의 호기심을 풀어놓는 곳이랄까. 한때, 백문백답이 유행했었다. 白文白答. 백 가지의 질문에 백 가지의 답을 하는 것이다. 블로그에 들어가면 2022년도, 그러니까 2년 전에 해놓은 백문백답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2년 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궁금해서 다시 한번 같은 질문에 답변을 달았다. 나의 자신감에 깜짝 놀란 대목이 하나 있었는데….


24. 특기(잘하는 것)


- 잘하는 것.. 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준을 낮추어 보면, 잘하는 게 꽤 많을걸요? 기준을 너무 높이 설정하지 않기로 결심해서요. 전 잘하는 게 꽤나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2022)


- 오... 이건 아직도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잘하는 게 너무 많아요... (2024)


 ... 다들 백문백답을 공개 게시물로 해놓던데. 아무래도 나는 평생 비공개 게시물로 해놔야 할 것 같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적절한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는 자신감을 홀로 즐기는 편이 낫겠다. 나의 이 자신감을 누군가는 미쳤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 잠깐! 가만있어봐, 이 책이 유명해지게 되면? 이것 참 곤란해졌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공개적으로 밝혀야겠다. 나는 잘하는 게 많다!

 처음부터 이런 미친 자신감을 느꼈던 건 아니었다. 솔직히 재능 뛰어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옛날에는 주변에서 나보다 그 분야를 더 잘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없으면 난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튜브와 인별그램이 너무 활성화되어 있다 보니, ‘주변’의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천지에 널렸다는 걸 깨닫게 돼버린 것이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나. 우울해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누구나 잘하고 못하는 게 있지만, 그건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만약 특기에 ‘노래’를 적었다고 해서, 가수 ‘에일리’와 노래 대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적었다고 해서, 댄서 ‘아이키’와 댄스 배틀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나를 알지도 못할 텐데, 그들과 비교해서 스스로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나.

 자랑하려고 올린 영상보다, 시도도 못 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더 많지! 하며 무시하지 말란 말이 아니다. 자만함을 갖지 말되,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자신감 정도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러니, 나는 잘하는 게 많다고 스스로 외쳐보자!


(ps. 단, 누구한테 과시하는 건 조금 지양해야 한다. 돌 맞을 수도 있으니까! ※머리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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