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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Mar 20. 2024

개소리의 미학


 우리 집 첫째인 황 아무개는 아재개그에 환장한 사람이다. 아니지, 이제는 아재 그 자체가 된 것 같다. 그의 입은 쉬지 않고, 개그를 뱉어낸다. 예를 들면, ‘성남 가면 썽남?ㅋ’, ‘하남 가서 화남?ㅋ’…. 이런 식이다. 워워, 진정해라. 그래도 나의 혈육이다. 돌을 던지진 말아 주었으면. 대신, 그 돌 내게 줘라. 내가 던지게.


 나는 우리 집에서 선비라고 불린다. 그의 아재개그에 반응도 하지 않고, 재치 있게 받아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개그에 웃지 않으면, 이런저런 꾸지람도 받게 된다. 나가서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는 둥. 얘가 융통성이 없어서 문제라는 둥. 그러나, 나는 경력 24년. 타격감 제로 수비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결같이 ‘어쩌라고’라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해 온 나로서는 타격이 없다. 그렇다. 우리는 아주 건강한 남매다.


 어느 날, 나무를 보며 그가 말했다.


 ‘나무는 참~ 나무랄 데가 없어~’


 이 정도쯤이야. 이제 헛웃음도 짓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무표정으로 수비하기 위해, 그를 바라본 순간! 웃음이 터졌다. 경력 28년의 공격수에게 당해버리고 말았다. 아무도 웃지 않을 것을 예측해, 자신이 먼저 ‘촷핫핫핫핫’하며 혼자서 큰소리로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웃는 모습에 저항 없이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도 웃지 않으면, 멋쩍게 웃거나 개그를 하지 않게 되는데. 사람들의 반응과 상관없이 미리 웃음을 내어 보인 것이다. 아재개그에 웃은 게 별거냐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개그라는 건, 애초에 관객을 웃기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관객이 웃거나 말거나, 자신의 드립으로 1차 공격, 웃는 얼굴로 2차 공격까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광대가 맥없이 풀려버렸다. 그의 개그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실없이 웃는 게 기분 전환에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틀렸다. 기분이 좋아졌다. 웃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웃으면 누구든 따라 웃게 되는구나.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바보 같은 웃음일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서 생활의 지혜를 얻게 된다니. 아이고, 분하다 분해!


 저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집 가는 길, 배는 점점 아픈데, 차가 너무 막혀 분위기가 삭막해지자 그가 말했다. ‘이러다 변사체가 아니라, 변 싼 채로 발견되는 거 아니야?’ 푸하하. 아아, 이제는 그의 재치를 인정해 줄 때가 온 것 같다. 자신의 복통마저 웃음으로 승화하는 그는 바로, 황. 아. 무. 개(소리).


(ps. 그가 자신의 이름을 황 아무개로 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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