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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Mar 22. 2024

잘 가,

bgm : 권진아 – 잘 가


 나는 취향이 확고하다. 금방 호불호를 가려내고, 맺고 끊음이 분명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칼같이 잘라낸다. 너무 인색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관계를 이어갈 마땅한 이유가 없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나’의 클리셰는 변하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관계라는 걸 알면서도 쉽게 놓지 못할 거다.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서다. 버림받는 느낌은 박박 지워도 지워지질 않으니까. 계속해서 내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이 관계에 대해 고민하겠지. 그렇게 미련을 두고 망설이다 보면, 결국 상처받는 건 내가 될 게 뻔하다. 나는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자꾸만 애를 쓸 거고, 부서진 관계에 매달릴 거다. 그러니, 미리 끊어내는 것이 낫다.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다 보니, 관계를 끊어내는 게 쉬워진 것 같다. 끊어진 인연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리운 마음을 덮지 못할 때가 있다. 비슷한 이름을 들었을 때. 우연히 함께했던 장소를 지나칠 때. 끊어졌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럴 때, 그 철부지 같았던 우정도 그리워진다. 그립다고 해서, 시간에 묻어둔 이들을 구태여 꺼낼 생각은 없다. 그런다고 해서, 행복해질 거란 보장은 없으니. 아무리 밝혀도 밤은 아침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신나는 가사를 쓴다고, 슬픈 팝송이 밝은 트로트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관계는 다시 이어질 수 없다는 걸 안다. 이어진다고 한들, 좋은 결말로 끝낼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도, 네가 지금의 나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조금은 더 성숙해지고, 노련해진 나를 만났더라면, 우리는 좀 달라졌을까. 그렇게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그때의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다. 부족하고 오만했던 자신을 마주한다. 그 모든 걸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휘둘러대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도 짙게 물든다. 지금의 나라면 분명 달랐을 텐데. 다시 꺼내 볼까 고민하다가도, 지금의 나를 성장시킨 건 그들이었기에. 묻어둔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악연이면서도, 필연이었을지 모르겠다.


 우정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다른 관계보다는 뜨거우면서도, 식을 때는 그 어느 것보다 금방 얼어붙는다. 차라리 우리가 안부만 주고받는 미지근한 관계였더라면 오래갔을까. 아니다. 미지근한 관계였다면, 그 뜨거웠던 우정을 맛보지 못했을 거다. 나는 알고 있다. 미숙할 때 만난 인연이었기에,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는 걸. 이제는 이 그리움의 끈을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 그때의 나를 행복으로 채워줘서 고마웠다고, 과거의 우리만은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자고. 인사를 건넨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게.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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