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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Mar 23. 2024

잡초 아니고 화초인데요

(온실 속 화초)


 ‘사랑 많이 받으면서 자라서 잘 모르나 본데~’.


 젠장. 또 시작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다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초년생에서 충고하는 규정이라도 따로 나와 있나. 항상 귀하게 자랐다는 둥, 곱게 자랐다는 둥. 앞부분만 들으면, 내가 잘 컸다는 걸 칭찬해 주는 것 같지만, 이건 완벽한 속임수다. 예쁜 말 뒤에는 항상 ‘모르나 본데~’라는 말과 함께 그들의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기 때문이다. 나를 처음 만났을 테고, 나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을 텐데. 참으로 이상하다. 헉! 혹시 어릴 때부터 나를 미행하는 스파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스파이는 순 엉터리다. 내가 곱게 자라지 않았다는 걸 간파하지 못했으니까!

 ‘온실 속 화초’. 어려움이나 고난을 겪지 않고 곱게 자란 상황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는 관용구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화초에 무슨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화초가 당최 무슨 죄가 있담. 나는 온실 속 화초가 웬만한 잡초보다도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받고 자랐을 테니까. 좋은 환경, 좋은 말, 좋은 행동을 보고 들으면서 컸을 테니까. 아마 잡초도 자랄 수만 있다면 온실 속에서 크고 싶었을 거다. 짓밟히며 자라서 단단하다는 건, 어쩌면 우리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힘은 내면에서 나온다. 내면은 그냥 채워지는 게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좋은 경험, 좋은 생각, 좋은 방법이 쌓여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에서 개그우먼 이영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 자식은 사랑을 줘야 돼요. 그래야 세상을 나가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살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사랑은 받아야 생기고, 그 힘은 세상을 살아갈 발판이 된다. 사람은 꽃과 다르다. 짓밟힌다고 단단해지지 않는다. 그저 아픔을 숨기는 것에 익숙해질 뿐. 다만, 꽃과 사람은 사랑을 품는 그 속성이 같아서, 아프면 티가 난다. 사랑받은 꽃이 만개하고, 사랑받지 못한 꽃이 시드는 것처럼. 사랑받고 큰 사람은 시련이 와도 건강하게 이겨낸다. 시련의 무게에 자신의 자존감을 끌어내리지 않고, 사랑을 원동력 삼아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해 낸다. 한편,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편향된 사랑을 하게 된다. ‘나’에게만 사랑을 주거나, ‘남’에게만 사랑을 준다. 왜냐? 사랑이 부족하니까. 이렇게 되면, 과하게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세상을 살아내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는 사랑받으면서 커야 한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긍정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야만 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면, 스스로라도 사랑해주어야 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 곱고, 귀하게 자신을 여겨야 한다. 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알면, 남을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되니까. 가끔 어른들을 보면, 내가 잡초처럼 크길 바라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세상이 따스한 온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풀꽃이 이름 있는 화초처럼 피어날 수 있는, 따스한 온실 같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 따스함 속에서 만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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