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청년의 맛)
‘민서야, 이번에 녹두 좋은 거 들어왔거든? 그것 좀 싸줄 테니까 가져가.’
‘엄마, 나 이미 잡곡밥 먹어.’
‘어머? 이야~ 건강을 엄청 생각하는 구만?’
... 어라. 뭔가 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그… 그게 아니라, 매대에 진열된 곡식 중에 잡곡이 제일 쌌다. 얼떨결에 건강을 무진장 챙기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다. 건강을 위해서 잡곡밥을 먹는다고 뻥 쳐야 하나. 아니면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나. 으아,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자취하면 쌀값이 그렇게 아깝다. 한 번에 드는 비용이 꽤 크게 느껴진달까? 그렇다고 맨날 라면만 먹을 수도 없고. 또 샴푸, 세제, 생리대 같은 건 떨어져도 꼭~ 다 같이 떨어진다. 나 몰래 상의라도 하나 보다. 생리를 시작했으니, 생리대를 안 살 수 없고. 옷을 빨아야 입고 나가니, 세제를 안 살 수도 없고. 샴푸? 머리를 안 감고 나갔다간 몇 없는 친구도 잃을 게 뻔하니, 샴푸도 안 살 수가 없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쌀이 뒷전이 된다. 좀 덜 먹으면 그만이다 싶으니까.
이게 다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 때문이다. 월세, 전기세, 수도세, 도시가스, 관리비까지…. 자취의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그냥 지금 사는 집의 월세랑 관리비만이라도 앞으로 쭈욱- 한결같았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한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동네 관리비가 2~3만 원씩 오른다. 3만 원이면 쌀이… 가만있어 봐. 헉! 무려 10kg인데…. 집주인이 뭐 엄청 열심히 관리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좀 낮춰주시지.
요즘에는 월세를 낮게 잡고, 차액을 관리비로 전가하는 ‘깜깜이 관리비’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임대차 신고제에 따르면, 월세 30만 원 이하로는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한 거다. 그래서 관리비가 100만 원이 훌쩍 넘게 되는 집도 있단다. 어이구.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참나 깜깜이 관리비? 진짜 어떻게 눈앞 좀 깜깜하게 해 줘? 휴. 안 되겠다. 억울해서라도 건강해져야겠다. 내가 잡곡밥 먹고 건강해져서 일도 구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벼룩의 간 빼먹는 놈들에게 복수해야겠다! 자자 그러니까, 나는 돈이 없어서 잡곡을 먹는 게 아니라, 건강해지려고 먹는 거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놈은 정신 승리한 놈이다…. 아마도?)
이번에는 돈 좀 들여서 만 원짜리 잡곡을 샀다. 무려 12곡이다. 그런데… 그중에 보리가 들어 있어서 그런지. 방귀가 그렇게 나온다. 도저히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다. 얼른 먹어야 다른 잡곡을 사는데, 아직도 한참 남았다. 이렇게 된 거 방귀 잘 참는 방법이나 연구해야지 뭐. 방법이 있겠나. 그래도 잡곡밥은 맛있다. 백미 하나 없이 잡곡만 넣고 삶은 밥이지만, 한 숟가락 떠서 먹으면, 퍽퍽~하지만 고소한 맛이 난다. 허허허. 이게 바로 청춘의 맛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