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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Apr 12. 2024

빨간 니트 줄까 파란 니트 줄까


 빨간 니트를 산 적이 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한 나만의 작은 선물이었달까? 겨울에 어울리는 정말 예쁜 빨간색 니트였다. 맘에 들어 입고 나갔는데, 한 남자애가 내게 말했다.


‘네가 입기에는 색깔이 좀…. 넌 살쪄서 다른 색 입어야 하는 거 아니냐?ㅋㅋ’


 머리가 멈췄다. 아니지, 사고가 멈췄다. 사고다 사고.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공격하는 새끼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한쪽 입꼬리는 올라가고, 한쪽 입꼬리는 내려간 요상한 표정을 한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한 번도 입고 나가지 못했다. 입으려고만 하면, 다들 뚱뚱한 내가 입은 빨간 니트를 보고 비웃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빨간 니트는 옷장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살이 쪄있으면 옷을 입을 때 참 제약이 많다. 남의 몸매와 스타일을 평가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해외에 나가면, 옷을 입을 때 괜스레 자신감을 지니게 된다. 아무도 내 옷을 보고 지적할 사람이 없으니까! 자유로워지는 기분이다.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지적이 너무 많다. 아래를 펑퍼짐하게 입었으면 위에는 딱 달라붙는 옷을 입어야 하고, 종아리가 굵으면 미니스커트가 아닌 롱스커트를 입어야 하며,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는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어야 한다. 으악. 내 옷 내가 입는다는데, 뭐가 이렇게들 말이 많은지!


 자존감이 낮을 때는 그들의 지적을 좋은 충고로 받아들였다. 뚱뚱해 보이지 않기 위해 조언해 주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20여 년의 통통이 생활을 해본 결과. 나는 통통이에서 쉽게 탈출할 수 없었다. 살을 빼도 금세 돌아왔고, 요요가 심하게 왔다.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다이어트를 했고, 그러다 말라보기도 살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나를 잃어갔다. 나는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까.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먹을 걸 무진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떡 하나 쥐여주면 울음을 그칠 만큼 먹는 게 행복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난 내 행복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맛있는 걸 먹기도 하고, 가끔 우울하면 걷기도 했다. 먹고, 걷고, 싸고. 그걸 반복하다 보니, 변하지 않는 보통의 몸무게에 도달했다. 너무 마르지도, 너무 뚱뚱하지도 않은 그런 몸매. 내 몸은 가끔 귀엽고, 때론 섹시하다.(?) 증명할 방법이 없을 테니 당당하게 말해본다. 히히. 아무튼 나는 남들의 기준에서 벗어나 예쁜 나의 모습을 다시 정의했다. S를 사야 살을 뺄 거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맘껏 M과 L를 샀다. 살이 찐 것 같다 싶으면, 조금 운동하고. 너무 마른 것 같다 싶으면, 치킨 좀 먹어주고. 틈틈이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살피면서, 이 깜찍한 몸매를 아주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휴~ 힘들다!)


 이제는 남의 평가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깜찍함과 섹시함을 알아차릴 능력도 없는 놈이니까! 또, 구태여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쓰레기 같은 놈!’하고 넘긴다. 물론 무례한 지적에는 담담하면서도 적극적인 태도로 답변하긴 하지만. (웃음)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옷을 고르는 일이 더 즐거워졌다. 내가 입고 싶은 색깔, 입어보고 싶은 스타일을 고른다. 옷을 고르는 기준은 나의 ‘행복’이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이번엔 파란색 니트를 사야겠다. 빨간색 니트를 입지 못하게 한 그놈의 꿈에 몰래 들어가서 외쳐야지!


‘파란 니트 줄까~ 빨간 니트 줄까~ 아니면 니 이빨 빼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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