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공부하는 동안 심심했는지 둘째가 조용히 지갑을 서랍에서 꺼내왔다. 그동안 돼지 저금통에 모았던 돈을 얼마 전에 꺼내고 싶다기에 다 털어서 천 지갑이 빵빵해지도록 넣어 보관해왔던 것이다. 갑자기 정리가 하고 싶어 졌는지 지갑에서 지폐와 동전을 책상 위에 쏟았다. 그리고는 10원짜리, 100원짜리 해서 천 원, 오천 원... 종류별로 하나하나 분류하기 시작했다. 종류별로 구분을 하고 나니 이제는 순서대로 정렬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돈이 더 큰돈인지 물어본다.
"엄마, 100원이랑 500원이랑 어떤 돈이 더 커?" 하기에
"100원짜리가 5개 모이면 얼마일까?" 하고 물었다.
"200원? 300원?"
숫자 익히는데 느리지 않은 아이지만 자릿수가 커지니 수의 크기를 비교하는 게 헷갈렸나 보다.
"100원이 두 개면 200원이고, 100원 세 개면 300원이야. 그럼 100원이 다섯 개면 얼마일까?" 하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500원!"
그제야 아이는 조금 이해하는 듯했다. 이렇게 돈을 가지고 노는 사이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10원짜리보다 더 작은 돈은 없는지 물어보니 옆에서 듣고 있던 첫째가 1원이랑 5원이 있다고 동생에게 얘기해준다. 나는 엄마 어렸을 때는 1원이랑 5원짜리가 있었는데 그때도 잘 안 쓰긴 했다고 말해줬다. 지금은 아예 쓰지 않는다고 하면서 몇 달 전에 갔던 화폐박물관에 1원과 5원이 전시되어 있던 기억을 상기시켜 줬다.
우리의 돈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동전을 유심히 보던 아이가 발행연도가 적힌 것을 보고 또 물었다.
"엄마, 여기에 쓰여있는 숫자는 뭐야?"
"그 돈을 만든 연도를 적어둔 거야."
아이는 발행연도도 어떤 것이 먼저 만들어진 것인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돈의 숫자만큼 아직 네 자릿수 연도의 순서가 빨리 와닿지는 않은 모양인지 2004년이 최근인지 1998년이 최근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1998가 2004보다 앞선 숫자이다 보니 아이는 1998이 최근이라고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그렇게 각 용도에 따라 수의 크기와 순서가 다름을 익혀가고 있었다.
그다음에 아이가 궁금해했던 것은 동전에 적힌 글자였다.
"엄마, 근데 왜 동전은 다 한국은행에서 만들어?"
아이 질문에 그 작은 동전에서도 많은 호기심을 불러내는 아이가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 질문으로 우리는 길거리를 가다가 봤던 많은 은행들의 이름을 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나는 한국은행은 그 은행들과 다른 은행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중앙은행이라는 단어도 한번 알려주고, 돈을 발행하고 통화정책을 펴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럼 한국은행에서 돈을 많이 만들 수 있겠네?"
묻길래 돈을 많이 찍어내면 어떻게 될지 물으니 아직 어린 둘째는 돈이 많아지면 이것저것 다 살 수 있어서 좋을 거 같다고 한다. 첫째는 언젠가 학교 도서관에서 본 학습만화를 얘기하면서 어떤 나라에서는 돈을 많이 찍어내서 종이 조각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조금 놀랐다. 그러면서 돈이 너무 흔해져서 벽지로도 쓰고 물건을 사려면 엄청나게 많은 돈을 이고 갔다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나와 동생에게 설명해주었다. 언제 그런 책을 읽었나 싶으면서 최근 학습만화 논란이 많지만 지식정보를 쉽게 풀어내 초기 배경지식을 쌓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행을 나름 쉽게 알려주려 설명은 했지만 아직 6살과 9살 아이가 이해하기는 좀 난해했다. 나조차도 풀어서 설명을 해주려니 어려워서 집에 있던 경제동화를 찾아봤는데 한국은행에 대해 나와있는 책이 없었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어린이용 경제 영상을 찾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에 몇 년 전에 금융감독원에서 초등 저학년용 경제 교재를 무료로 배포해준다는 것을 알고 신청해서 받아뒀던 것이 떠올랐다. 스티커북인데 마침 아이가 흥미롭게 할 만해 보여 몇 년째 묵혀뒀던 교재를 꺼냈다. 경제 공부 좀 시켜보려고 받아뒀던 건데 몇 년째 활용 못 하고 있던 것을 오늘에야 쓰게 됐다는 사실에 나도 신났고, 아이는 아이대로 신나서 화폐 스티커 붙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폐 스티커 붙이기를 하면서 실물과 비교해보았다. 지폐 천 원짜리는 퇴계 이황, 오천 원은 율곡 이이, 만원은 세종대왕, 오만 원은 신사임당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물 배경과 뒷면에 있는 그림 작품을 들여다보며 화폐박물관이나 겸재 정선 미술관 같은 곳에서 봤던 것을 함께 떠올렸다. 아이들은 본인들의 얼핏 스쳐갔던 경험들을 화폐 놀이를 하면서 다시 확인하자 기뻐했다.
금융감독원에서 동영상 학습자료도 잘 올라가지 있어서 우리는 잠시 간식 타임을 가지면서 함께 영상을 보았다. 돈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으로 시작하여 모바일 결제 시스템까지 화폐의 발달과정도 알아봤다.
참 재미있는 일은 게임을 통해서다. 요즘 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우리 가족은 즐기고 있는데, 게임에서 얻은 나의 아이템을 아이가 갖고 싶어 하길래 그럼 엄마가 필요한 아이템이랑 바꾸자고 하면서 '물물교환'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아이들은 이미 이 단어가 익숙해져 있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반복하며 어휘를 늘려나가고 있는데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또 나만의 신용카드 그리기 페이지에서는 실물 신용카드를 보여주면서 카드번호, 만기일자, 서명란 등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려보게 했다. 아이는 유심히 신용카드를 보면서 자기만의 카드를 디자인했다. 겸사겸사 서명란에 적을 자신만의 사인도 만들어 보았다.
교재에는 세계의 다양한 화폐 스티커 붙이기도 있어서 각 나라마다의 지폐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 거기서도 어떤 나라는 인물을, 어떤 나라는 동물을, 어떤 나라는 건축물을 지폐에 새겨놓은 것을 통해서 각 나라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기회를 갖었다. 또 알만한 인물은 집에 있는 위인 책을 꺼내서 너희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상기시켜주었다.
교재에 용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일을 그리는 부분에서는 뭘 하고 싶은지 물으니 부자가 되고 싶단다. 마침 아이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허팝에 빠져있는데 우연찮게도 오전에 허팝이 마트에서 6천만 원 가까이 물건을 구매해서 기부하는 영상을 본 것이 떠올랐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다른 사람도 통 크게 도와줄 수 있다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돈이란 건 돈을 은행에 저축도 잘해야 하고(저축), 꼭 필요하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해서 살 줄 알아야 하고(소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베풀 줄도 알고(기부), 적당히 돈을 굴려서 불릴 줄(투자)도 알아야 한다고 알려주며 경제교육도 슬쩍 던졌다.
한 가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얼핏 스쳐갔던 생활 속 경험들을 이렇게 엮어주면 아이들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다. 이미 본인들이 겪었던 일들을 책과 놀이에서 다시 만나니 낯설지가 않은 거다. 읽기가 리터러시 측면에서 중요하다면 꼭 독서에만 갇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상생활과 함께 연관해서 떠올릴 기회를 주면 더 풍부한 내용으로 확장시킬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책이든 신문이든 처음 접할 때 느낄만한 거부감을 낮추는데 도움을 줄거라 생각한다.
한참을 돈으로 가지고 놀자 어느덧 잠잘 시간이 다 되었다.
잠자리 전에 읽을 책 두 권을 골라오라고 했는데 그중 한 권이 한글날에 관한 책이었다.
느닷없는 한글날 관련 책이었는데 우리는 그 책 안에서 또 만 원짜리에서 봤던 세종대왕과 다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