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한다. 2~3살 아기 적부터 아침잠들 많은 가족들이 아직 깨지 않은 아침에 먼저 일찍 눈을 뜨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 종이를 찾고 그림도구를 챙긴다. 그리고는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끄적끄적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나는 매번 종이가 떨어지지 않게 스케치북과 A4 종이 묶음, 도화지, 색종이 등의 다양한 종이를 쟁여두고, 색색의 색연필과 펜, 크레파스, 형광펜, 파스텔, 물감 등을 구비해둔다.
오늘은 둘째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기 전에 나에게 거울 종이를 달라고 한다. 예전에 거울 종이에 자화상 그리기를 함께 했었는데 그걸 그리려나 했다. 저녁상을 차리느라 신경 쓰지 못한 사이 둘째가 또 뚝딱 그림 한 장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뭘 그렸나 보니 바닷속을 그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고기 비늘을 거울 종이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이 보였다. 바닷속 물고기를 다 똑같은 모습으로 그려놨길래 도움을 주고 싶었다. 마침 우리 집에는 예전에 사둔 ‘동물 박물관’이라는 동물도감 책이 있었다. 나는 얼른 도감을 꺼내면서 아이에게 바닷속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이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언어로 설명하면 가까이 와 닿지 않는다. 그림은 직관적이기 때문에 금방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확장하여 생각하기 편하다. 그때 도감은 훌륭한 그림도구가 된다.
먼저 아이가 그려놓은 것 중에 문어가 있었는데 문어랑 연관 지어 생각하기 좋은 무척추동물을 끌어냈다. 아이는 모습이 비슷한 오징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또 비슷한 것이 있을지 도감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도감을 살펴보니 해파리가 보였다. 아이는 무척 즐거워했다. 문어랑 오징어랑 비슷하지만 다른 해파리를 찾았다는 것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 문어 머리는 동그랗고, 오징어는 세모 네모인데 해파리는 반달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도감 속 그림에서 발견한 것도 아이는 기뻐했다.
해파리를 찾고 나니 해파리 그림 아래 말미잘과 산호가 보였다.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의 새로운 생물을 보면서 아이는 도감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캔버스에 보고 그리고 있었다. 도감에 나오는 긴 설명은 아직 아이가 읽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얼른 글을 훑어서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어렵지 않은 설명을 곁들어주었다.
아이는 얼핏 스쳐가며 들은 이야기지만 언젠가 나중에 ‘옥토넛’ 애니메이션을 볼 때건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바다에 대해 배울 때 건 아니면 여행을 가서 수산시장에 들르게 될 때 건 오늘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연관 지을 거다. 한글을 읽을 줄 알면 그림에 적힌 번호의 이름 정도 찾아보고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도감에 대해 아주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또 생물의 재미있는 이름을 보면서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이야기도 나누어 보면 더 기억하기 쉬워진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라면 설명글을 조금 더 읽어보면서 깊은 내용을 습득하면 좋을 것이다. 도감은 긴 글을 꼭 정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가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어떤 도감에서 어떻게 설명을 찾아 읽을 수 있을지 방법만 알려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읽게 될 거다. 도감은 자연관찰 책과 연계해서 보기에도 좋다. 도감이 좀 딱딱하다면 쉽고 재미있게 스토리텔링이 되어있는 자연관찰 책을 꺼내어 아이가 유독 흥미 있어하는 생물에 관해 함께 읽어보면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식으로 바다생물을 떠올리고 도감을 훑어보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바닷속에는 불가사리, 홍합, 조개, 바다거북, 게, 가오리, 상어 등으로 풍성해졌다. 아이도 만족하고 뿌듯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