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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Feb 16. 2023

[부산] 168도시락국

옛날 도시락은 못 참지


나는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술이나 커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이다.

그걸 어디서 먹고 마시냐도 매우 중요하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저곳에 가면 내가 분명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고 생각하는 곳을 알고 있다.

나의 하루 중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만들어 줄 공간들 말이다.


외식을 할 때는 식당이 주는 분위기와 음식의 맛을 온전히 즐기고 싶고, 카페에 가서는 뭔가 집중해서 일을 하거나, 잠시 시끄러웠던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려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평일에는 여유롭게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 외식을 잘하지 않고, 커피도 밖에서 잘 사 마시지 않는다. 

(어쩌다 밖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1시간 정도 외출 결재를 올린다.)

평일도 소중한 나의 일상이지만, 평일에는 좀 더 수행(?)하는 느낌으로 산다.

주말에는 한 끼 이상은 외식을 하고, 카페도 간다. 그래봤자 한 달에 몇 번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이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어떻게 하면 좀 더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식당, 카페, 그리고 기타의 방문 장소를 고를 때도 내 기준이 있다.

이제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어디를 가면 내가 좋아할지를 안다. (네이버맵과 카카오맵의 힘이 크다.)


너무 북적이지 않을 것, 운영하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 있을 것, 맛과 향이 너무 자극적이지 않을 것, 편안한 느낌이 들 것.

식사든 술이든 커피든 돈을 받고 파는 것이다. 

식사가 맛있고 커피가 맛있어도 너무 불친절하면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되는 대로 파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돈 벌기 힘들다. 

어렵게 번 돈을 그렇게 쓰고 싶지는 않다.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돈을 지불하고 싶다.


하지만 항상 맘에 드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그냥 영혼 없이 배를 채우고, 카페인을 충전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10번 중에 6번 이상은 내가 원하는 장소에 가고 싶다. 

그래서 수고롭게도 좋은 장소들을 모으고 가기 전에 꼼꼼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가서 좋았으면 다음에 또 간다.


모호한 나의 기준에 어쩌다 딱 들어맞는 장소를 만나면 나의 하루는 '괜찮아'진다.

조용히 혼자 음미하고 지나가도 되는 시간과 공간들이지만 나의 기억을 위해서, 또는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 기록들을 적어본다.


이 연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68 도시락국 때문이다.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이 작은 가게는 벌써 두 번째 방문했다. 

부산에 갈 때마다 안 가면 섭섭하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에 이곳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


이곳은 솔직히... 깨끗하진 않다. 

동네 할머님들이 운영하시는 듯한데 우리네 할머니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익숙히 봐온 때가 묻어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탁자 위에 바로 올려놓기 좀 꺼려진다. 하지만 상관없다. 들고 있으면 된다.


항상 주문하는 것은 '추억의 도시락'.

원래 5,000원이었는데 물가상승으로 6,000원으로 가격이 인상됐다. 

웬만한 커피도 요즘에 5,000원 ~ 6,000원 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싼 편이다.

주방 어머님들은 바쁘시기 때문에 사람이 들어와도 잘 모르실 때도 있다. 

그래도 사람이 들어온 걸 보면 아는 체를 하신다. 


'어유 안에서 일한다고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몰랐네~'

'여기 아가씨 도시락! 시락국 하나 더 퍼야 돼!.... 아니 이미 2개는 나갔고 아가씨가 도시락 주문해서 하나 더 퍼야 돼!'

이런 대화들이 오간다. 

내 얘기를 매우 크게 하셔서 내가 뭔가 설명을 해드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알아서 잘 정리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있는다. 


도시락이 나왔다. 

비건지향인으로 살고 있지만, 옛날 도시락에 들어 있는 분홍소시지는 아직 어떤 것으로도 대체불가능 한 것 같다. 나는 지향... 이니깐... 이번에는 먹자... 는 생각으로 먹는다.

이래서 나는 영원히 비건은 되지 못할 것 같다. 비건'지향'도 괜찮다.


계란, 소시지를 적당히 숟가락으로 자르고 대충 비벼 도시락 뚜껑을 닫고 쉐킷쉐킷한다.

잘 잡아야 한다. 행여나 뚜껑이 날아가면....생각하고 싶지 않다.


별거 없는데 너무 맛있다. 고소하고 짭쪼름하고 난리났다.

시락국도 너무 담백하다. 나머지 반찬들도 김치 빼고는 다 내입에 딱이다.

김치와 약간의 흰밥을 빼놓고는 다 먹었다.


그때 언뜻 일하는 어머님과 다른 손님들의 얘기를 듣게 됐다.


손님 : 사장님, 커피 4잔 주세요. 아메리카노로요.'

어머님 : 뭐로 드릴까요?'

손님 : 아메리카노요. 뭐 다른 거 있어요?

어머님 : 없어요. 뜨신 거 찬 거 있어요. 

손님 : 하하하 뜨신 걸로 주세요.


밥을 먹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어머님들은 진지하신데 나는 웃긴다. 이런 유머가 참 좋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보통 라디오를 듣는데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

들리는 얘기들이 가끔 너무 재밌어서 놓치고 싶지 않다.


기분 좋게 식사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크로플도 하나 사 먹으면서...


식당에서 부산역으로 가는 길에 본 정겨운 문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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