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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Mar 06. 2023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미안해요. 그래도, 제가 죽이는거 이해해줘요.

스트레스 왕창 받은 날. 남들은 퇴근길에 맥주를 마시지만, 나는 영화를 본다.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본다면 더 최고겠지만) 마음이 쓸쓸해지고, 한 없이 용기가 없어지는 날에는 나를 위로해 줄 영화를 찾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날. 사람의 위로가 아닌 영화의 위로가 필요한 날.


요즘 회사 근처에 있는 충무로역사 안 문화공간, 오 재미동을 자주 찾는다. 막상 영화를 보려고 하니 어떤 영화를 봐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소장 DVD 목록을 죽 보다가 영화를 정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예전에 동기언니로부터 추천받았지만 끌리지 않아 미루고 있었던 영화인데 돌고 돌아 오늘 만나게 됐다. (언제나 느끼지만 만나게 될 영화는 만나게 되어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는 일할 때 대게 성실하다. 미련하게도... 성실한 게 나쁘지는 않지만, 종종 호구가 되는 것 같다. 일의 특성상 내가 성실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나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하면 할수록 정신과 몸이 축나는 느낌이 든다. 내 주변의 누구누구는 저렇게 놀고 있는데 말이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만 나 같은 범인이 나와 누군가를 비교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대게의 비교에서 상대방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다. 하지만 요즘에 내가 비교하는 대상은 '나보다 덜 일 하는 사람'이다. 


 유연근무를 하고 있어 오전 7시쯤에 출근을 하고 있다. 같은 팀 A도 7시에 출근한다. 그리고는 5분 뒤 사라진다. 그리고 8시 40분이 다 되어 나타난다. 열받는다. A가 출근만 찍고 놀고 있는 동안 나는 대게 꾸역꾸역 일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하는 시간은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니깐. 그렇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거고. 여기까지가 내 상식인데 세상에는 내 상식과 다른 일들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내가 이상한 걸까? A가 아침에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건 나만 아는 것 같다. 너무 아침 시간이니깐... 그의 만행을 떠벌리고 싶은 생각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그만둔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대게 손해를 보게 되는 걸까... 이런 답답함이 요 며칠 나를 짓눌렀다. 자기 인생을 온통 일에 바쳤던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은 성실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료들에 비해 많은 일을 하다가 몸이 망가졌다. 성실하고 유능할수록 더 많은 일을 받고, 그 대가는 스트레스와 건강상의 이상신호다. 회사원은 일 많이 했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수남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격증을 10개 이상이나 따면서 열심히 살았다. 취직을 했지만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라 결국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 인광 와우 수술을 하고 살아가던 중, 남편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까지 일어난다.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수남은 빚을 내서 집을 산다. 빚을 갚기 위해, 실의에 빠진 남편을 돌보기 위해 수남은 안 하는 일이 없다. 수남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하지만 빚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남편은 자살 시도를 하다가 결국 식물인간이 된다.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들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러다 수남의 집이 재개발 대상이 되면서 수남은 조금씩 변해간다. 성실하게 살아가던 수남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칼을 든 수남의 모습을 보는 것이 더 속은 시원했다. 


 성실하고 열과 성을 다해 살아봤자 돌아오는 건 더 많은 일과 빚이라니. 수남의 선택에 공감이 간다. 수남은 끝까지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사람이 죽었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몇 도 죽게 됐다. 수남의 살인에 통쾌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절대 하지 못할 일들을 수남이 대신해주어 속이 시원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증오는 나를 갉아먹는 감정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증오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왔다. 분출되지 못한 미움과 증오는 종종 나에게 돌아왔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는 좀 덜 성실해질 필요가 있다. 나의 성향 때문에 누군가가 보기 싫고 그게 나에게 괴로움이 된다면 내가 좀 덜 나 같아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평생을 보고 배운 것은 '성실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고, 그런 나의 성향들이 나에게 가져다준 성공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이것들이 나에게 독이 된다면 쉬어갈 필요가 있다. 나의 성향이란 게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 지금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질이라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적당히... 하자. 내가 수남처럼 칼을 들지는 못해도 내 자신을 다독이는 일 정도는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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