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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 프레드릭 May 08. 2024

여행자의 필요

낯선 눈으로 바라보기

 홍상수 감독님의 최근작 중에서 가장 재밌게 본 영화예요. 한 편의 동화같기도 하고요.      


 여행자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상황,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모르지만, 제삼자의 입장으로 보면 ‘왜 저러고 있지’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요.


 영화 속 인물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잘하고 싶은 욕심과 그러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annoyed)을 반복적으로 얘기합니다. ‘왜 저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제가 제삼자이기 때문이겠죠. 

만약 제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나라고 별다른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영화 포스터에 적혀있는 것처럼 ‘이리스(이자벨 위페르)’는 잘 불지도 못하는 리코더를 열심히 불고, 바람처럼 유유히 여기저기를 다니며 불어를 가르치고, 담배를 피우고, 밥을 먹습니다. 아무대서나 잠에 들기도 하고요.


 불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이해 안 되는 말과 행동들을 시적으로 표현하여 그걸 그들에게 반복해서 읽게 하죠. 이리스가 적어준 말들을 한국어로 들었다면 사실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불어로 말하니 무슨 주문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였어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감독이 ‘불어’를 선택한 건 탁월했다고 봅니다. 아마 처음부터 주인공을 이자벨 위페르로 생각하고 영화를 구상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합니다.     


 이리스는 누군가(특히 성국의 엄마)에게는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라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지만, 그건 이리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리스의 입장에서도 성국은 낯선 사람이고 돈도 안 되는 시를 쓰는 젊은 남자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캐묻기보다는 조건 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모르고 낯설어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상이 모르고 낯설지만 그걸 따뜻한 눈으로 받아들이는 여행자의 삶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저에게 위로가 되는 영화였어요. 홍상수 감독님의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스레 삶에 대해 긍정하게 되고, 나를 조금은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삶’이 조금은 더 가볍게 느껴집니다. 다시 일상의 무게에 짓눌릴 때 이 영화가 생각날 거 같아요.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살아가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라본다면, 조금 더 너른 마음, 그리고 조금 더 풍성한 감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자벨 위페르의 이런 엉뚱하고 천진한 모습을 정말 좋아하고,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데요.(실제 성격은 잘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이리스의 매력을 곱하기 2로 느낄 수 있는 영화 ‘코파카바나’가 생각났어요. 영화 ‘코파카바나’에서의 바부(극 중 이자벨 위페르)의 삶이 심하게 발랄한 E의 대책 없음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이리스는 I는 차분하고 느릿한 대책 없음 같습니다. 일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녀는 그냥 대책 없는 외국인 아줌마겠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녀는 ‘현재를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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