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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도 계절을 탄다

33화

by 김경희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건 행운이다. 변화를 온몸으로 겪을 수 있으니까.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면 새순이 움트듯 기대가 피어난다. 작은 새싹이 바람에 조금만 흔들려도 괜스레 들뜨고, 마음은 앞서 달려간다.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갈 때는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정이 식으며, 차분히 수확의 때를 기다린다. 가을에서 겨울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한 해의 결실을 돌아보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그리고 겨울에서 봄으로 돌아올 무렵,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새 생명이 움트듯 다시 용기를 낸다.



주식시장에도 계절이 있다. 봄처럼 움트는 시기가 있고, 여름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때가 있으며, 가을의 결실을 지나 겨울의 긴 침묵이 찾아온다. 시장의 흐름은 계절의 순환과 닮아있다. 주식시장에서 ‘9대 3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아홉 달은 횡보하거나 조정의 시기이고, 단 3개월 동안만 상승 구간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이 말이 다소 과장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시장을 경험하면서, 주가는 정말 대부분의 시간 오르지 않았다. 머물거나, 조금 내려가거나, 혹은 잠시 오르는 듯하다가 다시 떨어졌다.


투자자는 긴 겨울 속에서 마음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추운 계절은 꼭 필요하다. 모든 열매가 겨울을 지나야 단단해지듯, 시장 또한 쉼과 조정을 통해 다음 상승의 에너지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아홉 달의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오르면 흥분하고, 조금만 내리면 두려워한다. 봄이 오기 전에 씨앗을 캐내 버리고, 여름의 열기를 기다리지 못한 채 마음이 흔들린다. 주식의 계절은 느리게 움직이는데, 사람의 마음은 늘 빠르게 앞서간다. 그래서 수익의 3개월을 맞이하기 전에 지쳐서 시장을 떠나버린다.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는 오르내림의 의미를 몰랐다. 오늘 오르면 내일도 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시장은 마치 장마철의 날씨처럼 변덕스러웠다. 갑자기 내리는 비, 끝없이 흐르는 구름,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맑은 하늘. 그 안에서 수많은 감정의 파도를 겪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시장은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는 것을.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따가운 햇빛을 견디며, 가을엔 수확하고, 겨울에는 잠시 쉬는 것처럼. 주식도 그렇게 순환한다. 문제는 언제나 ‘시기’이다. 상승의 3개월은 짧고, 조정의 아홉 달은 길다. 그래서 투자는 ‘기다림의 예술’이다. 남들이 시장이 지루하다며 떠날 때 묵묵히 차트 보고, 기업의 가치를 공부하는 사람만이 열매를 맛볼 수 있다.


불황의 끝은 언제나 공포다. 공포 속에서 기회를 보는 사람이 진짜 투자자다. 겨울의 시장은 사람의 마음을 시험한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만이, 깨어나는 봄의 신호를 듣는다. 거래량이 조금씩 살아나고, 가격이 천천히 바닥을 다질 때, 그것은 마치 얼음 밑에서 새싹이 싹트는 순간과도 같다. 그때를 알아보는 눈이 바로 투자자의 직관이고, 직관은 수많은 겨울을 통과해야만 생긴다.






이제는 주가가 오르지 않는 시간에도 불안하지 않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가까워진다는 걸 안다. 9개월의 정체는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 시간 동안 시장은 균형을 잡고, 투자자는 마음을 단련한다. 주식의 계절이 겨울이라면, 그때는 멈추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 시장의 구조를 읽고, 기업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기업의 내재가치를 살펴야 한다.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기업의 가치가 살아 있다면 봄이 온다. 이때 밭에 씨앗을 심듯 주식을 매수해 두고 기다리면 수확의 3개월을 맞이할 수 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상승장의 바람이 불 때는, 그간의 기다림이 결실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나무가 겨우 내내 뿌리를 내렸듯, 투자자 또한 그동안의 인내로 수익의 열매를 맛볼 수 있다.


주식 고수들이 겨울을 견뎌내는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은 시장 속 계절의 변화를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얼어붙은 차트와 싸늘한 거래량만 보이지만, 고수의 눈에는 그 밑에서 조용히 움트는 새싹의 기운을 본다. 그들은 안다. 시장은 언제나 순환하며, 가장 추운 겨울 끝자락에서 가장 값진 봄의 씨앗이 심어진다는 것을.


불황의 끝에서 시장은 가장 싸다.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어 공포가 극에 달하고, 사람들의 입에서 ‘이 주식은 이제 끝났다’라는 말이 나올 때, 바로 그때가 진짜 기회의 문턱이다. 모두가 두려움 속에 손을 놓을 때, 고수들은 묵묵히 차트를 들여다보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살핀다. 그들은 이 시기를 ‘겨울의 시간’이라 부른다.


겨울의 시간은 차갑고 길지만, 그 속에 숨은 온기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시장의 흐름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들은 남들이 팔 때, 즉 겨울에 산다. 그리고 남들이 너도나도 사겠다고 몰려드는 상승장이 절정에 달했을 때 미련 없이 판다. 이 단순한 원칙이야말로 시장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다.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낼 줄 알고, 탐욕 속에서도 물러설 줄 아는 사람만이 시장의 계절을 다스릴 수 있다.


주식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손실의 기록, 차트 앞에서의 후회, 밤새 반복된 반성과 공부의 시간이 쌓여 하나의 문장처럼 다듬어진다. 원칙은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 같은 것이다.


그들이 전하는 몇 가지 원칙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세월이 만든 통찰이 스며 있다.

“저점에서 분할 매수하라.” 한 번에 들어가면 후회가 남지만, 나누어 들어가면 낮은 금액에 살 수 있다.


“욕심내지 말고 시간을 분할하라.” 주식도 기다리는 시간과 수확하는 시간이 있다. 시장은 조급한 자를 시험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미소 짓는다.


“손절 비율을 정하고 반드시 지켜라.” 감정은 시장의 파도를 건너지 못한다. 원칙만이 구명조끼다.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좋다고 외칠 때, 그때가 팔 때다. 대중의 환호는 상승의 끝에서 울리는 종소리다.”

이 말들은 단순한 투자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이라는 바다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항해 지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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